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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사망 ‘사회적 타살’ 인식과 ‘엄벌’ 기조, ‘위험의 외주화’ 근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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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사망 ‘사회적 타살’ 인식과 ‘엄벌’ 기조, ‘위험의 외주화’ 근절을
  • 류효나 기자
  • 승인 2025.08.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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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산재와의 전쟁’에 나선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12일 국무회의에서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사회적 타살”이라며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후진적인 산재 공화국을 반드시 뜯어고치도록 해야겠다.”라며 재차 산업재해 근절 의지를 강력히 드러냈다. 이를 위해 이재명 대통령은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과징금을 물리는 것과 함께 건설회사 입찰 자격을 영구 박탈하고 금융제재를 가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하고, 안전관리 미비 사업장 신고 시 파격적인 보상금 지급 방안 등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인식이 정착될 수 있도록 원청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이자 대통령의 결연한 ‘산재 근절’ 의지다.

대통령이 연일 산재 예방을 강조하는 것은 그 의미와 파장이 남다르다. 여름휴가 복귀 첫날인 지난 8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연 대통령 지시사항 브리핑에서 “앞으로 모든 ‘산재 사망’ 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라고 지시했다. 지난 8월 4일부터 닷새간 취임 후 첫 휴가를 보낸 이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내린 첫 지시라 의미와 무게가 여느 지시보다 강하고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이렇듯 ‘산재 사망 직보’를 지시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 처벌 강화를 위해 법 개정까지 추진하는 것은 물론 직접 개별 사건을 챙길 정도로 엄중하게 대처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취임 이후 ‘산재 사망’ 사고가 잦은 기업을 강하게 질타해온 이 대통령은 “돈 벌려고, 비용 아끼려고 목숨을 빼앗는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자 사회적 타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 현장의 안전관리 문제를 직접 점검하고 산재 사고 예방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겠다는 국정 철학의 일단이다.

지난해 산재 사망자 2,100명 중 827명(39.38%)이 추락·끼임·깔림 등 사고로 숨졌다. 매일 2.26명 이상이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중에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위반으로 숨진 노동자는 589명으로 추정된다. 새 정부 들어서도 포스코이앤씨·SPC·태안화력발전소 등에서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3월 11일 발표한 ‘2024년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 잠정결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중대재해 조사 대상에 오른 사고사망자는 589명, 재해는 553건에 달해 전년도 사망 598명, 재해 584건 대비 사망 9명(1.5%↓), 재해 31건(5.3%↓)이 각각 감소했다. 특히 건설업은 사망 276명 재해 272건으로 사망 27명(8.9%↓), 재해 25건(8.4%↓) 각각 감소했다. 다만 불경기가 계속돼 일감 자체가 감소한 바람에 사망자는 27명, 사고는 25건 급감했다. 실제로 지난해 착공된 건물의 수는 7.5%, 취업자는 2.3% 감소한 바 있다. 비교 대상인 전년에도 같은 이유로 38명, 31건씩 감소해 2년 새 총사망자는 65명, 사고는 56건 줄어서 건설업 불황이 재해사고 감소를 주도한 셈이다. 반면 건설업 다음으로 ‘산재 사망’ 사고가 잦은 제조업의 경우 사고는 146건으로 19건(11.5%↓) 감소했지만, 사망자는 175명으로 5명(2.9%↑) 증가했다. 또 건설업과 제조업을 제외한 기타 업종에서는 135건의 사고가 발생해 138명이 사망했는데, 전년 122건, 125명보다 13건(10.7%↑), 13명(10.4%↑)씩 크게 늘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자 정부도 도 산재 처벌에 속도를 내고 ‘산재와의 전쟁’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모양새다.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지난 8월 12일 오전 9시부터 근로감독관과 경찰 70여 명을 투입해 포스코이앤씨 본사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산재 사고를 낸 건설사에 대한 고강도 징벌적 제재를 예고한 대통령과 정부의 서슬 퍼런 기세에 업계는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이에 앞서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DL건설의 대표이사와 모든 임원, 현장소장·팀장을 포함한 80명이 지난 8월 11일 사표를 냈다. 모든 사업장의 작업이 중단되면서 건설 현장이 사실상 마비되고 ‘올스톱(All stop)’ 상태다. DL건설과 모기업인 DL이앤씨는 120개가 넘는 현장 작업을 전면 중단했다. 그야말로 ‘산업재해 포비아(Phobia │ 공포증)’ 확산으로 신규 수주마저 주저하는 건설사들까지 생기고 있다. 사고 원인 규명과 안전 점검은 필요하지만, 모든 사업장이 ‘셧다운(Shutdown │ 조업중단)'되고, 임원들이 한꺼번에 줄사퇴하는 것은 정상적인 기업활동으로 보기 어렵다. 공사 중단에 따른 건설업 위축은 그 피해가 협력업체는 물론이고 지역경제 전반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산재 발생 기업에 대한 대출 규제, 건설 면허 취소 같은 강력한 방안을 지시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12일 국무회의에서 ‘법 개정’을 강조한 것엔 대통령의 엄중한 ‘질타’와 강도 높은 ‘사후 제재’만으론 산재를 추방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깊게 담겨 있다. 일관성 있고 지속 가능한 정책이 필요하고, 산재를 사전 예방하는 대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의미다. 당장 「산업안전보건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중대재해가 발생해야 발동할 수 있는 근로감독관의 작업 중지 명령권을 산재 발생 위험이 있는 경우에도 가능토록 확대 시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 공약대로 기업의 산재 현황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매년 공개하는 ‘안전보건 공시제’도 산재 예방의 필수 조치로 꼽힌다. 중대재해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이나 무리한 야간노동을 규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시급한 국정과제로 채택한 산재보상 국가책임제를 비롯해 중소·하청 사업장의 안전 대책, 다단계 하청구조 철폐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산재 근절은 요원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

