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집값 상승세에 놀란 정부가 당초 공급하기로 한 공공택지 30여만호중 일부를 추석전 발표하기로 하면서 과열된 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한편에서는 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과감한 공급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반대로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 공공택지 공급이 오히려 투기 심리를 조장해 집값 상승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특히 정부가 최근 서울지역에서 추진 예정이던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을 엎어버린 마당에 어떤 카드가 나올지 시장은 숨을 죽인채 지켜보고 있다.
5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4일 추석을 앞두고 서울 등 수도권내 신규 공공주택 지구를 추가로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발표한 신혼희망타운과 일반주택공급을 위한 14곳(6만2000호)와 별개로 이미 계획됐던 16곳과 지난달 ‘8·27대책’을 통해 신규 지정하기로 한 14곳 등 총 30여만호중 택지 조성계획에 윤곽이 드러난 지역부터 차례로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공공택지 추가 공급 결정은 그동안 정부가 ‘주택공급은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그만큼 뛰는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강력하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2022년까지 주택공급은 충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부족에 대한) 우려가 있으니 추가 지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여당과 지자체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부는 공급대책을 이른 시일 내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고 서울시에서도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에 동의하고 공감한다”고 밝혀 정부의 공급 확대 방침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
정부의 섣부른 주택공급이 오히려 집값을 자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도시재생특별위원회는 최근 서울지역에서 동대문구 장안평 중고차 시장, 종로구 세운상가, 금천구 우시장 등 3곳에서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려다 “집값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결론을 내고 사업을 보류했다.
여기서 낙후지역을 정비해야 한다는 시급성보다 집값 안정에 우선 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정부의 근심이 읽힌다.
국토부 관계자는 “도시재생사업도 공공택지 공급대책으로 활용 가능한데 집값 불안 때문에 버리는 카드가 됐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재건축·재개발의 경우도 정부가 ‘집값 급등의 주범’으로 지목한데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활 등으로 인해 사업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주택공급에 나설지에 대해 시장은 숨 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현재 정부가 공공택지 확보를 검토하는 방안은 ▲그린벨트를 풀거나 ▲국공유지, 유휴지를 택지로 활용 ▲도심 역세권의 상업·준주거지역에서 주거비율 제한을 풀어주는 방법 등이 거론되고 있다.
대신 효과성은 논란이다. 가장 우선순위로 점쳐지는 그린벨트의 경우 도심 접근성과 자원 보전 등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지역을 찾기가 쉽지 않다.
후보지로 물망에 오른 서초, 강서, 은평 등은 도심 접근성은 높지만 보전의 필요성도 높아 서울이 그린벨트 해제에 동의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서울시는 이날 “그린벨트 해제는 미래세대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마지막까지 고민해야할 영역”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이번에 공공택지 추가 지정과 관련해 유독 ‘교통이 편리한 지역’을 강조하는 이유가 서울 외곽, 수도권지역 등을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도 나온다. 또 막상 선정이 되더라도 택지개발부터 입주까지 7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 지금 당장에 불이 붙은 서울 집값을 꺼뜨릴 수 있는 변수가 될 수 있을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집값 오르는 것이 무서워 주택 공급을 미루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부가 이제라도 (집값 안정을 위한 제대로 된) 방향을 찾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며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강남지역과 가까운 곳을 중심으로 택지 개발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주변 땅값이 오르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안정될 것이기 때문에 일부 나쁜 요소가 있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정책”이라고 밝혔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정부의 공공택지 공급 계획은 정공법”이라며 “사람들이 살고 싶은데 주택공급이 된다는 신호를 강력하게 보내면 무주택자의 주거불안을 진정시켜 상승세도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공기관 122개 이전 추진은 매우 효과가 큰 정책”이라며 “근로소득이 안정적인 공기업 직원이 서울을 대거 빠져나가면 수요가 크게 줄어 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존의 실패를 답습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노무현정부는 5년간 국민임대주택 50만호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공급량을 크게 늘렸지만 오히려 집값을 부추기는 꼴이 됐다. 집값 안정 차원에서 추진된 판교, 위례 등 신도시개발이 이후 투기 심리를 부추기는데 일조해서다.
특히 최근 몇년간 초저금리를 지렛대 삼아 시중에 풀린 유동성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건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돈없는 사람은 ‘지르지’ 못하지만 시중엔 돈 있는 사람이 넘쳐 난다”며 “투자와 투기의 경기가 모호해지고 시장 참여자들은 너무 똑똑해 정부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데 정부만 그걸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