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지난 4월 17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현재 연 2.75%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고뇌에 찬 어려운 고육지책(苦肉之策)의 결정을 했다. 지난해 10월, 11월, 올해 2월 세 차례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한 이후 올 1분기 역성장 가능성을 경고하면서도 미국발 관세 우려에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간 셈이다. 미국의 불투명한 금리 경로도 신중론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 경기 균열 조짐에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는 높아졌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 ‘제롬 파월(Jerome Powell)’ 의장도 지난 3월 19일(현지시각) 관세의 영향으로 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며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쳤기 때문이다. 연준(Fed)은 이날부터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지난 1월에 이어 2회 연속 기준금리를 현 수준(4.25∼4.50%)으로 유지하기로 동결을 결정한 바 있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인 미국(연 4.25~4.50%)보다 기준금리가 1.75%포인트나 낮은 상태다. 금융 및 물가 안정의 대가는 오롯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귀의한다. 한국은행은 ‘경제 상황 평가’ 보고서에서 “1분기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라고 했지만, 문제는 2분기 이후로 귀결된다.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 직전 반짝 증가했던 수출이 4월부터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국책 연구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은 미국의 관세 인상에 따른 영향이 생산 둔화로 먼저 나타나고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KDI는 지난 4월 7일 발표한 ‘경제동향 4월호’를 통해 “미국의 관세 부과로 인해 대내외 수요 증가세가 축소됨에 따라 생산이 둔화하고 있다”라며 “대외 여건이 급격히 악화하며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기획재정부도 지난 4월 11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4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소비·건설투자 등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취약 부문 중심 고용 애로가 지속하고 있다”라며 “미국 관세 부과에 따른 대외 여건 악화로 경기 하방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져 역성장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경고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온 느낌”이라고 까지 말했다. 한은은 2월에 제시한 성장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었다고 실토하며 지난 2월 말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1분기 성장 전망치를 석 달 만에 0.5%에서 0.2%로 낮췄는데, 두 달도 안 돼 다시 역성장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올해 연간 성장률도 2월에 예측한 1.5%를 크게 밑돌 수 있다고 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사이에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1% 안팎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 나오는 상황이다. JP모건이 최근 1.2%에서 0.7%로 더 낮췄고, 리서치 전문기업 캐피털이코노믹스는 0.9%로 낮췄으며 씨티와 노무라도 1%대 턱걸이 수준인 1.2%를 제시하고 있다. 한은도 “4월 10일 현재 주요 40여 개 IB 등 시장 참가자들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중윗값은 1.4%, 하위 25%는 1.1%”라고 소개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분기부터 미국발(發) 관세 폭탄의 후폭풍이 본격화할 것이 예상됨에 따라 앞으로가 문제다. 지난달 한국의 대미(對美) 철강 수출액은 1년 전보다 16% 넘게 급감했고 알루미늄 수출량도 5% 가까이 줄었다. 지난 3월 12일부터 미국으로 들어오는 철강·알루미늄 및 파생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관세 부과가 시작된 후 불과 3주 사이에 수출 충격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상호관세, 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까지 더해지면 수출 피해는 걷잡을 수 없다. 지난 4월 16일(현지시각)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세계 상품무역이 지난해보다 0.2%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악의 경우 1.5%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해 10월에는 3.0%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했는데, 미국의 관세정책 등을 반영해 크게 낮췄다. 실제로 상품 교역이 뒷걸음질 치면서 2023년 이후 2년 만의 역성장인 셈이다.
