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상호 차장검사)은 1일 김기종(55)씨를 살인미수와 외국사절폭행,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5일 오전 7시38분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전쟁훈련 그만 해"라고 소리치며 리퍼트 대사의 오른쪽 얼굴과 목 등을 향해 수차례 흉기를 휘두르고 강연을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김씨는 평소 북한의 반미 주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중 최근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을 이유로 남북대화 중단을 선언하자, 미국대사를 살해하고 한미연합훈련의 부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김씨가 사전에 범행 계획을 세우고 치밀하게 실행에 옮긴 점에서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결론 냈다.
이와 관련, 김씨는 범행 사흘 전인 지난달 2일 자택에서 인터넷을 통해 '마크 리퍼트, 마크 리퍼트 부임, 오바마 키' 등을 검색하고 미국 대사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등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같은 날 국회도서관에서 범행 당일 배포할 목적으로 '전쟁훈련 중단,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남북공동성명 이행' 등을 주장하는 유인물 수십장을 제작·준비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씨가 범행의 수단으로 과도를 선택한 점, 얼굴과 목 부위를 집중적으로 수차례 반복해서 휘두른 점도 상해 혐의가 아닌 살인미수 혐의를 의율하는데 결정적인 근거로 작용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리퍼트 대사의 얼굴과 목을 겨냥해 칼끝을 아래로 향해 4차례 이상 내리찍듯이 휘둘렀다.
이로 인해 리퍼트 대사는 오른쪽 뺨과 아래턱 부위에 길이 11㎝, 깊이 1∼3㎝의 부상을 입었고, 흉기를 피하기 위해 방어하는 과정에서 왼쪽 아래팔 부위에 관통상을 입었다. 손등과 손가락, 우측 허벅지 등에도 자상을 입었다.
특히 목 쪽 경동맥 1~2㎝ 위까지 상처가 났고, 상처의 깊이가 광대뼈 쪽 5㎜부터 턱 밑 쪽 3㎝까지 목 부위에 가까워질수록 깊어져 경동맥 손상으로 인한 사망의 위험성이 높았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얼굴과 목 부위를 향한 공격의 강도는 리퍼트 대사의 팔뚝을 관통하고, 칼날이 휠 정도로 강하다는 점도 살인의 고의성이 다분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이 국내 한 대학의 법의학자에게 의뢰한 감정서에는 '서슴없이 얼굴에서 목으로 내려 찌른 것을 보면 처음부터 얼굴~목을 찌르려고 작정했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손상을 입으면 사망할 수 있다고 알려진 부위를 의도적으로 찔렀다면 살인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 관계자는 "범행이 계획적이고, 살상이 가능한 과도를 범행 도구로 선택했다"며 "생명과 직결된 얼굴과 목을 겨냥, 반복해 공격했고, 이로 인해 사망의 위험이 높았던 점 등을 종합해볼 때 살인의 범의가 명백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이 김씨의 통화 기록과 계좌, 후원금 내역 등을 추적했지만 살인미수 범행의 배후나 단체의 연계성은 입증되지 않았다. 당초 대한문 앞에 김정일 분향소 설치를 시도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김씨가 직접 가담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범행과 관련한 배후나 공범, 국가보안법 적용 등에 관해서는 향후 보강 수사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검찰은 김씨가 한미연합훈련과 주한미군에 대해 반대하는 등 북한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점을 확인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활동과 집회, 1인 시위, 거리 캠페인 등 실질적으로 동조하는 행동을 했고, 결정적으로 한미동맹의 주요 인물인 주한 미국 대사를 살해하려는 행위를 한 점도 중요하다고 봤다.
검찰은 현재 경찰과 함께 국보법을 적용할 수 있는 이적표현물 등 증거를 보강 수사 중이다. 현재까지 분석한 압수물 중에는 김정일이 쓴 영화예술론과 조선민족악기 총서, 사상학습 문건인 정치사상강좌, 범민련이 발간한 민족의 진로 등이 발견됐다. 이 중 검찰과 경찰은 영화예술론, 민족의 진로, 사상학습문건인 정치사상강좌가 이적성을 띤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수사 내용이 국보법을 적용하는 데 충분한지는 검찰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는 만큼 보강 수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례로 국보법을 적용하려면 김씨 본인이 인식해서 문건을 습득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김씨가 "우리마당 회원들이 자신의 자택을 사무실처럼 쓰면서 들여놨던 서적"이라고 부인한 점이 국보법 적용에 걸림돌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의 주장이나 '대한민국 사회가 미국 식민지'라는 인식은 북한에 동조한다고 볼 여지가 짙다"며 "살해 행위 자체도 이러한 표지에 비춰보면 본인은 부인한다 하더라도 이적 진영에 대한 미필적 인식이 있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미 대사 습격 행위 자체가 워낙 상징적으로 한미 동맹 관계에 위험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 행위의 동기나 이유가 명백히 북한에 동조하는 부분도 부분적으로는 일치하지만 본인은 부인하는 부분도 있다"며 "이미 국보법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국보법 그 자체가 신중하고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많아서 더 보강 수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국가보안법을 추가 적용하기 위해 김씨와 주변 인물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 이메일 송수신 내역 등 디지털증거, 후원금 등 계좌 입출금 내역을 비롯해 자택에서 압수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서적, 유인물 등 관료 자료물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13일 김씨에 대해 살인미수·외국사절 폭행·업무방해 혐의를 적용,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리퍼트 대사의 수술을 집도한 전문의 2명을 조사하고, 법의학자 등에게 상해감정을 의뢰하는 등 수사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