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31일 우리나라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양극화(兩極化 │ Polarization)’를 완화해 나가겠다면서 과제 중 하나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제시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같은 사회 안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도급, 심지어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격차를 말한다. 단순한 임금 차이를 넘어 고용 안정성, 복지, 승진 기회 등 많은 격차가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 전환 시대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노사 문제도 부상(浮上)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 │ 엇박자)’와 함께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 과제 중 하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임금과 저임금의 격차는 단순한 차이를 넘어 사회적 불균형과 기회의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청년들은 첫 직장에서부터 불균형을 체감하고, 중소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공정한 노동 환경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공정함’이란 동일(同一)한 처우뿐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능력과 성과에 따라 차별 없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 다양한 일의 형태를 존중하는 제도적 유연성도 공정의 중요한 요소다. 특히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란 관점에서 볼 때,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단지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이 아니라, 우리 경제 전체의 활력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때마침 고용노동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지난 8월 10일 정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국정기획위원회와 고용노동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는 것과 5인 미만 사업장에도 2027년까지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는 것의 두 가지가 핵심 골자다. 우리 노동시장은 대기업·정규직 근로자 중심의 1차 시장과 영세사업장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의 2차 시장 간에 벌어진 간극(間隙)이 지나치게 큰 게 문제다. 2차 시장 근로자는 1차 시장 근로자들에 비교해 임금, 복지, 고용 안정성 등 모든 측면에서 열악하다.
무엇보다 양극화의 근원적 뿌리인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사상 최악 수준의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29일 발표한 ‘2024년 6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2만 7,703원이고 비정규직은 1만 8,404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11.7%, 4.7% 증가해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6.43%에 그쳤다. 전년 70.9% 대비 4.5%포인트 하락했는데 2008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낙폭이다. 이는 정규직이 100만 원을 벌 때 비정규직이 받는 돈은 66만 4,300원 정도로 무려 33만 5,700원이나 덜 받는다는 의미다.
정부는 2차 노동시장의 여건을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동일한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에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명문화’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정규직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불공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하면 노사 갈등은 물론 ‘노노(勞勞) 갈등’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를테면 비정규직이나 하청 근로자가 정규직이나 원청 근로자와 같은 일을 한다면 같은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이어서 반기고 환영한다. 하지만 동일가치 노동인지를 측정하는 자체가 어려워 원칙을 강제하면 적잖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지적이 벌써 나오고 있다. 특히 숙련도가 낮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에 부담만 줄 것으로 경영계는 내다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다가 중단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한편 5인 미만 사업장에 앞으로 3년 내 근로기준법을 전부 적용하겠다는 방침에 대한 우려도 크다. 현재 5인 미만 사업장엔 최저임금, 퇴직금 등은 적용되지만 주 52시간 근로제, 연장 및 휴일 수당, 유급 휴가 등의 「근로기준법」 규정은 적용되지 않고 있다. 영세사업장에도 대기업과 같은 근로 기준의 잣대를 의무화하면 인건비 상승은 피할 수 없고 이를 견디지 못해 폐업하는 기업이 속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대한민국헌법」 제32조 제3항은“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라는 규정에 따라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은 작은 사업장 앞에만 가면 그 취지가 무색해진다. 상시근로자(노동자)가 5인 미만인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제11조에 의해 법의 일부만을 적용받고 있다. 그리고 이 ‘일부 적용’으로 인해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권에 큰 구멍이 나고 있다. 법이 닿지 않는 ‘5인 미만이라는 범법 지대’를 해소하기만 해도 상당한 종류의 차별과 격차, 나아가 양극화가 줄어들 수 있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 개혁의 출발선이 잘못됐다는 점이다. 노동 개혁은 대기업·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과잉보호를 축소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맞다. 일단 입사하면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호봉제로 인해 매년 급여가 높아지는 구조를 깨지 않는 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요원하다.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체계를 연공급 호봉제에서 직무 성과급제로 전환하는 작업이 가장 우선 선행돼야만 한다. 이를 위해선 대기업·정규직 노조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한 기득권 노조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정부의 특단의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다. 이중구조는 노사(勞使) 갈등뿐 아니라 노노(勞勞) 갈등, 사사(使使) 갈등, 세대(世代) 갈등, 을(乙)들의 갈등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의당 기득권 타파가 관건이다.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 근로자 보호 중심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보다 장기적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노동시장 구조 전반의 개혁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노동권 보호와 성장이라는 이중적 과제를 해결하려면 덴마크의 유연성(Flexible)과 안정성(Security)을 결합한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 │ 유연성 + 안전성)’ 모델을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은 직원과의 고용계약을 자유롭게 해지할 수 있다. 대신 정부는 해고 전 받던 급여의 90%에 달하는 실업급여를 최대 2년간 보장하고, 재취업과 직업훈련을 지원한다. 이렇듯 해고와 고용은 유연하게 하되, 실업급여와 직업훈련에 대한 공공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 가까이 끌어올려 고용 충격을 최소화했다. 네덜란드는 ‘유연 계약’ 확대를 통해 다양한 고용형태를 인정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체계를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실업률은 낮고 노동시장 내 이동이 활발하다. 근로자들은 해고에 대한 불안이 적고, 기업은 인력 운용이 보다 용이(容易)해 졌다.
