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제14호 태풍 ‘덴빈(TEMBIN)’ 의 영향이 채 가시지 않은 오후 3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은 엘리베이터 입구부터 삼삼오오 짝지어 온 관광객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태풍의 영향으로 궂은 날씨임에도 관광객들은 아랑곳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밖의 후덥지근한 날씨와 대조적으로 면세점은 쾌적하고 시원했다. 9층과 11층에 자리한 한국 화장품 매장에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화장품 매장을 바쁘게 오가며 제품을 구매하고 있었다.
화장품 매장 근처에서 서성이는 외국인의 손에는 화장품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목록이 들려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자리 잡은 수입 화장품 매장에는 직원들만 겸연쩍게 서서 건너편 관광객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한국산 화장품 코너와 대조적이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최근 한국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 한 층의 반도 안 되던 한국 화장품 매장을 확장하고 11층에도 화장품 매장을 추가했다"며 "그래도 워낙 손님이 많아 매장이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또 "외국 제품 매장은 상대적으로 손님이 적다"고 덧붙였다.
설화수 매장에서 근무하는 이정현(27·여)씨는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항상 손님이 많다"며 "비가 오는 날에는 매장 안으로 들어오는 관광객이 많아 훨씬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여성 고객은 대부분 구매 목록을 적어와 화장품을 구매해간다"며 "기업체 직원들은 선물용으로 417달러 하는 5종 세트 같은 것을 5~10개 정도 구입하고 스킨과 로션으로 구성된 2종세트는 10개도 넘게 사간다"고 말했다.
화장품 매장 곳곳은 특히 상품에 대해 물어보고 상품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뒤엉켜 시끌벅적했다.
중국의 한 유명 백화점에 있는 와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의사소통이 중국어로 이뤄졌다. 빨간 표식을 두른 중국어 통역사가 매장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면세점 관계자는 "특히 한국산 화장품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다"며 "면세점 모델에 중국 여배우를 등장시키는 등 면세점에서는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색조화장을 적게 하는 중국인들은 스킨과 로션, 크림 등 기초 제품을 많이 찾았다. 특히 보습력에 만족했다.
중국에서는 설화수와 라네즈, 후 등의 제품이 인기가 높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어머니와 함께 쇼핑을 나온 중국인 관광객 량징(24·여)씨는 "한국 화장품은 중국 백화점에서도 많이 팔리고 인기가 많다"며 "한국 화장품은 사용했을 때 자연스럽고 중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한국 화장품이 잘 맞는다"고 한국 화장품이 좋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중국 화장품은 종류가 적고 좋은 게 많이 없어서 한국 화장품을 많이 찾는다"며 "특히 한국의 기초 화장품과 기초제품이랑 수면팩 등을 좋아 한다"고 덧붙였다.
친구와 함께 화장품을 구경하던 리우빙(42·여)씨도 "중국에서는 라네즈나 후, 설화수가 유명한데 특히 한국의 화장품은 보습력이 뛰어나다"며 "한국 화장품은 중국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품질도 좋아 주변 친구들에게 선물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 화장품을 사는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는 여성 고객뿐만 아니라 남성 고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직접 제품을 구매하는 남성 고객이 있는가 하면 아내 혹은 여자 친구의 쇼핑백을 들고 에스컬레이터 한 구석에서 쇼핑이 끝나길 기다리는 남성도 많았다.
어린 아들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는 중국인 장잔보(46)씨는 "매장 두 곳 정도 들러 아내에게 줄 화장품을 샀다"며 "한국 화장품이 왜 좋은지 (나는) 잘 모르지만 아내가 문자로 화장품을 꼭 사오라며 브랜드와 제품 목록을 보냈다"며 밝게 웃었다.
딸과 함께 화장품 매장을 찾은 한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 화장품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일본인 관광객은 색조제품과 화장품 용기가 귀여운 제품을 선호했다. 에뛰드나 토니모리, 더페이스샵 등의 로드샵에서 제품을 사는 것도 좋아했다.
에뛰드 매장에서 근무하는 서지연(26·여)씨는 일본어는 물론 중국어도 유창했다. 그는 "일본인 관광객의 경우 화장품 포장이 귀엽거나 색상이 화려한 제품을 선호하는 편"이라며 "최근에는 중국인 고객도 많다"고 설명했다.
큰 눈에 정교한 눈화장이 인상적이었던 일본인 관광객 미유(27·여)씨는 "일본에서 한국 제품은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이 괜찮아 인기가 많다"며 "친구랑 우선 면세점에서 구경을 한 다음 명동 거리로 나가서 더 많은 제품을 살 계획"이라고 멋쩍어 했다.
또 일본인 카나(18·여)씨는 "한국 화장품은 사용하기가 간편해서 좋다"며 "아직 학생이라 화장품을 많이 쓰지는 않지만 한국 제품은 로드샵이 많아 손쉽게 살 수 있고 양이 많으면서 싸기 때문에 좋다"고 수줍게 말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난 오후 4시, 면세점 화장품 매장은 한 곳에 오래 서서 구경하기도 무색할 만큼 많은 관광객으로 꽉 차버렸다. 면세점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의 줄도 여전히 길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