한편 한국 경제의 근간을 떠받치는 중견·중소기업의 자금경색 공포가 심상치 않다. 미국발 관세 폭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대기업은 용케도 그런대로 버티고 있지만, 우리 경제의 허리 격인 중견·중소기업은 심각한 자금경색 위기에 봉착해 있다. 최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기업 자금 조달시장에서 사업 구조가 탄탄한 중견·중소기업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직접적인 결정타는 지난 3월 초 불거진 홈플러스 사태였다. 이 회사를 사들인 사모펀드(PEF)의 과도한 차입매수(LBO │ Leveraged Buyout)와 알짜 점포 매각의 부작용으로 홈플러스 채권 매수자들이 투자 손실 위기에 빠지면서 채권시장에 적색 비상등이 켜졌다. 이 여파로 온전한 중견·중소기업도 ‘돈맥경화’에 직면하고 있다. 관세 폭탄 후폭풍이 본격화하면 상황은 더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추락할 수 있어서 심각성을 더 한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은행도 대출 문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지난 3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한 달 사이 2조 4937억 원(0.3%↓)이나 줄어들며 석 달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지난 14일 기준 은행의 기업대출은 보름 여간 겨우 5,104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올해 4월 들어 대기업 대출은 8,362억 원 늘었지만, 중소기업 대출은 3,258억 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채 차환 발행과 은행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공개(IPO) 시장에도 찬 바람이 분다. 이달 15일까지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은 8곳에 그쳐 전 년 동기(25곳) 대비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기업의 부실 징후도 수면 위로 떠 올라 연초 이후 유동성 부족으로 법정관리 절차를 밟는 기업이 늘고 있다. 유통 업계에선 홈플러스에 이어 온라인 명품 플랫폼 ‘발란’과 골프웨어 브랜드 ‘JDX’를 운영하는 신한코리아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한다. 중앙일보에 의하면 연말까지 상환 또는 차환 발행해야 하는 회사채 규모가 70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대기업이 아니면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이 계속 악순환되면 개별 기업의 위기로 그치지 않고 고용과 소득 등 경제 전반의 문제로 불안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내수부진 장기화에 따라 중견·중소기업은 활력을 잃어가고,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폐업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견기업 수는 5868개 사로 종사자 수는 170만4000명에 이르며, 중소기업 수는 804만2726개 사로 종사자 수는 1895만6294명에 달해 중견·중소기업은 804만8594개 사에 2066만294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수 2858만9000명의 72.26%를 차지할 만큼 우리 경제의 근간이자 중추다. 하지만 지방 건설사 부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발란’과 ‘JDX’ 등 중견 유통업체도 자금경색으로 휘청거리며 고용불안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 0%대 경제성장이 예고되는 만큼 대출금리라도 낮아지면 돈 가뭄 해소에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환율 급변동과 가계부채 우려 때문에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동결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팔짱을 끼고 있어선 절대로 안 된다. 국책은행은 일시적 자금경색 조짐을 보이는 기업에는 충분한 신용보증에 나서고,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에 중견·중소기업 부양 예산을 반영해야만 한다. 현재 경기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12조2000억원 규모로는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자 중론이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중견·중소기업 부양 예산을 반영해 최소 15조원 이상으로 증액할 필요가 있다.
정치와 경제를 덮친 유례없는 불확실성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작년 소매판매는 2.2% 감소해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최악의 소비절벽이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3으로 4개월째 기준선인 100을 밑돌고 있다. 내수 침체는 기업 매출과 고용 감소는 물론, 세수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출발점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기도 벅찬 형국이 지속하고 있다. 지난 1월 자영업자 수는 550만명으로 두 달 새 20만 명이나 줄었다. 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590만명과 1998년 561만명보다도 적은 수준이다.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작년 말 기준 1100조원으로 금융 불안의 뇌관이 될 우려를 안고 있다. 정부는 한은·금융 당국과의 공조를 통해 통화·재정·금융 등의 정교한 정책 조합을 실행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재정 집행 속도를 높여 효과를 극대화하고 기업 애로 해소 등을 위한 종합 대책을 재점검해야만 한다. 금융당국은 금융 시장 리스크 해소와 안정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수출 기업, 영세 기업 등을 위해 촘촘한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민생 경제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통상 대응과 신성장 동력 지원, 취약계층 핀셋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춰 조속히 적정 규모의 추경을 반영해야만 한다. 여(與)·야(野) 정치권도 현재 한국 경제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상황에 몰렸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국가 경제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나락(奈落)에서 절체절명(絶體絶命)·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음을 각별 명심하고 속도전에 총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경기 부양에는 무엇보다 기준금리 인하가 특효약(特效藥)이자 즉효약(卽效藥) 임에도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우리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봉착했다. 금리를 낮추면 당장 원·달러 환율 상승에 부딪혀 두렵다. 지난해 4분기 역대 최대 규모인 1927조3000억원으로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정부의 실질적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지난해 104조원가량에 달한 것도 기준금리 인하를 막고 있다. 한편 미국 연준(Fed)이 시장 예상대로 정책금리를 동결하고 관망 기조(Wait and see)를 유지는 했지만,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 전망은 강화됐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는 채권시장 안정 펀드나 정책금융기관을 활용한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 가동 등도 서둘러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중 경제전쟁 대응에 급급해 국내 경제의 근간인 중견·중소기업이 흔들리는 현실을 방치(放置)하고 방관(傍觀)하며 방기(放棄)해서는 더 큰 위기가 닥쳐온다는 사실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중견·중소기업의 자금경색 위기는 한계기업이나 좀비기업이 경쟁력 부족으로 겪는 자금난과는 차원이 다른 사안인 만큼 정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만 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치둔(癡鈍)의 우(愚)를 초래하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는 선제적 조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