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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미FTA 반대한다는 영화감독 류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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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미FTA 반대한다는 영화감독 류승완
  • 김정환 문화부 차장대우
  • 승인 2011.11.28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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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38) 감독이 25일 밤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사람들을 두 번 놀라게 했다.

먼저, 류 감독은 범죄 드라마 '부당거래'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따냈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올해 각급 시상식을 휩쓴 전쟁 휴먼 블록버스터 '고지전' 장훈(37) 감독의 독주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류 감독은 이를 보기 좋게 깨뜨렸다. '이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진짜 놀랄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감독상을 수상한 류 감독은 부인인 '부당거래' 제작사 외유내강의 강혜정(41) 대표에게 맡겨 놓은 소감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했다. 그는 차기작 '베를린' 헌팅차 해외 체류 중이어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강 대표는 "(류승완 감독이) 수상소감으로 남긴 말이 있는데 민감하긴 하지만 하겠다"고 했고, 좌중은 긴장했다. "10년 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을 때의 감격을 '부당거래'로 재현해줘 감사하다. 배우와 스태프와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인사에 이어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부당거래에 반대한다. 그러므로 11월22일 있었던 FTA에 반대한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다"며 한·미FTA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발언은 SBS TV 생방송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SNS나 인터넷게시판에는 "개념발언이다", "시원하다"는 호응과 "생방송 시상식에서 할 발언이 아니었다"는 불만이 상충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 강행처리 이후 찬반갈등이 첨예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말인만큼 충격파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류 감독을 잘 아는 이들은 별로 놀라울 것 없다는 반응이다. 류 감독은 영화계에서 소문난 진보성향 인물이다. 2004년 영화배우 문소리(37), 박찬욱(48) 봉준호(42) 감독 등 영화인 146명과 함께 민주노동당 지지를 선언했고, 2009년에 영화제작가협회 소속 영화인 225명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에 대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때도 박·봉 감독과 함께 앞장섰다.

민노당이 한미FTA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사건의 장본인인 김선동(44) 의원도 민노당 소속이다. 한미FTA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를 떠나 강 대표가 대리한 류 감독의 소감만 놓고 보자.

강 대표가 "민감하다"고 운을 뗄 때 무슨 말을 할까 귀를 쫑긋했다. 내심 영화계 이슈인 메이저 배급사에 의한 스크린 잠식문제를 지적하기를 기대했다. 온 정성을 쏟아 영화를 만들었지만 저예산 독립영화인 탓에, 소규모 제작사가 제작하고 중소 배급사가 배급을 맡았다는 이유로, 흥행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상영 기회조차 갖지 못한 '사물의 비밀'(감독 이영미), '량강도 아이들'(감독 김성훈·정성산) 등 작은 영화를 만든 제작사 대표 두 사람이 눈물과 분노로 작금의 영화계 현실을 개탄한 것이 이날 오전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들에 비하면 류 감독은 얼마나 상황이 좋은가. '부당거래'는 류 감독의 네임밸류와 연출력 만으로도 모자라 이날 각본상(박훈정)을 차지한 탄탄한 시나리오에 그의 동생 류승범(31)을 비롯, 황정민(41) 유해진(41) 등 스타 배우를 포진시켰다. 더욱이 메이저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지난해 10월28일 무려 440개관에서 개봉했다. 첫 주말이었던 30일과 31일에는 502, 501개로 상영관이 늘어났다.

같은 날 개봉한 3D 멜로 드라마 '나탈리'(감독 주경중) 190개, 음악 드라마 '어쿠스틱'(감독 유상현)은 30개에 불과했다. 그나마 '나탈리'는 롯데엔터테인먼트라 사정이 나았다. '어쿠스틱'은 군소 배급사여서 초반부터 한계가 예상됐다. 두 영화도 30일에는 상영관 수가 늘었다. '나탈리' 196개, '어쿠스틱' 34개로 6, 4개씩이었다. 그러나 31일에는 '나탈리' 194개, '어쿠스틱' 32개로 각 2개가 줄었다.

개봉 8일째인 11월4일 '부당거래'가 신작영화 개봉에도 불구하고 상영관 433개를 유지하며 누적관객 105만186명을 기록하던 날 나탈리는 129개관으로 상영관이 줄었고 누적관객은 7만9294명에 불과했다. '어쿠스틱'은 8개관으로 급감했으며 누적관객 7492명에 그쳤다. 그리고 개봉 두 번째 주말이었던 6일 '부당거래'는 502개관으로 다시 상영관 수를 늘리며 21만2686명을 앉혀 누적관객 136만2673명을 기록했다. 반면 '나탈리'는 116개관 4030명으로 누적 8만6777명이었고, '어쿠스틱'은 6개관 104명으로 누적 7631명이었다.

개봉 2개월째로 접어들던 28일 신작들의 잇딴 개봉으로 '부당거래' 역시 상영관이 264개관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날까지 누적관객은 260만1723명이었다. 하지만 이날 61개 상영영화 리스트에 '나탈리'와 '어쿠스틱'은 없었다. '부당거래'는 12월22일 1개관에 8명을 들이면서 275만1782명을 쌓은 것을 끝으로 두 달 가까운 장기흥행에 마침표를 찍었다.

물론, 영화는 시장논리에 따라야 한다. 재미있는 영화, 흥미로운 영화를 관객들이 더 보는 것이 옳다. 이런 관점에서 '나탈리'나 '어쿠스틱'보다 '부당거래'가 더 볼 만하니 더 많은 상영관을 잡는 것이 맞다.

그렇게 본다면, 한미FTA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시장논리로만 설명할 수는 없으므로 류 감독이 한미 FTA에 반대의사를 밝힌 것 아닌가. 어떠한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주관을 당당히 밝히는 류 감독이 이러한 현실을 성토했으면 어땠을는지….

류 감독은 진보적 지식인이기에 앞서 영화계를 이끄는 영향력 있는 인사다. 용감무쌍한 소감을 되새길수록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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