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보험료 1200만원 내고 해지 땐 350만원 받아
#. 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해 7월 카페에서 여자친구의 지인인 보험설계사를 만나 변액보험을 가입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나중에 낸 돈보다 훨씬 많은 금액에 이율도 3%대로 높아 주저 없이 월 100만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1년 후 자신이 가입한 상품이 저축성이 아닌 종신보험이고 해지시 받는 금액도 거의 없는 것을 청약서류를 보고 뒤늦게 알게 됐다. A씨는 1년 동안 보험료로만 1200만원을 냈는데 해지환급금은 350만원에 불과했다. 원금은 고사하고 850만원을 날리게 된 셈이다.
#. B씨는 어머니 동네 사람인 보험설계사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암보험을 들어야 한다며 가입을 권유했다. 보험에 가입할 생각은 없었지만 계속적인 보험권유에 못 이겨 어머니를 통해 자필서명을 받아가서 보험을 가입했다. 회사 일이 바빠 약관을 크게 살피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아시는 지인분이니 나에게 맞는 보험을 추천해 주었을 것이라 믿고 보험료를 납입했다. 하지만 추후 재무설계 상담을 받아보니 가입한 보험이 암보험이 아닌 종신보험에 갱신형 암특약인 것을 알고 후회했다.
#. 전업주부 C씨는 딸이 살 오피스텔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갔다가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저축은행은 금리가 높아 부담스러워 고민하던 중 자신이 가입해 놓은 연금보험이 떠올랐다. 장기보험상품이라 중도 해지를 하면 원금조차 보장받을 수 없었지만 당장 돈이 필요해 2년 만에 해지를 신청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보험 상품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지만 손해를 감수하고 보험을 깨는 소비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28일 금융감독원 공시를 보면 지난해 생명보험사의 13회차(13개월) 보험계약 유지율은 81.9%, 25회차 유지율은 65.9%로 집계됐다. 10명 중 2명 가까이는 1년 안에, 3~4명은 2년 만에 계약을 해지한 셈이다.
지인의 말만 믿고 상품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가입하거나 갑자기 목돈이 필요해 보험을 깨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경기 침체로 보험금을 내지 않아 해지된 건수도 늘고 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효력상실로 해지된 건수는 지난해 1~5월 184만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 185만4000건으로 소폭 증가했다.
금감원에 접수된 보험료 관련 민원은 매월 60~70건으로 이 중 90%가 보험료를 돌려달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민원이 수용되는 비율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분쟁에서 이기려면 불완전판매를 입증해야 하는데 사실상 상품 설명서와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본인인증 및 동의절차를 구하면 서류상으로는 불완전판매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입자는 해당 사실을 몰랐다고 하지만 서류에는 상품에 대한 설명이 다 기재돼 있기 때문에 일단 서명을 하면 소비자의 책임이 된다"며 "가입 전에 자신이 가입한 상품이 무엇인지 약관을 꼼꼼히 살피고 가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품 구조 자체가 복잡해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약관 내용이 지나치게 많고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있는 사항은 강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계사는 해지 환급급 등 유의사항도 설명하지만 상품의 장점만을 강조하며 신계약에 열을 올린다.
금융소비자연맹 이기욱 사무처장은 "보험 상품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동의 절차가 많다는 민원이 잇따라 절차를 간소화하고 내용을 단순화하는 작업 등을 병행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보험상품을 한데 모은 보험다모아 홈페이지도 보험사의 호응 부족으로 소비자에게 필요한 알맹이는 빠져 있다. 상품 설계 자체가 복잡하다보니 소비자가 따져보고 온라인으로 가입할 수 있는 여건도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험료 금액이 적지 않은데도 소비자들이 보험에 가입할 때 신중하지 않은 경향도 있다"며 "유지율이 높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상품을 팔았거나 자신을 꾸준히 관리해 줄 수 있는 설계사 조직을 갖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지표도 참고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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