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서체 개발로 유명한 서예가 효봉 여태명 교수(원광대학교 미술대학)가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단체 등을 대상으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기획적인 손해배상을 요구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10일 복수의 기관 단체 등에 따르면 여 교수는 최근 변호사를 선임해 자신이 개발한 서체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이유로 지자체와 대학, 기업, 단체 등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여 교수가 손해배상을 요구한 곳은 지자체는 물론, 대학과 기업, 디자인 업체 등 다수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여 교수측이 요구한 배상액은 1곳당 많게는 수천 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피소송 처지에 놓인 곳의 배상액을 모두 합칠 경우 액수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여 교수측으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은 정읍시의 경우 지역을 대표하는 쌀 브랜드인 '정읍 단풍미인'의 상표 중 '정읍'자를 여 교수가 개발한 '축제체'로 사용, 20여 년 동안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읍시 관계자는 "브랜드 디자인 제작에 참여한 업체가 여 교수의 서체가 담긴 CD를 구매, 일부를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지 몰랐는데, 시일이 상당기간 지난 상황에 이런 통보를 받아 당황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 소고기 판매 업체인 A사 역시 여 교수측으로부터 5000만원의 피해 배상을 요구받았다. 이 업체는 브랜드명이 아닌 포장지에 '100% 우리고기'라는 글자를 여 교수의 서체로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A사 관계자는 "당시 인터넷에 있던 여 교수의 글자체를 본 떠 자체 제작 과정을 거친 후, 제품 포장지에 이같은 글자체를 넣은 것"이라며 "사전 협의없이 서체를 사용한 것은 인정하지만 너무 큰 금액을 요구해 변호사 선임을 통해 대응 중"이라고 말했다.
디자인 업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북지역의 디자인 업체인 B사는 최근 여 교수측으로부터 수천 만원의 피해 배상을 요구받았다.
B사 관계자는 "여 교수측의 배상 요구가 실제로 이뤄진다면 영세한 업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될 것"이라며 "서체 도용을 발견했을 당시 문제를 제기했다면 업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인데, 이제와서 전방위적으로 배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저작권보다는 다른 쪽에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겠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이에 대해 여 교수는 "변호사를 선임해 다수의 서체를 무단 도용한 기관 및 기업 등에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CD를 사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무단 도용한 쪽의 핑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또 여 교수는 "서체를 무단 도용한 쪽에 (내용증명을 보냈지만)소송을 걸기보다는 합의를 보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며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여 교수로부터 배상과 관련된 업무를 위임 받았다는 박모씨는 "우리는 법적으로 하고 있고, 기자와는(언론과는) 무관하다"며 배상과 관련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