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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의 공포]"집에서 놀면 뭐해!"… 생계형 '인생 2모작'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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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의 공포]"집에서 놀면 뭐해!"… 생계형 '인생 2모작'의 선택
  • 김지원기자
  • 승인 2013.03.28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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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있는데요, 빌딩 경비원도 제복에 계급장을 답니까?"
"엿장수 마음이에요. (웃음) 군인이나 경찰 제복과 똑같지만 않으면 (계급장은) 몇 개를 달아도 상관없습니다."

27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의 한 강의실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들로 가득찼다. 대부분 50~60대. 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재취업 강의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몇몇 학구열 높은(?) 학생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강사로 나선 하만정 한국에스피아이연합회 고문(71세)은 경비원이나 경비지도사 일을 원하는 퇴직자들을 위해 경비업법을 소개했다. 한국에스피아이연합회는 경호원이나 경비원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기관이다.

하 고문은 "경비원들은 협회나 노동조합이 없어서 자신들의 권익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며 경비원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강사님이 (협회를) 만들면 안 되나요?"라고 물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난달 초에 설립된 서울이모작지원센터는 최근 본격적인 은퇴를 맞고 있는 베이비부머세대(1955~1963년생)를 대상으로 이들의 재취업과 창업,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가 비영리단체인 희망도레미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등록된 교육생은 100여명 정도다.

서울시는 올해 이 같은 센터를 권역별로 4개까지 설립하고, 2018년에는 구마다 설치해 25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올해 이 사업을 위해 총 5억7788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원창수 센터 사무국장은 "인생이모작 사업은 베이비부머세대를 타깃으로 맞춤형 일자리 교육을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노인대상 일자리 서비스와 다르다"면서 "앞으로 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교육생을 대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인재은행'을 만들어 취업 이후까지 관리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교육생들은 무료로 재취업 교육을 해주는 센터의 프로그램에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다.

10년 넘게 시내버스기사 관리 일을 하다가 지난달 퇴직한 신모씨(60·수유동).

그는 센터에 와서 처음 '경비지도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신씨는 "경비원은 보통 24시간 꼬박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 근무제인데 건강도 나빠지고 급여도 적어서 막상 지원하기가 꺼려진다"면서 "6개월이든 1년이든 공부해서 경비지도사 자격증을 따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보험설계 일을 하다가 1998년 퇴직한 최모씨(62세·독산동)도 "취미생활도 하루 이틀이지, 아직 몸도 건강한데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 나이 들어서 일하는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무조건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며 "당장 취업이 되진 않더라도 관련지식을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 교육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인생2모작'은 자아실현이라기 보다 생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

최씨는 "과거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보통 경비 일은 100만원에서 120만원 정도를 준다. 여기서 4대 보험료까지 떼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은 고작 100만원 정도다. 혼자 벌어서 한 달 용돈하기도 빠듯해 아내도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하루 4시간씩 임대아파트 관리 일을 하고 있다는 최씨는 "시에서 소개해준 일자리지만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9개월씩만 채용한다. 고용이 불안해서 노후 계획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신씨는 "농사 짓는 일로 따지면 일모작으로 벼를 열 마지기 소출하면 이모작으로는 절반 수준인 다섯 마지기밖에 못 거둔다"면서 "인생이모작도 마찬가지다. 일모작으로 200만원을 벌었다면 이모작으로는 100만원 버는 게 당연하지만, 현실에서 100만원은 턱없이 적은 금액"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1월부터 국민연금으로 30만원을 받는데 각종 경조사비와 통화료, 전기료, 수도세 등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게 없다. 어디 가서 자장면 한 그릇도 사먹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은퇴자들의 일자리가 대부분 경비원, 가사도우미, 청소직 등 단순노무직에 치중해 있다는 점은 현실적인 한계.

신씨는 "빌딩 관리 일만 해도 기본적으로 전기기사 자격증 등 기술이 필요하니까 정부에서도 제일 만만한 경비 일을 추천하는 것 같다"면서 "앞으로 적성에 맞는 다양한 일자리를 소개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강의실 뒤편에 있는 게시판에는 교육생들이 '배우고 싶은 일'과 '나누고 싶은 일'을 적은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배우고 싶은 일로는 '외국어'와 '사진 찍기'가 많았고, '시를 쓰고 싶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메모도 눈에 띄었다. '나누고 싶은 일'로는 '숲 해설가가 되는 법' '주식투자' '금융컨설팅' 등 다양했다.

원 국장은 "은퇴자는 크게 은퇴 이후에도 소득이 필요한 부류와 경제적 안정을 기반으로 자아실현이나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은 부류로 나뉜다"면서 "앞으로 소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하도록 수요처를 개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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