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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담배전쟁'…대기업 '편애'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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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담배전쟁'…대기업 '편애' 심각
  • 정의진 기자
  • 승인 2012.11.02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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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것도 모른다고 '법' 운운하며 무조건 지시에 따르래요. 대기업 구미에 맞춰 법도 바뀌는 세상인데…. 호소할 곳도 없네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 보신각 옆에 자리한 3평(10㎡) 남짓한 구멍가게. 이 곳에서 10년 가까이 담배 장사를 해온 안애자(가명·53·여)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처음 여기서 장사할 때부터 담배를 팔았어요. 종각에서 가장 담배가 잘 팔리는 가게로 유명했죠. 그런데 며칠 전 바로 옆 건물에 편의점이 생긴 거예요. 분명 거리제한이 있을 텐데…. 제대로 무시 받은 기분입니다."

실제로 안씨의 가게와 20여m 떨어진 곳에는 갓 오픈했는지 깔끔하게 단장한 편의점 GS25가 자리하고 있었다. 계산대 뒤에 가지런히 진열된 담배와 관련 광고도 눈에 띄었다. 채 4칸이 되지 않는 찬장에 위태롭게 진열돼 있던 안씨 사정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기업 편의점과 구멍가게가 때 아닌 '담배 전쟁'을 치르고 있다.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편의점들이 담배 판매망을 점차 확대하며 구멍가게 담배판매업자들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담배소매업을 하려면 사업장 소재지의 시장과 군수, 구청장 등 지자체장으로부터 소매인 지정을 받아야 한다. 소매인 지정기준 및 절차 등은 기획재정부령에 따르도록 돼 있다. 예를 들어 소매인 영업소 간 거리 50m 이상 유지, 약국과 병원 등 보건의료 관련 영업장과 게임장, 만화방 등 청소년 주 이용 업소 담배 판매금지 등이다.

예외적으로 거리제한을 두지 않는 경우도 있다. 건축물 등의 구조와 상주 및 이용인원 등을 고려해 일반소매인이 아닌 구내소매인으로 등록할 경우다. 이 경우 소매인은 담배진열장과 담배소매점 표시판을 건물 또는 시설물 외부에 설치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영업소 간 거리, 측정 방법 등 구체적인 기준이 지자체의 재량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법령에 따르면 업소 외벽을 기준으로 거리를 측정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와는 다른 방식을 적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종각에서 25년 동안 구멍가게를 꾸려온 한유희(가명·54·여)씨의 경우가 그렇다. 한씨는 지난달 초 자신의 가게와 건너편 건물에 새로 입주한 GS25의 실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차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법령대로라면 가게 외벽을 기준으로 사업장 간 가장 가까운 거리를 측정해야 하지만, 실사를 담당한 직원은 한씨 가게 계산대 앞까지 와서 거리를 측정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해당 편의점은 지난달 19일 담배 장사를 시작했다. 종로구청에 따르면 구내소매인의 경우 원칙적으로 거리제한을 두지 않지만, 해당 업소가 건물 1층에 위치하고 외부 출입문이 있는 경우 25m의 거리제한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실사를 담당한 직원은 "한씨의 가게와 GS25의 거리가 26m"라고 밝혔다.

한씨는 "대기업 편의점의 입맛에 따라 측정 방법이 달라지는 것 같다"며 "구청에 가서 토로해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상처만 받고 돌아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담배 판매점의 구내 지정 추세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담배판매인조합중앙회 등에 따르면 2005년 6월 전국 담배판매업자는 15만여명으로 이 중 편의점 사업자가 대부분인 구내소매인은 1만6596명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와 비교해 총 판매인수는 2만여명 줄어들었지만 구내소매인은 1만6400명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 상대적으로 늘어난 셈이다.

담배제조회사마저 대기업에 혜택을 몰아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안씨는 2달 전 KT&G로부터 광고판 수거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회사 방침상 '종'(종각)이 있는 곳이라 안된다는 등 정확한 이유도 없이 가져갔다"며 "지난달 문을 연 GS25에는 떡하니 담배 광고를 줬다"고 토로했다.

안씨는 "같은 담배 판매업자인데 왜 서로 다른 규정을 적용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구멍가게 담배판매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져도 구청 등 관련업계의 대응은 지극히 소극적이다.

해당 사업장을 관할하고 있는 종로구청 측은 업소 규모에 따라 규정을 달리 적용하지 않는다며 다른구청과 큰 차이가 있지 않다고 항변했다. 종로구청 산업환경과 관계자는 "담배소매인 지정과 관련해 재량을 부릴 수 있는 부분은 없다"며 "편의점과 구멍가게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업소 간 거리측정에 대해서는 "구청에서 직접 실사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담배판매인회에 위임해 실시하고 있다"며 직접적인 책임소지에 대해서는 회피했다. 해당 단체는 사단법인으로 KT&G 산하에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기재부도 수수방관하는 분위기다. 기재부 출자관리과 관계자는 "담배사업법 등 기본적으로 고지된 법령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따라야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 설정은 해당 사업장을 관할하는 시장과 군수, 구청장"이라며 "'위임'이 아닌 지자체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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