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비핵화 대화 중재안 마련을 위해 장고(長考)에 들어갔던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이 아닌 미국을 설득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포괄적 합의·일괄 타결’이라는 협상 방침을 고수해 온 미국의 접근법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이 내린 잠정적인 결론이다.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1~2차례의 추가 정상회담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7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을 끝으로 내린 문 대통령의 향후 액션플랜(Action plan·실행계획)에 대한 구상을 부분적으로 공개했다.
교착 상태에 빠진 비핵화 대화 상황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선 남북미 3자 정상간의 협력 구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조성된 남북 정상 대화 국면을 잘 활용해 나가기 위해 고민하겠다는 3가지 방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이러한 구상은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양측과 접촉하며 회담 결렬 상태를 복기하고, 처음 나온 북한의 공식적인 반응까지 지켜본 뒤 공개한 것이라 시사점이 크다.
청와대는 그동안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과정을 정밀하게 복기하고, 그 토대 위에서 전략적 판단과 문 대통령의 추후 행보를 결정할 수 있는 ‘액션 플랜’(Action plan·실행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혀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우선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에 따른 북미 양측이 떠안게 된 득실에 대한 나름의 평가에 대해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거꾸로 북한이 이번 합의 무산으로 경험한 ‘내상(內傷)’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무산으로 인한 북미가 입은 각각의 손익을 따져보면 미국은 이득을 챙겼고, 반대로 북한은 잃은 부분이 더 많다는 게 이 고위관계자의 분석이다.
이러한 인식은 향후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우리 정부의 중재 전략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과정에서 드러난 트럼프 행정부의 ‘포괄적 합의·일괄 타결’ 방식만을 고수해서는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이 극력 반대하고 있는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 방식으로는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에둘러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과거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렸던 ‘리비아식 해법’을 ‘빅딜(big deal)’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북한이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최 부상이 핵·미사일 시험 재개 여부에 대한 김 위원장의 결단이 임박했다며 북한의 ‘벼랑 끝 대치’를 시사한 것도 이러한 판단에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가 판단하고 있는 효과적인 협상 전술에 대한 개괄적인 구상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하노이 회담을 통해서 확인된 한 번의 비핵화 담판을 통해서는 원하는 것을 한 꺼번에 얻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교훈을 상기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가 수반되지 않고서는 접점이 마련될 수 없다는 북한측 입장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도 해석된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서는 큰 틀에서 1~2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거쳐야 한다는 것으로 우선 ‘비핵화 입구’를 찾는 데 노력해야 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첫 회담에서는 비핵화 입구와 출구를 명시한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두 번째 회담을 통해서 구체적인 타임라인과 조건들을 맞춰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 고위관계자는 ‘비핵화의 출구와 관련해 백악관이 갖고 있는 입장과 거리감이 있다’는 지적에 “한미 간 긴밀한 대화를 유지하고 있고, 비핵화의 최종 단계 즉, ‘end state’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에 대한 기본 인식은 한미 간에 전혀 차이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렇듯 바람직한 비핵화 협상의 재개 방안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밑그림이 그려진 만큼 문 대통령이 조만간 김정은 위원장에게 우리 정부의 이러한 구상에 대한 수용 가능성을 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의 입장을 전달, 최종 북미 정상의 대화를 매개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