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부제철 자율협약 합의로 한숨 돌린 동부그룹에 또 다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룹 제조부문 지주회사인 동부CNI가 코 앞에 다가운 만기 회사채 상환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동부그룹이 해법을 찾지 못할 경우 동부CNI의 법정관리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결국 오너일가 소유의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내놓으라는 채권단의 압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1일 금융권과 동부그룹 등에 따르면 산업은행 등 11개 채권단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산은 본사에서 실무자 회의를 열고 동부제철의 자율협약을 찬성하기로 뜻을 모았다.
또 차환발행심사위원회를 통해 동부제철의 만기 도래한 회사채를 갚기 위해 추가 차환을 발행하는 것은 승인했다.
이날 채권단의 결정은 그동안 동부제철의 자율협약 체결의 가장 큰 걸림돌었던 신용보증기금이 한 발짝 물러선 것을 의미한다. 신보는 그동안 동부제철 회사채 차환발행의 전제조건으로 우선변제권을 요구해왔다.
신보가 우선변제권을 철회하면서 자율협약 체결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채권단은 이날 동부제철의 자율협약 체결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했다.
동부제철은 전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자구계획안과 함께 자율협약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산은에서 일부 문구의 수정을 요청, 반려한 상태다. 동부그룹은 금명간 동부제철의 자율협약 신청서를 다시 제출할 예정이다.
동부제철이 자율협약신청서를 제출하면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다른 채권단으로부터 서면으로 동의 여부를 구해 자율협약 돌입 여부를 결정짓게 된다. 이미 자율협약 체결의 전제조건인 전 채권단의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동부제철의 자율협약 개시는 시간 문제로 보인다.
이로써 그동안 '동부 패키지(동부인천공장·동부발전당진)' 매각 불발이후 발을 동동 구르던 동부그룹은 일단 한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동부그룹의 상황은 아직 녹록치 않다. 일단 한 고비 넘겼지만 동부CNI의 문제가 여전히 그룹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다.
동부CNI는 오는 5일과 12일 각각 200억원과 300억원의 규모의 회사채를 상환해야 한다. 9월에도 200억원 규모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동부CNI는 이를 위해 IT 사업부문을 동부화재 등 금융계열사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지만, 당장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과는 거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기업분할과 주주총회 등 거쳐야할 절차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동부CNI는 경기도 안산 공장을 담보로 250억 규모의 담보부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을 추진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구체적인 상환능력과 투자위험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할 조짐을 보이자 계획 자체를 철회했다.
동부CNI는 안산 공장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동부CNI 관계자는 "담보부사채 발행이 금융당국에 막히고, 동부CNI IT사업부문의 매각도 당장 회사채 만기를 막을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며 "안산공장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회사채 상환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이 좀 더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선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방법이 여의치 않을 경우다. 채권단은 동부그룹이 자체적으로 CNI의 자금 문제를 풀지 못하면 법정관리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동부CNI는 제2금융권 여신이 많고, 회사채 만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데다 회사채 등급이 투기 등급으로 떨어져 채권단이 이를 지원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동부제철은 자율협약을 통해 경영정상화 과정을 밟을 수 있지만, 동부CNI의 경우 동부 측에서 자력으로 회사채 상환 자금을 조달하지 않으면 채무불이행에 빠져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동부그룹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는 셈이다. 동부CNI발 위기는 다른 계열사로 전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부CNI는 동부제철, 동부하이텍, 동부건설, 동부메탈 등 제조부문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그룹 내에서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동부CNI가 무너진다면 동부그룹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해법은 결국 김준기 회장의 장남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이 보유 중인 동부화재 지분을 추가 담보로 제공하는 것이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줄기차게 요구 중인 방법이다. 채권단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자금 지원을 해주겠다는 입장이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김 회장은 동부화재에 대한 아들의 지분이 본인과 상관이 없다면서 채권단에 담보제공을 거부하고 있다"며 "남호씨가 자수성가한 사업가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김 부장이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14.06%)은 대부분 금융권에 주식담보 등이 설정돼다. 하지만 처음 자금을 빌릴 때 2만원 미만이던 주가가 현재 5만원대까지 오르면서 추가 담보 여력이 3000억원 가량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동부그룹 측의 입장은 여전히 완강하다. 그룹 관계자는 "김남호 부장 지분을 내놓으라는 것은 그룹을 통째로 달라는 소리"라면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비금융 계열사의 자금 문제를 금융계열사의 지분 담보 제공으로 푸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엿다.
문제는 다급한 상황에 비해 동부그룹이 가진 패가 빈약하다는 점이다. 불길을 잡기는 커녕 당장 발등의 불조차 끌 여력이 없어 보인다.
동부그룹은 "다양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면서도 "아직까지 확정된 바는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산은측 관계자도 동부CNI 회사채 만기 도래와 관련 "차환 발행 등 지원에 대해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