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 후에 시골에서 농사짓고 싶은데 자식들 대학도 보내야 하고 결혼도 시켜야 하고…. 부모니까 자식한테 잘해주고 싶죠. 제 꿈은 언제쯤 이룰 수 있을까요."
건설현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정모(57)씨는 최근 고민이 깊어졌다. 그는 매달 들쭉날쭉한 월급에 부양해야할 가족이 여전한 가장이기 때문이다.
정씨는 귀농을 꿈꾸며 빠듯한 살림을 아껴 지방에서 조그맣게 농사지을 땅을 알아봤지만 생각보다 비싼 땅 값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2010년께 정씨의 고향인 강원 평창군은 동계올림픽 개최에 따른 기대감으로 땅 값이 한 평(3.3㎡)에 7만~8만원을 넘었다. 최근 알아본 경북 봉화군은 평당 10만원 이상이었다.
또 치솟는 대학 등록금과 최근 계속되는 경제 불황에 따른 취업대란이 겹치자 한숨이 깊어졌다. 남자가 집을 장만해야하는 우리나라 결혼 풍습까지 생각하면 이마에 주름 펴질 날이 없다.
정씨는 "일이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은퇴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의 인생만 생각하며 무작정 귀농하기 쉽지 않다"며 "자식들은 걱정하지 말고 귀농하라고 말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자식들이 눈에 밟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요즘 결혼은 으레 남자가 집을 사야하는 분위기라 자식들이 결혼한다고 하면 돈을 지원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두 아들 모두 결혼까지 시키자면 귀농의 꿈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이처럼 귀농을 꿈꾸는 중년층들이 자식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로 그 꿈을 미루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대학교 졸업을 당연시 여기는 우리나라 교육열 분위기에 경제 불황, 높은 땅값까지 발목을 붙잡기 때문이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하지 않은 자녀를 2명 이상 둔 가구의 소비지출 중 교육비가 가장 큰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한 달 평균 수익은 468여만원으로 이 중 49여만원을 교육비로 지출했다. 전체의 17%에 달하는 수치다.
자녀가 없거나 따로 사는 가구는 월 평균 소득 294여만원에서 교육비로 4만원 가량(2.5%)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크게 차이난다.
반면 2명 이상 자녀를 둔 가구는 한 달에 식료품·비주류 음료비로 3만8000여원(13%)을 사용한다. 자녀가 없거나 따로 사는 가구가 3만원 가량(17.7%)을 쓰는 것과 정반대다.
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돈을 쓰며 자신의 여유와 삶의 질을 포기하며 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귀농을 위해서는 가족과 소득 등 현재의 환경적 문제를 내려놓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용범 전국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은 "현실적으로 귀농은 얼마나 자신의 삶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막연한 두려움과 가족과 소득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모두 내려놔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사무처장은 "귀농은 자신의 몸과 정신의 힐링(Healing)을 위한 것"이라며 "장기간에 걸쳐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