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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주거고통]신촌 민달팽이들 "집 걱정 더는 일이라면 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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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주거고통]신촌 민달팽이들 "집 걱정 더는 일이라면 뭐든지…"
  • 박대로 기자
  • 승인 2011.12.12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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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가 퇴화해 사라진 달팽이를 '민달팽이'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에도 민달팽이처럼 마음 편히 몸 부릴 곳 하나 없는 이들이 있다. 비싼 등록금도 부족해 살인적인 전세난에까지 시달리는 대학생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연세대 신학과 김은진(23)씨와 건축공학과 임지혁(21)씨도 민달팽이 신세다. 각각 충남 천안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부모님 집을 떠나 유학생활 중인 이들이 친구들과 하는 얘기는 늘 "살기 힘들다" 아니면 "월세 때문에 고민이다"뿐. 모였다하면 집 걱정인 이 모임의 이름이 '민달팽이 유니온'으로 정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김씨와 임씨, 그리고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장시원(23·사회복지학과)씨 등 연대생 21명은 '20대와 대학생의 주거문제를 해결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 5월5일 민달팽이 유니온을 결성했다.

이 '집 없는 대학생들의 협동조합'은 주위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4월말부터 6일간 진행한 1차 조합원 모집 때도 가입신청이 쇄도할 정도였다. 가입비 5000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합원 수는 21명에서 순식간에 109명(12월 현재 122명)까지 늘어났다.

조합원들은 가입자가 급증한 이유로 '값비싼 신촌 일대 집세'를 꼽는다. 연세대·이화여대·서강대 등이 몰려 있는 신촌 일대 원룸은 보통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50만 원선이다. 전세로는 6000만~7000만원에 달한다. 집세에 허덕이던 학생들이 민달팽이 유니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것은 당연지사.

그렇게 모인 조합원들은 서로 고민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자취·하숙정보를 공유하는가하면 이사할 때 일손을 거들었고, 신촌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요청해 부동산문제 상담기회도 가졌다. 요리법을 잘 모르는 자취생들을 위해 밑반찬 만들기 강습도 실시했다.

창립 7개월을 넘긴 현 시점, 민달팽이 유니온은 단순한 학내 모임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연대 총학생회와 생활협동조합은 학내 자취생·하숙생에게 주거비를 지원하는 '생협 민달팽이 장학금'을 제정했고, 학생 120명이 2학기 4개월 동안 매달 15만원씩 60만원을 지급받았다.

장학금 이름을 정한 배경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총학생회와 생활협동조합은 생협 기금 활용방안을 검토하다 이왕이면 주거문제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자고 합의했고, 그 결과 주거문제를 다뤄온 민달팽이 유니온의 이름을 빌렸다.

정치권 역시 민달팽이 유니온을 주목하고 있다.

김은진씨 등 조합원들은 지난달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건설·주택시장 동향 및 대응방향'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석해 전세·하숙비를 학생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며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회의 당시 김씨가 인용한 "언제 내릴지 모르는 만원버스를 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김씨는 한 선배의 표현을 빌렸다며 "종착지 없는 만원버스란 앞으로 취업을 하든 결혼을 하든 집을 구하고 살아가는 것이 계속 어려울 것 같은 대학생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고 풀이했다.

영향력이 강해지는 만큼 민달팽이 유니온은 앞으로 조직의 내실을 다지는 동시에 서울지역 다른 대학과 주거문제 관련 네트워크도 형성할 방침이다. 특히 학내에 설치한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성공회대 노숙모임 '꿈꾸는 슬리퍼' 등과 협력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활동에 임하는 조합원들의 각오도 대단하다.

내년 학기 조합장으로 활동할 김은진씨는 "대학생 주거권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라며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계속 응집시켜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가 20대 유권자라 그런지 요즘 정부나 정치권이 자주 행사 참석을 요청하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앞으로 20대의 정치참여가 활성화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운영위원직을 맡게 될 임지혁씨는 "처음에는 대학생 주거권 문제가 소박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조합활동을 할수록 매우 어렵고 커다란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임씨는 "특히 (집안 사정이 넉넉한 학생들을 포함한)모든 이의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는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며 "앞으로 더 노력해서 연대생들에게 민달팽이 유니온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나아가 전국의 모든 대학생들에게도 주거권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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