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기소된 조현아(43·여)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 첫 전원합의체 판결로, 지난 2015년 6월 대법원에 상고된 지 2년6개월여만이다.
대법원은 쟁점이 됐던 지상 이동 17m를 ‘항로’가 아니라면서 운항 중이던 항공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린 것은 항공보안법상 항로 변경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항공보안법 위반 및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부사장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10명의 다수 의견으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항공기가 지상에서 이동하는 경로는 ‘항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항공보안법 42조는 ‘위계나 위력으로 운항 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하게 해 정상 운항을 방해한 사람을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재판부는 “어떠한 행위를 처벌하려면 법률에서 범죄로 규정하고 있어야 하며 그 뜻을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해석할 수 없다”며 “항로가 무엇인지는 항공보안법 어디에도 규정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국립국어원은 항로를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空路)’라고 규정하고 있고 다른 법률이나 실제 항공기 운항 업무에서 항로가 ‘하늘길’이라는 뜻 외에 사용된 예는 찾을 수 없다”며 “유달리 항공보안법에서의 항로를 지상에서의 이동 경로를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됐다고 볼 입법자료도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국제협약 중 지상의 항공기 경로를 변경하는 행위를 항공기 대상 범죄로 언급하지 않고 있고 입법 의도가 있었다면 명확한 정의 규정을 뒀을 것”이라며 “해당죄는 ‘운항 중인 항공기’를 대상으로 하는데 ‘운항 중’이라는 이유로 지상에서 다니는 길까지 항로로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또 “지상에서의 이동을 함부로 변경한 것은 기장에 대한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어 처벌 공백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라며 “조 전 부사장도 기장에 대한 업무방해죄로 처벌받게 됐다”고 밝혔다.
반면 박보영·조희대·박상옥 대법관 3명은 항로로 봐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항공보안법이 지상의 항공기도 ‘운항 중’이 된다고 의미를 넓혔으므로 지상과 공중을 불문하고 항로로 새겨도 해석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며 “비행기는 이륙 전과 착륙 후에 당연히 지상을 다닐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입법자가 ‘운항’을 넓게 정의한 것은 지상의 비행기도 범죄로부터 보호하려는 명확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항공기 경로를 함부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다른 항공기나 시설물에 부딪혀 대형참사가 야기될 위험이 크므로 안전운항을 위협하는 행위를 엄벌하기 위해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2014년 12월5일 미국 뉴욕 JFK국제공항발 인천행 대한항공 항공기 1등석에 탑승해 기내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화를 내다가 항공기를 강제로 되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게이트를 떠나 이동 중이었으나 조 전 부사장 지시로 되돌아갔고, 이로 인해 출발이 24분 가량 지연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조 전 부사장은 박창진 사무장과 여승무원 김모씨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해 이륙 점검 업무 및 승객 서비스를 방해하고 박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강제로 내리게 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조 전 부사장이 지상에서 항공기를 되돌아가게 한 17m를 항로로 인정하고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와 업무방해·강요 혐의를 유죄로 판단,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항로는 항공기가 다니는 하늘길이고 지상에서의 이동은 항로로 볼 수 없다며 1심을 뒤집고 항로 변경죄를 무죄로 판단,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조 전 부사장의 항공기 내 안전운항을 저해한 항공보안법 위반과 업무방해, 강요 혐의는 1심과 같이 유죄로 인정했다.
김성민 기자 workto@s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