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집값만 잡으려고 하지 말고 전국적으로 시장을 파악해 중장기적인 효과를 생각해서 정책을 만들어야한다."(심교언 건국대 교수)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규제를 내놨지만 결국 수도권이나 지방까지 법이 다 적용되면서 시장 침체가 가속화 됐다."(권대중 명지대 교수)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간 부동산 정책은 '규제'로 시작해서 '규제'로 끝났다.
투기과열지구·투기지구 확대, 분양권 전매 제한, 재건축 사업 연한 연장,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의 강도 높은 규제가 뒤를 이었다. 여전히 '보유세' 도입 등 부동산 시장을 잡는 칼날은 끝이 아닌 진행 중이다.
과열된 시장을 단기간에 잡으려다보니 증상 보다 과도한 약을 처방했고, 효과는 뛰어났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시장이 소강상태, 혹은 안정화 단계에 접어섰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다만 그로 인한 청약 쏠림현상이나 시장 양극화, 서민들의 주거 환경 악화 등의 부작용도 따라왔다고 지적한다.
10일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평균 서울 아파트값은 6억9000만원, 강남권은 11억8000만원으로 문재인 정부 이후 각각 1억2000만원, 2억6000만원 이나 상승했다. 4월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시행이후 집값이 일부 하락하고 있지만 그동안 상승치와 비교하면 여전히 집값은 비정상적으로 비싼 상황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주거복지로드맵, 가계부채 대책 등은 선진국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잘 만든 정책"이라면서도 "하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은 몇 주도 안 되 새로운 보완책이 나오는 등 부처 간의 조율이 안 되면서 어설픈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5월 10일 문재인 정부가 취임했을 당시 부동산 시장은 뜨거웠다. 분양 시장의 청약 제도 간소화로 인해 분양권 차액을 얻으려는 단타 수요가 팽배했고, 저금리 유동 자금이 몰리면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 수요도 증가했다.
그만큼 가수요, 투기 수요가 늘어나면서 집값은 가파르게 올랐고, 문재인 정부 역시 출범 직후 가장 먼저 풀어야할 문제로 집값 안정화를 꼽았다. 이에 집권 한 달만에 6·19 부동산 대책을 내놨고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하다는 8·2 대책까지 쏟아냈다.

금융 대출도 규제했다. 중도금 대출한도와 보증한도를 낮춰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했고, 신DTI(총부채상환비율)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단계적으로 도입해 다주택자들의 대출을 억제했다.
그 과정에서 시장 과열은 일부 막았지만 대기 수요가 있는 지역이 피해를 본다거나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실수요층의 경우는 대출이 막히면서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기존 재고 주택 시장에 뛰어들기 힘들다보니 청약 시장에 수요가 몰렸고 청약 단지 역시 향후 집값 상승의 여력이 있는 단지로만 몰리다보니 쏠림 현상,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일부 2030세대나 신혼부부, 실수요자들을 위한 청약제도 개편이나 대출 완화 등의 정책을 펼쳤지만 여전히 실수요자들을 위한 금융 포용 정책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 센터장은 "문재인 정부가 대출, 세금, 청약, 금리 등을 이용해 유동성 줄여 투기 수요자들이 시장에 발 붙이기 어렵게 만든 부분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반면 너무 수요 억제책에 치중했고 풍선효과 나오면 누르고 규제하기 바빠 보였다"고 전했다.
◇"강남 잡아라"…늘어만 가는 정부의 고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 대책 중심엔 늘 '강남'이 있었다. 비단 문재인 정부 뿐 아니라 모든 정권들이 강남 집값 잡기에 부동산 정책의 초첨을 맞췄다. 강남 부동산은 대한민국 전체의 1%도 안 되지만 부동산 시장을 이끄는 '바로미터'가 되는 만큼 정책의 99%가 '강남 집값'에 맞춰진다.
