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의 나라’라 불리던 한국에서 ‘전세의 월세화’가 폭발적으로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서울의 월세 전환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가파르다. 2021년까지만 해도 연평균 40%대 수준이던 월세 비중은 역전세난과 전세 사기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2022년과 2023년에 각각 53%, 56%대로 높아졌고, 지난해는 평균 60.3%까지 치솟았는데 올해 9월엔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65.3%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런 월세 확산 추세는 정부의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대책으로 더 가팔라질 공산이 커지며 임대시장 구조의 급격한 재편에 서민 주거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어 이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돼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0월 31일 공표한 ‘2025년 9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올해 9월 전국 전월세 거래는 23만 745건으로 전월보다 7.9% 늘었으며, 수도권은 10.1% 증가해 15만 5,855건을 기록했고 서울은 6.2% 증가해 7만 24건에 달했다. 올해 9월전월세 거래 23만 745건 중 전세는 월세는 15만 670건으로 비중은 65.3%에 달했다. 세입자 셋 중 둘이 월세를 택한 셈이다. 올해 9월 전국 전세 거래는 8만 75건으로 작년 동월 대비 1.9% 줄어든 반면 월세는 15만 670건으로 38.8% 증가했다. 1~9월 누계 월세 비중을 봐도 2021년 43%에서 2022년 52%, 2023년 55%, 지난해 57%에 이어 올해는 62.6%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전세 대신 월세가 증가하는 것은 저금리와 1~2인 가구 증가 등으로 10여 년 전부터 진행해 왔지만, 최근의 증가세는 ‘쇼크’로 불릴 만큼 너무도 가파른 구조적 격변이다. 가계부채 관리 강화를 골자로 한 ‘6·27 대출 규제’가 전세대출을 어렵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다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을 초강력 수준으로 조인 ‘10·15 부동산 대책’이 월세화 현상을 더욱 가속화로 치닫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겠다는 명분으로 내놓은 ‘10·15 부동산 대책’에서 서울 25개 자치구와 경기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주택 매입 시 2년간 실거주 의무를 부여했다. ‘갭(Gap│전세를 낀 주택 구입) 투자’를 사실상 원천 차단을 하면서 전세로 나올 물량이 급감했다. 여기에 1주택자 전세대출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해 대출 한도를 줄이면서 세입자들의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졌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지난 10월 한 달 새 5,385억 원이 급감해 1년 반 만에 최대 폭 감소했다. 결과적으로 ‘갭(Gap) 투자 차단’을 위한 조치가 오히려 전세시장 유동성을 급격히 위축시키는 역효과로 이어진 셈이다.
우리나라 전세제도는 월세와 비교해서 저렴한 거주방식이자, 집 살 돈이 없는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으로 가기 위한 ‘주거 사다리(housing ladder)’이자 자산 형성 수단의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정부도 전세를 주거 복지 제도로 사실상 인식하고 지원해 왔는데 서민 주거 안정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전세제도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어 서민 주거 안정이 요동치고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전세제도가 각종 부작용에 서서히 생명력을 다하는 건 불가피해 보이지만, 문제는 급격한 월세 전환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전세 축소의 여파는 고스란히 월세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해 9월 서울 아파트 월세 상승률은 7.25%, 수도권 전체는 6.27%로 나타나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 급감으로 임차 수요가 월세나 반전세로 대거 이동하면서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전세 임차인들은 비자발적으로 월세로 갈아타는 데 이어 임차료 상승에 따른 이중고(二重苦)를 겪을 수밖에 없다.
전세제도는 서민들에게는 내 집 마련을 위한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는데 서민들의 유일한 희망의 통로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가계부채 억제와 투기 방지를 내세운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급격한 전세 축소는 서민들의 주거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것도 각별 유념해야 한다.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전세보다 월세 부담이 훨씬 더 큰 만큼 정부는 세입자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국가데이터처(발표 당시 통계청)의 ‘가계 동향 조사(2023년)’에 따르면, 전체 소비 지출에서 주거비 비율은 자가 및 전세 거주 가구는 8.5%인데 반해 월세 거주 가구는 21.5%로 13%포인트나 높다. 이는 똑같이 100만 원을 쓴다고 가정할 때, 전세로 사는 사람이 매달 13만 원씩 주거비 측면에서 이득인 셈이다. 월세 거주자는 그만큼 자산을 형성하기가 어렵고 생활이 팍팍해질 뿐만 아니라 그만큼 주거 취약층이 더욱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특히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는 전체 지출의 19.7%를 주거비로 쓰는 반면, 상위 20%(5분위)는 주거비 비율이 8.5%였다.
정부는 ‘전세의 월세화’가 불가피한 추세라는 입장이나 그냥 방치(放置)하고 방관(傍觀)하며 방기(放棄)할 일이 결단코 아니다. ‘전세의 월세화’는 결국 ‘주거 사다리’를 붕괴시켜 결국 주거 초(超)양극화를 초래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미국은 저소득층이 민간 주택을 임차할 때 소득의 30% 안팎만 월세로 내고 차액은 정부가 집주인에게 보조하는 ‘Section 8’이란 ‘안정된 주거 환경(Stable Housing)’을 견인하는 주택정책으로 ‘주거 바우처(Voucher)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주거 복지 차원에서 신중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투기 목적이 아닌 실거주 목적의 영세민, 청년, 신혼부부 등 주거 취약층에 대해서는 전세대출 한도를 오히려 확대하고 DSR 규제에서도 예외를 두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만 한다.
대부분 부동산 전문가들은 월 소득의 28% 이내에서 주거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 대출 원리금과 세금을 포함한 주거 비용이 소득의 28%를 넘지 못하게 하고 모든 대출은 소득의 36%를 초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른바 ‘28/36 규칙’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 정상화의 첩경(捷徑)은 집값 폭등과 은행 이익만 키운 ‘주택담보대출·전세 낀 갭 투자·전세대출 보증’의 한국식 빚의 사다리 대신 붕괴한 진짜 주거 사다리를 서둘러 복원하는 일뿐이다. “기다렸다가 집을 사라”고 강요하는 대신 “기다려도 괜찮겠다”라는 신뢰부터 구축해야만 한다. 특히 ‘10·15 부동산 대책’이 임차 시장에 미칠 연쇄 충격을 전면 재점검해 ‘전·월세 대란’에 대한 완충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주택 구매 여력(Affordability │ 감당할 수 있는 비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수요와 공급이다. 미국의 대표적 부동산 플랫폼 ‘질로우(Zillow)’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주택 시장은 약 470만 가구에 달하는 주택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집을 구하려는 사람이 주택 공급보다 많기 때문에 가격이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것이다. 임대시장에는 다양한 수요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대출 규제를 일률적으로 강화하기보다는 실수요자 중심의 차등 관리와 전세대출의 선별적 완화가 절실하다. 단언컨대 투기 억제의 칼끝이 서민 취약층의 삶을 겨누어선 결단코 안 된다. 거스를 수 없는 불가피한 추세라면 준비라도 서둘러야만 한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월세 세액공제나 월세 보조금 확대 등 임차인 주거비 부담을 줄일 장치에 대한 지혜를 모으는 고민이 필요하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려야 하겠지만, 청년세대가 ‘평생 임차 세대’로 남지 않게 하려면 저가 주택 공급만으로는 안 된다. 질 좋은 임대주택 공급과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질 단계별 지원 대책도 의당 병행돼야 한다. 집값 잡기만큼이나 중요하고 긴요한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