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Potential Growth Rate │ 물가 자극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 올해 사상 처음 2% 아래로 떨어져 1.9%에 그칠 것이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고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잠재성장률을 1.9%로 예측해 지난해 12월 추정치(2.0%)보다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앞서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3월 31일 발간한 ‘2025년 NABO 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지난 10월 전망(2.2%)보다 0.3%포인트 낮아진 1.9%로 전망했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 5월 8일 밝힌 ‘잠재성장률 전망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잠재성장률이 올해 1.8%로 예상한 데 이어 2030년대 1% 초반, 2040년대 0% 내외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자본·기술 등 모든 생산요소를 투입해 물가 자극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뜻한다. 경제가 성숙해지면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일반적 경향이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잠재성장률 하락이 가파른 점이 우려를 더 크게 한다. 1990년대 평균 8%이던 잠재성장률은 2008년 4.0%, 2024년 2.1%로 급락했다. 특히 이런 추세가 개선 없이 이어지면 잠재성장률은 연평균 기준 2025∼2029년 1.8%, 2030∼2034년 1.3%, 2035∼2039년 1.1%, 2040∼2044년 0.7%, 2045∼2049년 0.6%까지 낮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그만큼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기초체력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는 뜻이다. 주요 7개국(G7) 중 2021년 이후 한국만큼 잠재성장률이 떨어진 나라는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뿐이다.
이런 추세다 보니 한국은 2021년 잠재성장률이 2.3%를 기록해 세계 1위 경제 대국인 미국(2.4%)에 뒤처진 후 5년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가면 머지않아 잠재성장률 추정치가 우리보다 낮은 캐나다(1.7%), 이탈리아(1.3%), 영국(1.2%), 프랑스(1.0%) 등 다른 주요 7개국(G7) 들에도 뒤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 OECD 전망치 1.9%가 미국(2.1%)보다 낮다는 건 성장 엔진이 너무 빨리 식고 있다는 얘기다. KDI는 경제 효율성을 높이지 않으면 2050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1%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는 가볍게 여길 일이 결단코 아니다. 잠재성장률을 2%대 중반까지 끌어올린 미국을 비롯해 주요 선진국은 기술 혁신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등을 통해 잠재성장률 반등에 성공했다. 이러한 선진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한국도 혁신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임금 체계 개편과 경직적인 노동 규제 개선 등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려야만 한다.
잠재성장률 사상 첫 1%대 추락은 저출산·고령화 대응과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구조개혁을 게을리한 탓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국은 외부 강제를 피하기 힘들어 1997년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구조개혁을 해본 적이 없다. 역대 정부마다 노동·교육·연금 개혁과 규제 혁파 등을 수없이 외쳐댔지만, 말에만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저출산·고령화로 일할 사람이 급감하고 자본 투자가 위축되는데도 고비용·저효율의 경제 구조가 지속하면서 한국의 노동 생산성은 OECD 38개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의하면 한국의 노동 생산성은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 38개국 중 33위(시간당 44.4달러)로, 미국(77.9달러), 독일(68.1달러) 등과 비교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미국 대비 한국의 노동 생산성은 57% 수준에 불과하며 독일과는 65% 수준이다.
저성장이 장기화하면 일자리 감소와 소득 정체, 복지 비용 증가로 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인공지능(AI) 혁명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발(發) 관세전쟁으로 글로벌 경제 지형이 요동치는 지금이 산업구조 재편과 구조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것임을 각별 유념하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총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저출생·고령화 문제도 점차 해결해가면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구조개혁을 서두르고 각종 규제 사슬을 혁파해야 한다. 또 초격차 기술 개발과 고급 인재 육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신성장 동력을 재점화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특히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도 손봐야 한다. 기업이 투자하고, 혁신 기업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사업하기 좋은 기업 환경부터 조성해야만 한다. 노동·자본·기술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실질적 개혁 없이는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음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이재명 정부는 ‘잠재성장률 3% 회복’을 비전으로 제시하며 인공지능(AI) 등 첨단전략산업에 100조 원을 투자하고 첨단 전략산업기금을 설치하겠다고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국가 역량을 총 집주(集注)해 기필코 달성해야만 한다. 늙어가는 인구구조를 최대한 돌려세워야 하고, 지난해 100만 명을 넘어선 폐업자 통계가 보여주는 심각한 자영업 위기를 극복할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아야 하고, 노동시장 유연화와 교육 개혁에도 당연히 나서야만 한다. 하지만 추가경정예산 등 재정 중심의 경기진작에만 치중하면 물가 상승과 자산 버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확장 재정 정책은 단기적으로 부양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랏돈을 푸는 부양책을 넘어 일관된 구조개혁으로 경제 체질을 과감히 개선해야만 한다. 규제 완화나 노동 개혁 같은 민감한 사안은 외면한 채 단기 성과에만 집착한다면 저성장은 고착될 수밖에 없음도 인식해야 한다. 인구·산업·노동 등 전방위적인 구조개혁을 통한 경제 체질 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하고 요원해질 뿐이다. 어떠한 고통이라도 감내하고 총체적 구조개혁을 서둘러야만 하는 이유다. 정권 초반 힘이 있을 때 박차를 가하지 못하면 답이 없음도 각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