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대기업 지주회사 수익 구조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시작됐다. 이번 조사로 그간 견해가 분분했던 브랜드 사용료, 임대 수익 등에 대한 문제가 정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4일 재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주요 대기업 지주사를 대상으로 편법적으로 사익을 추구했거나 영향력을 확대할 목적으로 자회사와 거래했는지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이번 조사의 내용은 브랜드 사용료와 임대 수익 책정, 지주사와 자회사 계약의 공정성 여부 등이다.
대기업 지주사의 매출 분석을 통해 편법적으로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특정인에게 유리한 거래가 있었는지 등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대기업 지주회사의 수익은 크게 자회사 주식 배당, 브랜드 사용료, 임대 수익 등에서 나온다. 이외 자회사 등에 대한 경영 자문료나 각종 용역 계약 등을 통해서도 수익이 발생한다.
공정위는 내달 중순까지 주요 지주사 62곳을 대상으로 매출 유형별 규모·비중, 자회사와의 거래 현황 등 자료를 받아 대기업집단 소속 지주회사 위주로 실태 조사 등을 진행해 8월까지 개선안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그간 한국 주요 대기업 지주회사는 총수 등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 또는 자회사의 탈세를 보조하는 수단 등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 주된 수익 구조가 보유 주식에 의한 배당이 아닌 자회사와의 뒷거래 등을 통해 형성됐다는 의혹도 있었다.
지주회사 제도는 다른 기업을 지배하는 별도의 회사를 두는 체계다. 한국에서는 기업 소유 규조가 왜곡될 우려가 있어 지난 1986년 금지했다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외자 유치 등을 목적으로 1999년 도입했다.
지주회사 체제는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거나 신규 사업 분야에 진입하는 등 구조조정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출자구조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화되는 측면이 있어 기업 경영의 투명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반면 한국 기업 환경의 특수성 등이 있어 그간 지주사 전환에 따른 폐해가 상당했다는 주장도 만만찮게 제기돼 왔다.
기업에 대한 감사 구조가 미흡하며 순환 출자 형태가 복잡한 상황에서 지주사가 등장하면서 지배주주의 실질적 출자 없이 지배력이 강화되는 등 역기능이 발생했다는 등의 지적이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자회사의 지주사에 대한 브랜드 사용료 부분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공정위는 브랜드 사용료 수준의 적절성 여부를 면밀히 살필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정부와 사법기관은 브랜드 사용료 자체를 받지 않고 상표권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경우 부당 지원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브랜드가 무형의 가치가 있는 자산인 만큼 사용에 따른 대가가 오가야한다는 취지다.
반대로 브랜드 사용료를 높게 책정하는 경우는 탈세 또는 부당한 거래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지를 가늠해보고 있다.
자회사 수익을 브랜드 사용료 명목으로 지주사에 넘겨 과세 대상 이익 범위를 축소하거나, 지주사 이익에 과도하게 유리한 방향으로 요율이 책정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점에서다.
현재 주요 대기업 지주사는 대체로 브랜드 사용료를 자회사 매출의 0.2% 수준으로 책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주사에서 자회사 등으로부터 받은 브랜드 사용료는 지난 2016년 기준 9300억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주사 수익 구조에 대한 다른 지적으로는 임대료 문제 등이 제시된다. 건물을 소유한 회사에서 입주한 계열사를 대상으로 과도한 수준의 월세를 받는 등 지주사의 임대 수익이 경제력 편중 현상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이외 지주사와 자회사 등이 맺은 계약 가운데 공정성이 결여된 부분이 있는지 여부도 조사될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이번 조사의 대상이 되는 지주사 수익 구조 자체에 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현재의 브랜드 사용료율은 적정한 수준이며, 자산의 가격을 책정하는 주체가 소유자인 기업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지주사의 경우 배당만으로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 재무구조가 악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수익 구조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제기된다.
다만 브랜드 사용료, 임대 수익 등 그간 지주사와 관련한 해묵은 논란이 일정 부분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이번 조사의 긍정적인 부분으로 볼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브랜드 사용료나 용역 계약 같은 것들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정해져야 될 부분 아니겠나”라며 “현재 수준이 특별히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어서 이번 조사를 크게 부담스럽게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반면 이번 공정위 조사가 도리어 대기업 지주사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제공하게 되는 자료의 신빙성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을 지목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공정위는 지주사의 자발적 협조를 통해 받은 자료로 제도의 악용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하지만, 지주사가 총수 가족의 사익 편취와 지배력 확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다”며 “자료의 객관성조차 확신할 수 없는 수익성 조사를 할 것이 아니라 재벌 개혁을 위한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