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정유업계가 일자리 창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계가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라는 지적이다.
특히 올해 정유업계는 정제마진 강세와 유가 안정화 등으로 사상 처음 영업이익 8조원 돌파가 예상되고 있다.
그런데도 이같은 여력을 활용해 신규 직원을 채용해 청년 실업 해소 등 사회에 공헌하기 보다는 기존 직원들의 월급 인상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서 ‘자기식구 챙기기식 임금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힐난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27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올해 3분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친 근로자의 총 인원은 157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484명보다 93명 늘어 6.26% 증가했다. 채용인원이 늘긴 늘었지만 여전히 임금 상승률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같은 기간 직원들이 받는 임금은 지난해 8200만원 수준에서 올해 9300만원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임금 상승률은 전년동기대비 13.41%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GS칼텍스도 올해 3분기 근로자의 총 인원은 2922명으로 지난해 3분기 2929명보다 7명(-0.23%) 줄어들었다. 이중 정규직은 지난해보다 60여명 늘었지만 비정규직은 67명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직원들의 연봉은 지난해 7820만원에서 올해 8596만원으로 전년동기대비 776만원 증가했다. 임금 상승률은 전년동기대비 9.92%로 나타났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인력 증감이 없었다. 이 회사는 올해 3분기 1801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지난해와 같은 수치다.
이에 반해 월급은 지난해 6600만원 수준에서 올해 3분기 7100만원 수준으로 500만원 가량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에쓰오일의 경우 올해 3분기 3258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3052명보다 6.5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직원당 평균 연봉은 8821만원에서 9031만원으로 올랐다. 임금 상승률은 2.38%를 기록했다.
정유업계에서는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업종 특성상 설비를 가동하기 위한 인원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국제 유가가 평균 100달러 이상에서 60달러 선까지 급락했을 때 국내 정유업계에서는 재고평가 손실 발생 등을 이유로 인력 감축을 단행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2014년 2241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이후 ‘만 44세 이상으로 5년 이상 근무자나 만 44세 미만 중 10년 이상 근무자’ 등을 대상으로 특별퇴직을 실시했다.
SK이노베이션은 당시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회사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위기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특별퇴직을 시행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특별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한 이후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채용에 인색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업계 선두기업으로 타기업에 비해 고용 창출에도 상대적으로 애쓰고 있는 점은 인정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업계는 매출액 대비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며 “회사의 입장에서는 기존 인력들에 대한 대우를 좋게 해주고 채용을 줄이는 것이 더욱 남는 장사일 수 있어 일자리 창출에 인색한 것”이라고 말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독일은 2008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금융 위기 상황에서 기업들이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보다 근로자와 함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데 초점을 뒀다”며 “위기를 극복한 이후 근로자와의 상생 경영을 강화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독일의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