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한 호우(豪雨)와 가마솥 폭염(暴炎)의 반복은 이제 일상처럼 ‘뉴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이 된 극한 기상위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기후위기로 폭우와 폭염은 해마다 늘어가고 있지만 주거환경은 되레 후퇴하고 있다. ‘지·옥·고’라 불리는 반지하·옥탑방·고시원과 판잣집·비닐하우스 등의 거주자가 크게 늘어가고 있다. 특히 서울의 지하·반지하 주택은 지난 4년 동안 4만 4,000가구나 증가했다. 2022년 8월 8일 집중호우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대피하지 못하고 숨진 참사가 벌어지자 윤석열 정부와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라고 밝혔지만, 실상은 거꾸로 가고 있었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지난 8월 8일 발간한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 실태와 대응 방안’ 제하의 보고서에 의하면, 전국의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는 통계청 집계가 시작된 2005년 58만 7,000가구에서 2020년 32만 7,000가구까지 26만 가구(44.29%) 줄어들며 줄곧 감소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39만 8,000가구로 다시 증가한 것으로 집계가 됐다. 이는 4년 만에 21.7%나 늘어난 것이다. 늘어난 지하·반지하 가구 10곳 중 6곳(62.4%)은 서울이었다. 서울의 지하·반지하 가구는 2020년 20만 1,000가구에서 지난해 24만 5,000가구로 22.1% 이상 늘었다. 특히 관악구가 심각하다. 지난해 지하 거주 가구 수가 2005년보다 더 늘었다. 고시원·비닐하우스 등에 거주하는 가구도 2020년 46만 3,000가구에서 2024년 48만 1,000가구로 증가했다. 경기도는 31개 시·군 전역에서 이런 가구가 늘었다. 서울 시내 반지하에 사는 24만 5,000가구 중 정부·서울시의 지원으로 반지하를 벗어난 곳은 전체의 7,600가구(3.1%)에 불과하다고 한다. 서울시가 ‘반지하 퇴출’ 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던 반지하 주택 매입도 지난 3년간 790여 가구에 그쳤다. 반지하 주택 매입 목표도 2023년 1,050가구, 2024년 704가구에서 올해는 398가구까지 줄었다.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 거주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취약계층으로 고용형태가 불안하거나 가구주가 60살 이상이 다수였다. 주거 약자의 설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요즘처럼 수해나 산불·산사태·폭염 등이 빈발하는 기후위기 시대엔 목숨까지 위태롭게 한다. 2022년 신림동 반지하 참사 이후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지하·반지하 주거를 전면 불허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기존 반지하 가구는 ‘일몰제’를 적용해 10~20년 유예기간 안에 차례대로 없애기로 했다. 그러나 핵심인 공공임대주택 확충 등 후속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빈말에 그치고 말았다. 2022~2023년 반지하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주택도시공사 임대주택으로 이주한 가구는 3,000가구 수준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속 증가했던 공공임대주택 예산도 윤석열 정부에선 오히려 줄었다. 지하 거주 가구는 지난 일주일 동안 가구주가 임시·일용직으로 일한 비율이 41%로 전체 가구(14.3%)와 견줘 크게 높았다. 이들의 월평균 경상소득은 231만 3,000원으로 전체 가구 376만 8,000원의 61.4%에 불과했다. 가구주가 60살 이상인 비율은 43.1%, 여성 가구주 비율은 39.6%로 전체 가구 평균보다 높았다. 기초생활 보장 수급가구 비율은 17.9%에 불과했다.
폭염과 폭우는 누구에게나 괴롭지만, 사회적 약자에 피해가 집중된다는 점에서 가장 ‘불평등한 재난’으로 꼽힌다. ‘존 C. 머터(JOHN C. MUTTER)’ 컬럼비아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재난의 상황은 늘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며, 자연보다는 인간이 더 큰 피해를 준다.’라고 역설했다. 어떤 기상재해보다 많은 인명을 소리 없이 앗아가는 ‘침묵의 살인자(Silent Killer)’인 폭염이 우리 여름의 일상이 됐다. 수십 년간의 통계를 보면 장마 일수는 줄고, 폭염 일수는 점점 늘고 있다. 장마전선이 예상보다 일찍 북상하면서 ‘마른 장마’의 양상으로 이어지자, 전국 지자체에 폭염 대응 비상이 걸렸다. 2020년 7월 국토교통부는 훈령인 ‘주거 취약계층 주거 지원 업무처리 지침’을 개정해 홍수·호우 등 재해 우려가 커서 이주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하 거주 임차 가구를 공공임대주택 우선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 하지만 매입임대 물량 부족으로 주거 지원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진 못했다. 이들은 가장 필요한 주거복지 프로그램으로 51.6%가 장기공공임대주택을 꼽았다.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의 75.2%는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희망했으나 주거 취약계층 주거 지원사업 수급 기준을 충족하는 가구 비율은 53.7%에 불과했다.
통상적으로 주거가 고소득층엔 재테크의 수단일지 모르겠지만 저소득층엔 생존의 문제로 귀결된다. 서울 강남 집값을 잡는 것만큼 주거복지 확충이 긴요하다. 관련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고, 수해·감전 등의 피해 발생 가능성이 큰 주거지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맞춤 대책과 전략을 세워야만 한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잠 못 이루게 하는 열대야는 ‘기후 재앙’의 신호로 들이닥쳤다. 위기 대응은 정치권만의 과제가 아닌 국민 모두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 떠올랐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와 2023년 주거실태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 등 규모와 비율의 시계열 변화와 구체적인 실태를 분석한 결과다. 인구주택총조사는 2005년 처음 지하 거주 가구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거주층 문항을 포함했다. 거주층 항목은 2010년까지 현장조사에 기반한 전수조사 항목이었으나, 2015년부터 20% 표본 항목으로 변경됐다. 다만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조사는 등록 센서스에 기반한 전수조사로 이뤄졌다. 정부는 최저 주거기준을 상향하는 내용으로 「주거 기본법」과 「주택법」 개정을 서둘러 추진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본인 소유의 집이 있든 없든 발 뻗고 누워 안전하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당연한 국가의 책무임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