그동안 중대재해에 대한 늑장 수사와 솜방망이 처벌 관행은 유사한 산재 사고를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데 일조해왔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진 뒤로도 산재 사망사고를 많이 낸 7대 대형 건설사 가운데 기소된 업체가 단 한 군데도 없을 정도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과징금 도입 등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정책이 조속히 나와야만 할 것이다. 당연히 대통령의 엄포만으로 일터의 안전을 지키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국정 전반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언제까지나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강력한 사후 제재 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산재 사고를 유발하는 고용구조를 바로잡는 게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다. 특히 건설 현장에는 다단계 불법 하도급과 그로 인한 ‘위험의 외주화(外注化)’가 만연해 있다. 하도급 단계를 많이 거칠수록, 노동자의 숙련도는 떨어지고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다. 비용을 줄이려고 공사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하는 관행도 여전하다. 추락사 등 기본적인 안전 조처만 이뤄졌더라도 막을 수 있는 후진국형 산재가 줄지 않는 배경이다. 민간 기업에 견줘 정부 개입 여지가 큰 공공기관부터 고용구조를 개선해 ‘위험의 외주화’를 끊어내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다.

한편 이틀 새 전남에서 이주노동자 3명이 숨졌다. 사망자 모두 안전장치와 보호장비 없이 작업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노동력이 부족한 지방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고위험 노동을 대신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위험의 이주화(移住化)’ 현상이 고착화하고 있다. 지난 8월 9일 오전 전남 곡성군의 한 농로에서 베트남 국적 30대가 몰던 지게차가 전도돼 숨진 데 이어 지난 8월 10일 전남 고흥 한 새우양식장에서 사망한 베트남 출신 30대와 태국 출신 20대가 절연 장갑 대신 면장갑을 낀 채 수중 작업을 하다가 감전돼 1명은 사망하고 1명은 중태에 빠졌다. 올 3월에도 전남 영암의 한 돼지농장에서 네팔 국적의 20대 노동자가 농장주의 폭언과 폭행 등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이주노동자의 사망사고(유족급여 승인 기준)는 2022년과 2023년 각 85명에서 2024년 102명으로 17명(20%↑) 증가했다. 이 중 특히 지방에 많은 농업·임업·어업을 포함한 ‘기타 업종’의 이주노동자 사망사고가 2023년 8명에서 2024년 19명으로 갑절 이상 늘었다. 국내 전체 취업자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5%이지만, 사고사망자 중 외국인 비율은 12.3%로 훨씬 높다.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 고용 및 관리의 사각지대 문제, 그리고 사회적 무관심이 빚은 ‘인재’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공분을 안겨준 나주 벽돌공장의 이주노동자 인권유린 사건은 사업장 이동 제한과 불안정한 계약 조건 등으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도록 내모는 ‘고용허가제’의 악용이 한몫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고용허가제 하의 이주노동자는 기계 부품처럼 다뤄진다. 처음에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3년 써본다. 마음에 들면 1년 10개월 더 쓴다.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이주노동자를 받는다. “더 일하고 싶다.”라고 하거나 “다른 곳에서 일하게 해달라.”라고 할 권리가 이주노동자에게는 아예 없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삶을 꾸릴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고용허가제의 민낯은 한국인이 기피를 하는 일터에 노동력을 제공할 젊은 ‘노예 노동자’를 데려오겠다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 괴롭힘 사건, ‘산재 사망’ 등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비극적 소식이 하루가 멀다 않고 들려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오죽하면 이제 한국의 노동시장은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과 나머지 한국인 노동자, 그리고 이주노동자라는 삼중구조로 개편되고 있다는 탄식까지 나온다. 게다가 직장에서 퇴사한 이주노동자가 90일 안에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강제 출국이 된다. 따라서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 시 구직기간 폐지, 고용연장 신청권 부여, 가족 결합권 보장, 사업주 악용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 이탈 신고 제도와 퇴직금 출국 후 수령 제도 폐지, 이주노동자 차별 방지 제도 강화, ‘단기 순환, 정주 금지’ 원칙 폐기하고 ‘정주 유도’ 강화,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방안 등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특히 노동자 안전에 대한 기업과 사법 당국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업주의 양형 기준을 바로 세우고, 기업도 사업장 안전조치에 투자를 강화하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 10위 경제 강국 위상을 노동자의 안전으로 증명하겠다.”라고 한 이재명 대통령 의지가 실효성 있는 정책·제도로 이어지고, 산재를 보는 시각과 인식 자체가 바뀌는 사회가 되어야만 한다. 산재가 발생하면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하지만, 처벌만으로는 산재를 막을 수 없다. 징벌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산재 예방을 위한 전방위 대책이 더 긴요하다. 각종 제도 지원과 시스템 구축, 하도급 체제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만 한다. 무엇보다 엄포로 경직된 공포 분위기 조성은 과잉 입법과 경제 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뿐,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최저가 입찰제와 하도급 관행, 외국인 근로자와의 소통 문제, 고령화 등 구조적 요인에 집중해야 실효성 있는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특히 산업·건설 현장의 안전사고 근절을 위해서는 산재의 구조적 분석과 제도 개선과 함께 기업의 안전 투자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근본적 해법을 찾고 노동자의 안전 수칙 준수 노력 등이 병행돼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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