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에서 시작된 채용비리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금감원이 9일 비위행위가 적발된 임원을 직무에서 배제하는 한편 퇴직금의 50%를 삭감하는 등의 ‘고강도 쇄신안’을 내놨다.
채용과정에서 부정개입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채용 전(全) 과정은 블라인드 방식으로 실시하고, 최종 면접위원의 절반 이상은 외부 전문가로 구성키로 했다.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하고, 직무관련 주식거래는 전면 금지하는 등 직원의 일탈 행위에 대한 내부통제 방안도 마련했다. 투명성 강화를 위해 직무 관련자와의 1대 1 면담은 금지했다.
최흥식 금감원장과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인 조경호 인사·조직문화 혁신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쇄신안을 발표했다.
앞서 금감원은 채용비리 등으로 인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지난 8월 말 인사행정 전문교수, 언론사, 금융기관 최고경영자,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가 직접 참여하는 ‘인사·조직문화 혁신 TF’를 구성했다.
그간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추진해온 금감원 자체 쇄신은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조 위원장은 “혁신 TF는 지난 2개월여간 철저하게 외부자의 시각에서 금감원의 쇄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논의했다”며 “채용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임직원의 각종 비위 등을 근절하기 위한 쇄신 권고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쇄신 권고안의 주요 내용은 우선 채용 전 과정의 ‘블라인드화(化)’다. 비위 소지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모든 채용단계에서 채점·심사·면접위원에게 지원자의 성명과 학교, 출신 등의 정보를 비공개로 하는 것이다.
학연과 지연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서류전형도 전면 폐지키로 했다. 대신 1차 필기시험을 도입해 능력중심의 평가를 실시키로 했다. 이는 올해 신입직원 채용절차에도 이미 적용 중이다.
최종 면접위원의 50% 이상은 외부 전문가로 구성토록 했다. 면접위원의 친인척 등이 최종면접 대상자일 경우 해당 면접에서 배제된다. 이러한 전 과정은 감사실에서 점검한다.
또 채용공고 시 ‘청탁 등 부정행위로 인해 합격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당해 합격은 취소됨’을 명시하고, 적발된 부정채용자는 채용을 취소키로 했다. TF는 합격취소와 관련한 내규를 조만간 마련할 예정이다.
이번 채용비리는 결재라인인 임원급에서 발단이 된 만큼 임원의 비위행위에 대한 강력한 제재방안도 마련됐다.
우선 비위행위 소지가 적발된 임원은 감찰실에서 자체 조사에 나서고, 비위사실 확인 시 즉시 해당 직무에서 배제키로 했다. 직무배제 시 기본급은 현행 20%에서 30%까지 감액되며, 업무추진비 지급도 제한된다. 임원이 비위행위와 관련해 퇴직할 경우 퇴직금은 50% 삭감된다.나머지 50%는 무죄가 확정될 경우 지급한다.
금감원은 다만 사내 변호사 채용비리 혐의로 물러난 김수일 전 부원장에 대해서는 관련 규정을 소급적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김 전 부원장에게 퇴직금 전액을 지급했다.
최 원장은 “저희 원칙은 법적인 규정 안에서 모든 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저희가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인권보호 차원에서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임원뿐만 아니라 채용비리, 금품수수, 부정청탁 등 직무 관련 3대 비위행위를 저지른 직원들에 대해서는 공무원 수준의 별도 징계기준을 마련하고, 무관용 징계를 내릴 방침이다.
또 음주운전 1회 적발 시 직위를 해제(원스트라이크 아웃)하고, 일정기간 승진과 승급 등에서 배제한다. 2회 적발 시에는 면직 조치(투스트라이크 아웃)한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부당 주식거래가 적발된 만큼 직무관련 주식거래도 전면 금지한다. 모든 직원들은 금융회사 주식을 취득할 수 없으며, 공시국 등 기업정보 관련 부서의 경우 전 종목 주식취득이 금지된다.
또 주식 취득 시에는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하고, 감찰실에서 주식거래 내용을 주기적으로 점검키로 했다.
한편 금감원은 비위행위에 대한 선제적 예방장치도 마련했다.
우선 퇴직 임직원을 포함한 직무 관련자와의 면담 투명성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직무 관련자와 사무실에서 면담할 경우 1대 1 면담이 금지되며, 면담내용에 대해서도 서면보고가 의무화된다.
비위행위가 대부분 외부 식사자리 등에서 발생해 실효성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조 위원장은 “외부에서 만나는 부분까지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공직기강 윤리의식 점검을 위한 자가진단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 상사의 위법·부당지시 및 비위행위 사실을 제보할 수 있는 온라인·비공개 핫라인을 신설하여 운영키로 했다.
조 위원장은 “이번 쇄신안은 채용절차에 부정이 개입될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것”이라며 “노력한 사람이 채용될 수 있는 정의로운 채용절차가 구현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직원의 비위행위에 대해 제재뿐만 아니라 예방 및 교육체계를 구축해 ‘사후약방문’을 방지할 것”이라며 “임직원의 윤리의식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 청렴한 조직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 원장은 “쇄신 권고안을 전적으로 수용해 충실하게 실천해 나갈 것”이라며 “추진 과정에서 채용의 공정성 확보, 퇴직 임직원 접촉 제한 등과 관련한 정부의 후속조치가 나오는 대로 이를 즉시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취임 두 달 넘게 지연되고 있는 임원 인사와 관련해서 최 원장은 “조만간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원장은 “금감원이 공적 기구이고, (인물) 적격성에 대한 (청와대의) 검증이 상당 시간 필요하다”며 “이번에는 대폭적 인사인 만큼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직개편과 관련해서는 “11월 말께 초안이 나올 예정”이라며 “이후 조직 구성원이 같이 초안에 대해 토론하고 그에 따라 여러 방안들이 결합돼서 12월 말까지는 최종 개편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