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선사 1위 한진해운이 자율협약 신청 130일 만에 결국 좌초됐다. 경영 정상화의 꿈은 4개월여 만에 송두리째 무너졌다.
4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지난 달 30일 채권단의 자율협약 조기 종료, 31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에 이은 이달 1일 법원의 개시 결정으로 법정관리 체제에 접어들었다.
경영 정상화를 위한 130일은 단 한 순간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한진해운은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며 지난 4월25일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그리고 5월4일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며 공식적으로 자율협약체제에 돌입했다.
당초 채권단은 자율협약 조건으로 1000억원에 달했던 용선료를 조정하는 한편 만기 도래할 수천억원의 사채권에 대한 채무재조정을 내걸었다.
지난 5월19일 1차 사채권자집회를 소집, 그달 23일 만기 도래가 예정됐던 제78회 무보증 신주인수권부사채(BW) 3000억원의 만기를 4개월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다음 달 17일, 열흘 뒤 만기 도래하는 제71-2회 공모사채 1900억원의 만기 연장을 위한 2차 사채권자집회를 소집, 사채권금액 중 72.5% 출석, 이 중 99.6% 찬성으로 3개월 연장에 성공했다.
자율협약 조건 중 핵심이었던 용선료 인하 협상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최대 용선주인 캐나다 시스팬이 한진해운의 용선료 연체 사실을 폭로한 데 이어 용선료 인하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하면, 그리스 용선주 나비오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한진해운의 벌크선을 억류하는 등 온갖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달 28일 시스팬이 용선료 조정에 합의, 용선료 협상이 사실상 마무리되며 채권단 자율협약을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됐다.
분명 이때까지만 해도 한진해운의 경영 정상화 작업은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자율협약 조건과는 별개로 유동성 확보 규모에 대한 한진과 채권단의 생각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한진그룹은 자율협약 신청 당시 터미널 및 사옥 유동화 등을 통해 4112억 원을 마련하겠다는 자구안을 채권단 측에 제출했다. 반면 채권단은 7000억원의 유동성 확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4월에 제출한 자구안에 불만을 품고 있던 채권단은 줄곧 추가 자구안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대주주 사재출연이 문제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사재출연 압박에 묵묵부답했다. 이것이 한진해운 좌초의 불쏘시개가 됐다.
이상기류를 감지한 한진그룹은 지난 달 25일 내년 7월까지 한진해운의 유동성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에 한해 계열사 추가 지원 및 조 회장 사재출연을 통한 1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추가 자구안을 제출했다.
채권단은 조건부 지원이라는 점에서 추가 1000억원의 진정성을 의심했고, 한진해운의 추가 자구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때부터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채권단은 추가 자구안 제출 5일 뒤인 지난 달 30일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 불가 입장을 내비치며 자율협약 종료를 선언했다.
브리핑 단상에 선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조 회장의 무책임을 노골적으로 지적했다.
이 회장은 한진해운 자율협약 종료 관련 브리핑에서 "대주주로의 책임 있는 모습이 미흡했던 데다, 대규모 추가 지원에 나선다 해도 기업가치 제고보다는 해외채권자들의 채권 상황에 쓰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자율협약 종료 시한(9월4일)까지 시간이 남았지만 한진해운은 모든 것을 체념했다. 결국 다음 날인 31일 법정관리 신청을 위해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다. 이사회에는 7명의 이사 중 조 회장을 제외한 6명이 참석, 만장일치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서를 받아든 법원은 국가 경제의 중대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해 이례적으로 하루 만인 지난 1일 최종적으로 개시 결정을 내렸다.
한진해운의 추락은 그렇게 단 4일 만에 결정됐다. 정상화의 꿈은 130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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