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활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저(低)성장 기조가 굳어지면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서민들로서는 근로 소득이 유일한 수입이다. 자산소득은 기대할 수 없기에 임금이 늘어나지 않으면 살림살이는 나아질 수 없다.
가계부채는 눈덩이 불 듯 늘어나고, 임금은 크게 늘지 않아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는 형편이다. 소비 위축은 기업의 매출 부진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저성장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1980년대만 해도 8%대를 상회했지만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5%대로 하락한 데 이어 최근에는 3%대로 주저앉았다.
이같은 저성장은 물론 전세계적인 경기 부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 주력 산업의 경쟁력 하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더욱이 우리의 경우 가계부문의 소비 여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성장세를 회복하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소비증가율은 지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연 평균 5.6%에 달했으나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는 2.0%로 둔화됐다. 이러다보니 내수는 계속 위축되는 상황이다.
내수가 위축되자 수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은 5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7.6%)의 두 배에 달했다.
이같은 내수 부진에는 가계와 기업 소득의 불균형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한국경제의 가계·기업 간 소득성장 불균형 문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기업 소득 증가율은 16.4%에 달한 반면 가계 소득 증가율은 2.4%에 불과했다. 특히 2006년 이후에는 가계 소득 증가율(1.7%)이 기업 소득 증가율(18.6%)의 1/10 수준에 그쳤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2000년 이후의 경제성장이 지표상으로 고도성장기에 비해 낮은 것은 틀림없지만 정책적 대응을 필요로 할 만한 성장 부진적 성격을 갖는 현상은 아니다"라며 "한국 경제에서 성장 부진을 보인 것은 GDP 성장이 아니라 가계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연구원은 "가계와 기업 간의 심각한 불균형 성장 여파로 우리 경제는 가계부채 급증이나 내수 부진 등과 같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며 "외환위기 이후 경제 정책에서 가계·노동·자영 부문이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점에서 이들 부문에 대한 배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최근들어 진보 경제학계와 야권 등을 중심으로 '소득 주도 성장론'을 내세워 경제성장 전략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금을 늘려 내수를 확대하고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유발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의 기능적 소득분배와 경제성장' 이라는 논문을 통해 우리나라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1% 증가하면 GDP가 0.68~1.09%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홍 교수는 "자본소득보다 노동소득의 소비성향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노동소득이 증가하면 소비지출이 크게 증가하고, 소비 증가에 따라 기업 투자와 고용도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여권에서도 이런 인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가계소득을 높여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방안을 정책에 담기 시작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후 도입한 '가계소득 증대 3대 패키지 세제'가 대표적인 예다. 기업의 유보이익을 배당, 임금 등을 통해 외부로 흘러나가게 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이 소득주도성장을 부분적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기업과 가계 소득의 불균형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등 과거 성장 만능주의 정책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보 진영에서는 ▲소득세,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 ▲최저임금 현실화 ▲비정규직 근로조건 차별 해소와 정규직 전환 ▲실업부조 등을 가계 소득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증세와 복지확대 등에는 소극적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안도 기업과 노동계의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계 소득의 증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는 소득주도성장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진보진영의 소득주도 성장모형은 아직 정규적인 성장모형으로 진화하지는 못한 상태"라며 "소득의 증가가 인적 자본 또는 물적 자본 등 '축적 가능한 생산요소'의 축적 증가로 귀결돼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