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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문방구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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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문방구가 사라지고 있다
  • 엄정애기자
  • 승인 2013.04.14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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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식품 이미지 덧칠·단속 압박에 폐업

광주 서구 광천동 한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는 강모(58)씨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30여 년간 운영하며 3남매를 키워왔던 문방구의 문을 닫아야할 지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하고 있다.

학교 인근 동네 문방구의 몰락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작돼 왔다.

대형 사무용품점과 대형마트의 입점 때문에 그나마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와 큰 돈을 쓰고 돌아가던 학부모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가격이나 학용품의 종류와 질도 이들 대형 문구점의 물량 공세에 버틸 재간이 없다.

몇 년 전부터 정부가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를 시행하면서 요즘은 공책 한 권 사가는 학생들도 없다.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는 저소득층 학부모의 학습준비물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행된 제도로 각 학교는 교육청에서 지원받은 예산으로 '최저가 입찰제도'를 통해 준비물을 구매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는 대형 문구센터 앞에서 소규모 문방구와 서점은 당할 재간이 없다.

지난달 초·중·고등학교가 일제히 개학했지만 새학기 특수를 누려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나마 문방구를 근근히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100~500원 가량의 '쫄쫄이'나 만화영화 캐릭터를 이용한 '뽑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뺏는다는 비난과 지적도 있었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표적인 추억의 먹거리로 회자되고 있는 '쫄쫄이'는 허가를 받은 제품으로 불량식품이 아닌데도 부정식품이라는 인식이 고착화 돼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에는 정부와 경찰의 불량식품 단속 때문에 가판대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하루 매출이 1~2만원에 그칠 때가 다반사다.

강씨는 "몇 년 전까지만해도 이 주변에만 4~5개의 문구점이 있었지만 다른 곳은 모두 문을 닫고 현재는 2곳만 문을 연 상태"라며 "우리 역시 간판만 문구점으로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4일 학교 인근에서 운영되던 문방구가 사라지고 있다. 초등학교 하나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조그만 문방구들을 이제는 찾아보기 조차 어렵게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소매문구점(문방구)은 1999년 2만6900여 곳에서 2011년 1만5700여 곳으로 10여 년만에 1만2000여 곳이 줄었다.

광주 지역의 경우 학교 200m 내 소매문구점이 지난 3월 기준 231곳으로 같은 기간 200곳 가량이 줄었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소매문구점 역시 최근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찰의 불량식품 단속으로 인해 경영에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

업계는 특히 경찰과 자치단체의 지도 단속이 소매문구점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학교 앞 문방구가 대표적인 불량식품 판매 업체처럼 국민들에게 각인되고 있다는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더욱이 최근에는 정부가 학교 인근 문방구 등에서 식품을 팔지 못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업계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이 때문에 몇몇 문방구들은 살아남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통카드를 충전하거나 복사, 코팅까지 취급하고 있다.

또 다른 문방구 업주 정모(55·여·화정동)씨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제조 일자 등이 표기되지 않은 불량식품을 판매하는 문방구가 어디 있겠냐"며 "그런데도 문방구에서 파는 식품은 불량식품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워 이제는 아예 가판대에 놓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경찰들도 불량식품 단속을 위해 문방구를 찾아왔다가 되레 본인들이 민망해 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대체 4대악이 누구의 기준인지 모르겠다"며 "살아갈 방법을 마련해 놓고 목줄을 조여도 모자랄 판에 힘없는 서민들에게 정부가 너무한 처사"라고 말했다.

한편 광주경찰청은 이날 현재 불량식품을 판매하거나 제조한 17곳을 적발해 30여 명에 대해 형사처벌을 내렸다. 이 가운데 문방구에 대한 적발 실적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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