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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사업' 대박의 신기루 뒤에 남은 건 '갈등'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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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사업' 대박의 신기루 뒤에 남은 건 '갈등' 뿐
  • 엄정애기자
  • 승인 2013.05.20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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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의 신기루' 뒤에 남은 것은 '반목과 갈등'이었다.

단군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던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사업성 논란과 대주주간 갈등 끝에 청산 절차에 돌입했다. 약속됐던 대박은 사라지고 손해를 줄이기 위한 기약없는 소송전만 남았다.


사업이 시작된지 6년, 채무불이행에 빠진지 2달여가 지난 16일.

서부이촌동은 용산 사업 최대 주주인 코레일과 사업 시행자인 드림허브, 서부이촌동 부지 편입을 주도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비난하는 문구로 뒤덮여 있었다. 반대 의견을 가진 주민들을 비판하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우편집중국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로 북적이던 상가는 사업장이 철거되면서 손님을 잃고 문을 닫았다. 폐업한 가게들이 늘면서 동네는 슬럼화됐다.

주민들의 삶도 피폐해졌다. 이해관계에 따라 찬성과 반대로 갈린 주민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매매가 제한돼 금융대출을 받았다가 이자조차 갚지 못해 집이 경매에 붙여지는 사례도 속출했다.

옛 철도기지창과 한강변 아파트들을 따라 들어선 상가들은 세탁소와 작은 동네 소매점을 빼고는 문을 연 곳이 별로 없었다. 부동산 경기와 직결된 공인중개사 사무실들은 집기를 비운 채 이전 안내문을 붙여놓은 곳들이 많았다.

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경기를 묻자 주인은 "보면 모르냐"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는 "손님들이 다 떠나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면서 "갈 곳 있는 사람들은 다 떠난지 오래다"고 했다. 상가 세입자들은 이날 서울시를 찾아 대책을 호소했지만 소득 없이 돌아와 했다.

골목에 나와 있던 주민들에게 동네 분위기를 묻자 자리를 피했다. 서부이촌동에서 40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지쳐버렸다. 말 잘못했다가 불똥 튈까 무섭다"라면서 "형 동생하던 사람들이 죽자고 싸운다. 동네가 갈려버렸다. 사람 못 살 곳이 돼버렸다"고 손사래를 쳤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10여개 찬반단체로 갈린 상태다. 단체들은 촛불시위와 현장집회를 하며 세를 불리는 중이다. 상호 비방 문구들을 동네 곳곳에 붙이는 것은 물론 물리적인 충돌도 잇따르고 있다. 실제 이날 만난 단체 관계자들은 상대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용산 개발에 찬성하는 모임인 11구역 비상대책위원회의 김재철 총무는 주민들이 평균 4억3000만원(이자 포함) 이상을 대출받아 생활비 등으로 썼다면서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개발은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당초 드림허브가 약속한 보상금 외에는 생활고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부동산태인이 3월까지 법원 경매에 넘겨진 서부이촌동 아파트 14건의 채무액을 조사한 결과 평균 15억9302만원에 달한다. 반면 평균 감정가격은 채권액의 67%인 10억6964만원에 불과하다. 유찰없이 낙찰된다고 해도 빚이 5억원 이상 남지만 집값은 이미 반토막이 난지 오래다.

김 총무는 "가진 것이라고 집 한채 밖에 없는 주민들은 보상금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라면서 "사업이 무산되면 주민들은 다 죽는다. 그때는 우리도 용산4구역처럼 망루를 세울 수밖에 없다. 억지로 개발해놓겠다고 해놓고 이제와서 모른 척하면 주민들은 어떻게 하란 건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11구역 비상대책위는 법무법인 한우리와 함께 코레일과 서울시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2300여가구 중 300여 가구에 소송에 참여했다.

반면 반대측인 서부이촌동 생존권 사수연합의 김재홍 대변인은 지금이라도 환상에서 벗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반겼다. 그는 빨리 서부이촌동을 사업 구역에서 제외해 재산권 행사를 자유롭게 보장해달라는 것이 대다수 의견이라고 했다. 빚은 빌린 사람이 감당해야할 문제라고도 했다.

김 대변인은 "드림허브 말처럼 가구당 수십억원씩 보상금을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 사업이 무산돼 다행이다"라면서 "주민들도 환상에서 깨어나 반대로 돌아서고 있다. 재산권 행사 제약을 막아 주민들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찬반측으로 갈렸지만 일치되는 의견도 있었다. 용산 사업을 누구도 먼저 나서 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과 이 사태를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태어나 45년을 이 동네서 살았다는 주민은 "사업이 지연되다보니 집이 망가져도 고칠 수가 없고 집을 팔고 싶어도 팔수가 없다. 친구도 잃고 삶이 엉망이 됐다"라면서 "나 몰라라만 하지 말고 누구 한 사람은 '제 책임입니다'라고 해야 될것 아닌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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