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년간 우울증 등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질환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을 찾은 18세 미만 아동 환자가 2배 이상 증가하면서 어린이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지난 5월 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11월 우울증 등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질환으로 병원(의원급)을 찾은 18세 이하 아동·청소년 환자는 27만625명으로 집계됐다. 4년 전인 2020년 13만 3,235명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으로 증가한 수치다.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질환 아동·청소년 환자는 2020년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17만2441명, 2022년 21만2451명, 2023년 24만4884명으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 기간 연평균 증가율은 19.4%이다.
특히, 7∼12세 초등학생 연령대의 어린이환자 증가세가 가팔라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지난해 1~11월 우울증 등 정신건강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7~12세 남자 어린이환자는 2024년 7만6159명으로 2020년 3만3800명의 2.25배 넘게 늘었고, 여자 어린이환자는 2만9165명으로 2020년 1만2260명의 2.38배 넘게 증가했다. 0∼6세 남자 아동 환자는 1만2707명에서 1만9505명으로, 여자는 5231명에서 7763명으로 남녀 모두 1.5배 증가했다. 13∼18세 청소년의 경우 남성 환자는 3만5193명에서 6만6459명으로 1.9배, 여성 환자는 3만4044명에서 7만1574명으로 2.1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한 명 한 명 그 자체로 소중하고,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미래의 꿈나무들이자 내일의 주역들이다. 자녀 정신건강에 대한 부모의 민감도가 올라 진단율이 높아진 영향도 크겠지만, 저(低) 출생으로 전체 어린이 수가 매년 감소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어린이환자들이 가장 많이 진단받은 정신건강 질환은 기분의 저하와 함께 전반적인 정신·행동의 변화가 나타나는 ‘우울 에피소드’,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나타나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 ‘운동 과다장애’와 ‘불안장애’, ‘기분장애’ 등이라고 한다. ADHD는 주의력 부족, 산만한 행동, 충동성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신경 발달장애로 주로 아동기에 진단된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밤늦게까지 학원가를 전전하고, 특히,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한 ‘4세 고시반’, 유명 영어·수학학원 입학에 대비하는 ‘7세 고시반’, ‘초등 의대반’ 등의 열풍으로 아이들은 유아기부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과제와 시험공부에 매달려야만 하는 어린이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최근 수년간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비대면 교육 활성화에 따른 타인과의 유대감 미형성 등 심리 발달이 지연된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와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게 되면서 정신적·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보는가 하면 최근 과도한 학업 부담과 또래 간 비교 스트레스, SNS 사용 등에 노출된 아이들이 늘면서 관련 환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분석하고 과거에는 흔하지 않았던 소아 우울증이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등의 영향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사교육 강세 지역인 서울 강남 3구 9세 이하 어린이의 우울·불안 관련 건강보험 청구 건수가 2024년 3309건으로 2020년 1037건의 3.19배 이상으로 급증했음은 이를 방증(傍證)하기에 충분하다.
과도한 학습은 어린이들의 정신건강은 물론 육체 건강도 좀먹고 있다. 어린이 5명 중 1명이 과체중 또는 비만 상태다. 공부에 치여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는 데다 짧은 휴식시간마저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며 보내는 탓이다. 아동 비만은 지방간·고지혈증 등을 유발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악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 어린이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아동,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매우 낮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도를 기준으로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 결과에서 우리나라는 35개국 중 31위였고, 2022년 말 한국방정환재단이 공개한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중 한국 어린이·청소년의 행복지수가 22위로 꼴찌를 기록했다. 해당 조사에서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돈·성적 향상·자격증 등의 ‘물질적 가치’를 언급한 아이들이 38.6%로 가장 많았다.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2024 아동행복지수 조사 결과’에서도 국내 아동 및 청소년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45.3점에 불과해, 우리의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은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청소년기는 판단, 충동 조절, 계획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빠르게 발달하는 시기다. 이 시기의 정신건강 문제는 성인기의 집중력 저하, 불안, 우울 등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이들은 우울한 상태를 잘 인지하지 못해 짜증을 보이거나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자칫 부모들이 ‘사춘기 반응’으로 가볍게 넘길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들이 적기에 정신과적 개입을 통해 진단 및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자녀가 집중력이 심각하게 저하되거나 결정 내리기 어려워하고 자주 피로를 호소한다면, 이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조기 발견과 적절한 치료가 어린이의 정신건강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렇듯 어린이 정신건강 문제의 급증은 우리 사회가 어린이들의 정신건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의 정서적 건강을 지원하기 위한 환경 조성과 함께,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향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청소년기 자아를 확립하고 정신건강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승자독식의 무한경쟁 사회에서 치열한 교육 경쟁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인 측면도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어느 순간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고 공동체 미래까지 허물고 있다면 그야말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신체 활동과 건전한 놀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친구들과 긍정적·사회적 관계와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살피고 챙겨야만 한다. 어린이들이 아프고 불행한 사회는 장래가 결코 밝을 수 없다. 지금 기성세대가 시급히 할 일은 어린이들에게 약을 처방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유년 시절을 되돌아보며 어린이와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바쁘다는 것은 물리적인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력 지상주의와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돌격 성장을 어린 시절부터 조기 주입하는 것은 어린이들의 정신세계를 피폐(疲弊)하고 황량(荒涼)하게 만드는 치둔(癡鈍)의 우(愚)가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시간의 여우를 늘리고 공간의 여백을 확장하는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기성세대의 막중한 책임을 우리 사회는 결단코 방기(放棄)해서는 아니 된다. 어린이들이 건강해야 어른도 건강하고 미래사회에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