문재인 정부가 6·19 대책을 내놨음에도 단기간에 바로 추가 규제 정책을 쏟아낸 이유도 강남 집값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역시 정권 초기에 규제대책을 쏟아냈지만 강남 집값이 급등하는 것을 보고 고민이 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러한 강남과의 전쟁은 참여정부 시절에도 이뤄졌다. 노무현 정부의 집권기인 2000년대 중반의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과의 전쟁'을 방불케했다. 투기억제 정책이 연이어 나오고 실거래가 신고제와 등기부 기재 도입 등 금융실명제에 버금가는 정책을 내놨다. 2005년에는 부동산 세제 개편과 함께 개발이익환수제도 도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버블 세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강남과의 전쟁에서 실패했다. 오히려 강남, 서초, 송파, 목동, 분당, 평촌, 용인의 경우 20.7%의 집값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에 전문가들 역시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의 실패를 딛고 부동산 정책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강남 대첩 2.0에서 승리를 해야한다고 보고 있다. 강남 집값을 잡지 못한다면 또 다시 시장은 과열될 것이고 그동안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면서 예전보다 더 큰 과열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강력한 규제책 덕분에 올해 들어 부동산 시장은 안정을 찾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4월 마지막 주 기준으로 강남 4구 집값은 4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8·2 부동산 대책과 가계부채 종합대책 등이 효과를 내면서 한동안 이러한 하향 안정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권일 부동산 인포 팀장은 "강남 재건축 시장은 기대만큼 가격이 안떨어지고 매물도 많이 안나오다보니 주춤한 상태"라면서 "보합세가 유지되면서 소폭 조정된 상황에서 움직이고 있고 한동안 관망세 지속되면서 조금 더 조정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러한 안정세가 오래 갈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와 강남 집값과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또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무리해서 규제 정책을 펴다간 지방이나 수도권 시장도 다 같이 망가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공급 정책을 손보지 않는다면 강남 집값을 잡기는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당분간 문재인 정부의 기조는 현재의 규제를 지속할 것으로 예측된다. 조금이라도 규제가 완화되면 다시금 시장 과열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강화 등 강남 시장을 압박하는 카드는 정권 내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단순 규제가 아닌 공급 병행 정책 등 근본적인 처방 필요
관건은 이러한 규제가 향후 강남 아파트의 집값을 떨어뜨리고 대한민국 집값을 하향 평준화 시키는데 도움이 될지 여부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매도자와 매수자의 눈치 싸움이 이어지면서 관망세가 지속, 집값 하락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권대중 교수는 "집값이 가격이 오를 땐 앞만 보고 가는데 떨어질 땐 바로 뒤만 쳐다 본다"면서 "10억원 아파트가 20억원이 되면 과거에 10억원이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얼마 전까지 20억원이었으니 더이상 떨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해 하향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집값 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급 물량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해봐야한다는 분석이다. 이미 강북의 경우는 도새재생 뉴딜 사업이나 역세권 청년 주택, 그린벨트 해제 등 소규모 정비 사업을 통해 일부 물량을 늘리고 있다.
강남 역시 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는 물량 공급 문제를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작정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공급에 관한 부분도 고민해야된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선 비싼 집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값싸고 질좋은 공공주택 확충, 투기를 조장하는 선분양 폐지, 불로소득을 용인하는 부동산 세제 정상화 등이 진행돼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양지영 R&C 연구소장도 "강남 재건축 시장을 강하게 막아놓으면서 공급 억제를 시켜놨기 때문에 오히려 강남의 희소가치가 더 높아졌다"면서 "들어가려는 사람은 많은데 나오는 매물이 적다보니 3~4년 후에는 또 한 번 급등이 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 팀장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시행, 재건축 사업 추진기준 강화 등 이후 강남재건축 아파트들도 하락하는 상황이지만 집권 이후 상승한 값에 비하면 여전히 집값은 비정상적으로 비싸다"라면서 "하락세를 나타내는 지금이 아파트값 거품을 빼기에 적기인만큼 정부가 좀더 강력하게 집값안정 의지를 밝히고 근본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