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과 경찰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열린 진보당 관련 집회 참석자들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우선 지난 1962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처음 만들어진 이후 해산된 정당은 진보당이 처음인데다, 집시법 제5조를 적용하는 첫 사례가 되는 만큼 검경은 사법처리 대상과 시기 등을 놓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집회 참석자 전원을 사법처리할 경우 진보당원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수사와 맞물려 '공안몰이'라는 비난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도 검경에게는 부담이 되고 있다.
집시법 제5조 1항 1호는 헌재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제5조 2항에서는 위 조항에 해당되는 집회 시위를 선전하거나 선동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으며, 제22조에서는 해당 집회 시위를 주최한 사람뿐만 아니라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 해당 집회나 시위에 참가한 사람도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5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동주)는 헌재 결정 이후 열린 진보당 해산 반대 집회에 참가한 이정희 전 대표와 지도부 등 집회 참석자 전원이 보수단체로부터 집시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사건을 서울종로경찰서에 내려보내 수사 지휘하고 있다.
검경은 지난해 12월19일 오후 서울 대방동 옛 진보당 당사 앞에서의 집회와 다음날인 2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주수호 결의대회' 등 2건의 집회를 수사 선상에 올려두고 있다.
특히 두 사건의 경우 집회 참석자 전원이 고발된 상황이어서 수사 대상을 추려내는 작업부터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경찰은 당시 집회에 참석했던 주요 인물들의 발언과 모습이 담긴 영상을 분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발언 내용을 중심으로 수사 대상을 가려낸 뒤 조사 시기와 방법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이 전 대표, 오병윤 전 의원,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등이 수사 선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영상에 대한 분석이 끝나는 대로 구체적인 수사 대상과 내용 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집회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주요 인사들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이 전 대표 등 집회 주요 참석자들의 발언 내용이 진보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느냐를 입증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참석자들의 면면이나 주요 발언 내용, 현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집시법 5조 적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집시법 5조가 적용됐던 사례가 없기 때문에 어쨌든 누군가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며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례가 쌓이기를 계속 기다리는 것보다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판단을 먼저 내리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표 등이 집회에서 어떤 발언을 했느냐가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대표 등이 헌재가 진보당 해산의 근거로 제시했던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면 사법처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검찰 관계자는 "진보당의 목적성이나 헌재 결정문에서 문제 삼은 내용이 아닌 다른 정치 활동이나 의사 표현에 대해서는 집시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