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중단된 북미 실무대화의 조속한 재개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남북협력사업의 속도감 있는 추진을 강조한 것은, 남북 간에 우선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자는 원론적인 메시지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외교·통일·국방부 장관에게 “제재의 틀 내에서 남북관계의 발전을 통해 북미 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들을 최대한 찾아 달라”며 “특히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남북협력사업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적 발전이라는 ‘두 바퀴 평화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 기존에 지켜오던 평화 구상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내놓는 대책들은 북미 정상 간 협상이 결렬된 이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맞춤형 방안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따라서 다소 원론적인 수준이라 할지라도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고자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정부 의지가 여전하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차원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는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문 대통령이 “중재안 마련 전에 보다 더 급선무는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말한 것도 북한의 이탈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협상 결렬 이후 여전히 문은 열려있다는 미국과 북한이 보인 반응에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 문 대통령이 고민하고 있는 지점으로 보인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북미 정상 간 협상 결렬 상황 이후의 대응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기존 구상을 재확인 한 것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평양으로 복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한 메시지로도 읽힌다.
다만 그동안 남북이 함께 그려왔던 구상들이 번번이 미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재에 나서야 하는 문 대통령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남북미 3자 종전선언, 영변 핵폐기, 제재 완화 등 남북 정상이 함께 논의했던 구상들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밀어붙였던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은 중국의 개입으로 흐지부지 됐고, 평양선언에 명시한 상응조치를 전제로 한 북한의 영변 핵폐기 의사도 이번 협상의 긍정적 카드로 활용되지 못했다.
또 영변 핵폐기와 연계된 제재 완화 역시 미국이 수용하지 않으면서 회담 결렬을 막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정상을 회담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의 상응조치 카드로 한국을 활용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미국의 셈법 밖으로 밀려났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트럼프는 지금까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과정이 잘못됐고 ‘센토사 합의’와 ‘평양선언’마저도 그 이전으로 되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 정부 역할을 자신들의 이익에 견줬을 때 긍정적 요소만을 제외하고는 배제시키려 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가 그동안 기대감에 사로잡혀 희망적 사고만 해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