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룡(43) 주연 휴먼코미디 영화 ‘7번방의 선물’이 관객 1200만명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환경(43)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박종원(53) 총장의 제자다. 박 총장이 1999년 연출한 강수연(47) 주연 ‘송어’의 조감독이 바로 이 감독이다.
박 총장은 “‘7번방의 선물’이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영화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면서 “이 감독의 스승이나 선배이기 이전에 영화인으로서 대견하고 기쁘다”고 밝혔다.
‘7번방의 선물’의 성공 비결로는 ‘감동’과 ‘공감’을 손꼽았다. 박 총장은 “시사회에서 ‘7번방의 선물’을 보면서 ‘잘 되겠다’ 싶었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흥행한 2011년 ‘도가니’, 지난해 ‘부러진 화살’과 마찬가지로 ‘7번방의 선물’ 역시 약자의 아픔을 얘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영화와 ‘7번방의 선물’은 다른 점이 있다. ‘도가니’는 장애인, 미성년자, 성폭력 피해자 등 약자를 강자가 가해하고도 없던 일처럼 무마시키려는 것에 대해 공분을 일으켰다. ‘부러진 화살’은 강자인 사법부에 의해 어떤 교수가 약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억울함을 그려내 역시 공분을 일으켰다. 이처럼 두 영화가 고발을 통해 공분을 일으킨 데 반해 ‘7번방의 선물’은 이를 감동으로 승화시켰고 공감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공감은 공분보다 훨씬 파장이 클 뿐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동참 욕구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 점이 두 영화를 능가하는 흥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격인 약자뿐 아니라 ‘가해자’격인 강자들까지 감동을 느끼고 공감하면서 반성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특기했다.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의 흥행 요인이자 한계는 사회적으로 강자들에게 피해를 입었거나 입고 있다고 느끼는 약자들의 선동적 공분만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이다. 반면 ‘7번방의 선물’은 약자들의 공분은 물론 가해자라 할 수 있는 강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반성하는 마음을 갖게 함으로써 관객 수가 두 영화를 훨씬 넘어설 수 있게 했다. 즉, 약자에 대해 가진 우리의 잘못된 관습이나 인식이 그런 피해를 줬다는 것에 모두가 공감하게 된 것이다.”
박 총장은 “이 감독은 ‘송어’ 조감독을 할 때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추운 겨울에 제작비가 없어서 몸으로 다 때워야 하던 때에도 자기가 맡은 일은 누가 뭐래도 즐겁게 했고, 정확히 해냈다. 그런 것들이 이 감독의 장점이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정말 열정이 넘쳤다. 그런데 그 열정이 딱딱하거나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편안함이었다. 또 항상 따뜻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상황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7번방의 선물’ 뿐만 아니라 이 감독의 전작인 ‘각설탕’이나 ‘챔프’를 봐도 그런 이 감독의 마음이 묻어난다. 흥행을 떠나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따뜻한 이야기를 끝없이 계속 해온 열정과 눈길이 오늘날 이런 결실을 맺지 않았나 싶다.”
박 총장에게는 이 감독을 포함, 국내 8명 뿐인 ‘1000만 감독’ 제자가 한 명 더 있다. 2006년 ‘괴물’을 연출한 봉준호(44) 감독이다. 1996년 박 총장이 공동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의 조감독으로 호흡을 맞췄다. 두 감독은 ‘김대중 죽이기’라는 블랙코미디 정치영화를 함께 준비하기도 했다.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이 정계 복귀를 하면서 ‘현역 정치인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수 없어서’ 무산된 작품이다.
박 총장은 “봉 감독도 이 감독처럼 열정이 넘친다. 그 열정 역시 편안하고 유머스럽다”면서 “봉 감독은 아주 재미있고, 이 감독은 정말 착하다. 그런데 두 감독 모두 그 중심에는 절대 굴하지 않는 지독한 근성들이 있다”고 공통점을 짚었다.
차이점도 있다. “두 감독의 가장 큰 차이는 시대를 읽는 눈이다. 이 감독은 인간애, 휴머니즘이라는 측면에서 세상을 보려 한다. 반면 봉 감독은 사회적 현상의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읽으려 한다.”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도 다르다. “이 감독은 할리우드가 됐든, 한국이 됐든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따뜻한 정서를 이야기한다. 그런 보편적 정서가 한 번 심금을 울리면 세대와 환경을 초월해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봉 감독은 한국 영화가 하지 않았던 이야기인 ‘괴물’을 내놓았다. 할리우드에는 ‘킹콩’, ‘에일리언’, ‘로보캅’처럼 인간이 아닌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가 많지만 한국에서는 처음 시도된 이야기다. 거기에 봉 감독은 한강에 주한미군이 폐수를 불법 방류한다는 것이나 가족 이야기를 더해 새롭게 엮어냈다. 할리우드에서는 흔한 이야기이지만 한국에서는 낯선 이야기, 그것도 할리우드와는 다른 우리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박총장은 “봉 감독이 만들고 있는 ‘설국열차’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국열차’는 글로벌 프로젝트 SF 액션 블록버스터다. 냉전시대 갑작스런 기온 강하로 혹독한 추위가 닥친 지구를 배경으로 난방과 식량자급이 가능한 설국열차 만이 유일한 생존처가 된다는 장 마르크 로셰트의 프랑스 동명 SF 만화를 영화화했다. 송강호(46)를 비롯해 할리우드 SF블록버스터 ‘캡틴 아메리카’, ‘어벤저스’의 크리스 에번스(32),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의 틸다 스윈턴(53) 등 국내외 스타급 배우들이 포진했다. CJ엔터테인먼트가 400억원을 투입해 글로벌 진출을 꾀한 작품이다. 올 가을 개봉 예정이다.
“할리우드식의 콤팩트하고 스피디한 영화겠지만 한국적 정서가 분명히 들어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면 분명히 된다. ‘괴물’도 할리우드처럼 괴물이 나와서 난리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제간, 부녀간 화해와 이해를 그렸다. 가족의 정이 묻어났다. 그래서 그렇게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설국열차’도 열차가 달리는 이야기 속에서 한국인이 가진 정서들이 표현될 것으로 본다.” 박 총장은 “두 사람 모두 열정과 자기 시선이라는 공통점으로 1000만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결론지었다.
제자이자 후배인 두 감독은 교육자, 행정가로 변신해 메가폰을 놓은 지 오래인 박 총장에게도 자극이 되고 있다. 박 총장은 ‘맥주가 애인 보다 좋은 7가지 이유’와 ‘송어’ 외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 ‘영원한 제국’(1995) 등으로 흥행성과 작품성 모두를 인정받았다.
“‘7번방의 선물’ 시사회에서 무대인사를 할 때 이 감독이 ‘멘토인 박종원 감독님이 와 계시겠지만…’이라고 말할 때 얼굴과 마음이 뜨끔했다. 그런 경험은 앞서 봉준호 감독의 작품 시사회에서 갔을 때 봉 감독이 ‘제가 모셨던 박종원 감독님도 와계시고…’라고 말할 때도 느꼈다. 후배이자 제자인 저 친구들이 저런 얘기를 해준다는 것이 즐겁고 영광스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도 영화를 계속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덕분에 자극도 받고, 용기도 낼 수 있었다. 앞으로 총장 임기를 잘 마치고 나서 우리 사회에 즐거운 영화를 하나 내놓아 많은 사람들한테 박수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