미국은 해고하는 경우 연방법 규제와 주법 규제를 모두 고려해야만 한다. 미국의 대부분 주에선 ‘임의고용(At-will employment) 원칙’이 적용된다. 임의고용 원칙은 합법적인 사유가 있으면 사용자가 언제든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고 근로자 역시 사유를 불문하고 사직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다만 임의고용 원칙에도 여러 예외가 존재한다. 먼저 인종, 피부색, 성별, 출신 국가, 종교, 나이, 장애, 유전정보 등을 이유로 한 해고는 연방 차별금지법 위반에 해당한다. 해고의 합법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사용자는 차별적 요소가 아닌 정당한 사유로 해고한다는 걸 객관적으로 증명해야만 한다. 이렇듯 기업이 특별한 사유 없이도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직원 역시 언제든 회사를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
얼핏 보면 근로자에게 불리해 보일 수 있으나, 이러한 고용 유연성은 실리콘밸리가 세계적 혁신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애플, 구글, 메타 등 주요 기업들은 정기적으로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편, 우수 인재는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자유롭게 이직을 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잦은 이직이 개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인식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자신의 능력 개발이나 경험을 쌓기 위해 또는 급여 인상을 이유로 2~3년 단위로 적극적으로 직장을 자주 옮기는 ‘잡 호핑(Job hopping)’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문화는 근로자들이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해고되더라도 비교적 쉽게 재취업할 수 있고, 오히려 더 나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을 기회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구조 개혁은 단순히 ‘규제 완화’나 ‘보호 강화’ 중 어느 하나에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유연성과 안정성, 공정성과 경쟁력의 균형을 추구해야만 한다. 청년과 중소기업 지원,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사회적 대타협 등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과도한 노동 규제는 시장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결국 일자리 창출에도 제약이 되기 때문이다. 노동 정책의 방향은 ‘보호’와 ‘유연성’ 사이의 균형점으로 향해야만 한다. 정규직 일자리 확대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에 접근하려면, 일하는 방식과 고용형태에 대한 보다 유연한 사고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게다가 기업의 재무 부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비정규직이나 하청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면 기업 전체 인건비가 늘어나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파이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기업·정규직 노조의 반발이 큰 이유다. 젊은 정규직 조합원들은 입직(入直) 경로가 엄연히 다른데 결과론적인 평등은 옳지 않다는 반발이 아닐 수 없다. 동일가치노동을 평가하려면 직무·성과 중심 임금 체계로의 전환이 불가피한데, 기존 호봉제를 선호하는 노동계를 설득하지 못하면 정책 추진 동력을 얻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직무급제 기반의 보수체계로의 개편과 각계각층의 다층적·다각적·복합적 사회적 합의가 동시에 이뤄져야 만 실현이 가능함을 각별 유념하여 총력을 경주하기 바란다. 기계가 생각하고 기계가 말하며 기계가 창작하는 인공지능(AI)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여 속도보다 방향이 혁신보다 공존이 시대정신이 된 작금의 상황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이 시대가 해결할 최우선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