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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 발등의 불 방산비리②]개청 8년 만에 흔들리는 방사청의 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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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 발등의 불 방산비리②]개청 8년 만에 흔들리는 방사청의 黑역사
  • 김훈기 기자
  • 승인 2014.11.03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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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욱 기자 = 이용걸 방위사업청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방위사업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2014.10.20. fufus@newsis.com 2014-10-20

- 노무현 정부 때 탄생…비리 없애라고 독립시켰더니 비리 온상
- 민간·군인 절반에서 이명박 정부 이후 군인 늘어나 균형 상실
- 퇴역 軍고위 장교들이 방산업체-군 사이 매파 역할 비리 양산

방산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방위사업청의 존립 기반이 흔들거리고 있다. 여당은 폐지를 야당은 민간에 모든 것을 넘기라고 종용하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방산비리 문제를 거론한 지난 달 29일 "방산비리 의혹과 관련한 범부처 종합대책을 마련하라"며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자체적으로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책이 시급한 사안에 대해서는 신속히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언급했다.

방산비리를 차제에 발본색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읽히지만, 아직은 강력한 대책이 마련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봐야 하는 수순에 와 있다.

◇2006년 시작된 방사청의 역사

방위사업청(防衛事業廳·Defense Acquisition Program Administration)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월1일 개청했다. 방위력 개선사업, 군수물자 조달과 방위산업 육성과 같은 일을 관장하는 곳이다. 청장은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며 전체 직원은 820명가량이다.

현재는 서울 용산에 있지만 과천에 있던 정부기관들이 대거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텅 빈 정부과천청사로 이전할 예정이다. 이용걸 현 청장은 1979년 행정고시(23회) 출신의 정통 경제 관료로 기획예산처에서 잔뼈가 굵었다. 2010년 8월 국방부 차관에서 방사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위사업청이 국방부 외청으로 독립한 계기는 방산비리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군납비리(軍納非理)다. 방사청 독립 이전이나 이후나 터졌다 하면 대형사고인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현역 준장이 연루되는 등 대부분 고위직인 것도 같다.

정권마다 방산비리를 뽑아내겠다며 별렀지만 처음의 결기는 오래 가지 못하고 꺾이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초기에는 방산비리를 없애겠다며 날을 세웠지만 천안함 사태 이후 외려 방사청 내에 군 인력이 증가하는 결과로 돌아섰다.

실제로 2009년 가을 무렵에는 대형 군납비리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당시 국정원과 검찰, 군 검찰이 조사하던 군납비리 사건만 10여 건에 이른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비리만 봐도 탈세, 불법로비, 단가 부풀리기 등 종류도 다양했고 육·해·공군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처럼 정권마다 군납비리를 끊으려 노력했음에도 근절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군문을 나선 예비역들이 중간에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군 고위급 예비역들이 전역 후 군수업체에 취업해 업체와 군 사이를 잇는 매파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2001년 12월 육군본부 고등검찰부는 현역 장성 2명이 군 공사업체 선정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확인했다. 육군 공병감실과 조달본부에 재직했던 이들 준장이 45억원 규모의 공사업체 선정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각각 4500만원과 2000만원을 받았다가 적발된 것이다.

이 사건은 같은 해 5월 청주지검에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된 공사업체 대표 P씨의 폭로로 들통 이 났다. 이 일로 연루된 군 관계자만 현역 준장 2명, 영관급 2명, 예비역 소령 1명, 군무원 1명(구속)을 포함해 모두 7명에 달했다.

또 1996년 7월 대검은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동명중공업, 쌍용중공업 등 국내 4개 대형 방위산업체가 1991~1995년 전차 등 지상기동장비를 국방부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담당직원들과 짜고 부품 원가를 과다 계상해 382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해온 사실을 적발했다.

납품과정에서 군수물자 원가계산 등 납품실무를 담당한 국방부 조달본부 소속 현역 군인 1명과 군무원 16명 등 17명이 방산업체로부터 1인당 200만~2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사실도 밝혀냈다.

당시 검찰은 4개 업체 외에 삼성항공등 방산업체 납품비리에 대한 내사를 벌여 국방부와 업체 등으로부터 용달차 5~6대 분량의 관련서류를 넘겨받고 검토 작업을 벌였으며 관련자 100여명을 소환조사했다.

당시부터 방산비리는 터졌다 하면 대형 사고였다. 결국 2002년 제16대 대통령에 당선한 故노무현 대통령은 국방부에서 무기구입 등을 직접 담당하면서 군납비리가 생긴다는 업무 보고를 듣게 된다. 이 일이 시초가 돼 국방부에서 조직을 분리,외청으로 독립시킨 것이다.

방사청의 역할은 기획재정부 산하의 물자 조달을 담당하는 조달청과 비슷한 일을 한다. 처음 개청할 때는 국방부의 대리인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해 민간인과 군인의 인적 비율을 50대50으로 했다.

민간이 군사물자 구매 등의 사업을 주도하고 군이 사업관리를 담당하는 방식의 통합사업관리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국방부의 시녀에 그치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제한된 예산으로 효율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군용 장비들을 조달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개청 초기 절반씩이던 민간인과 현역 군인의 인적 구성은 이명박 정권을 거치며 달라진다. 현역 군인이 늘어나게 되면서 내부 감시 기능이 느슨해지게 된다. 이 때문에 건전한 견제는 사라지고 본격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많다.

◇민간 구성원 줄면서 균형 잃어

단적인 예가 지난해 말 터진 군복 납품비리다. 비리 업체로 처벌을 받은 업체에 또 다시 1000억원대에 달하는 군복 납품을 맡긴 것이다. 이 업체 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방사청은 항변했지만, 결국 비리업체만 배를 불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2년 전인 2012년에는 공군의 주력 F-16전투기에 순정품이 아닌 폐부품이나 세운상가 등에서 구한 유사부품을 사용한 업체가 적발되기도 했다. 수원 소재 군 항공기 정비업체 N사가 F-16 등 군 주력 전투기에 폐부품 등으로 엉터리 정비를 6년 동안 해 온 사실이 검찰 수사결과 드러난 것이다.

이같은 엉터리정비를 하면서도 N사는 방사청 등에 위조 수입신고필증, 거래명세서 등을 제출했고 수십여 차례에 걸쳐 23억원의 정비대금을 받아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군과 방사청은 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오히려 정비를 잘했다며 해당 업체에 표창까지 수여했다.

이런 비리는 우리군의 전력을 좀먹고 있다. 지난 3월17일 국방기술품질원은 최근 7년간 납품된 군수품(28만199품목) 관련 공인시험성적서를 검증한 결과 241개 업체에서 무려 2749건의 위·변조 성적서를 적발해 관련업체를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K2 흑표전차, K9 자주포, 한국형 헬기 수리온의 부품 평가서까지 위·변조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안겼다. 이쯤 되면 아군의 전력에 테러를 가하는 사보타주(sabotage)에 준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방산비리 방패, 민간 관료 효과는 '無'

사실 방사청은 이러한 이유로 인해 출범 초기부터 우려와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있었다. 이를 막고자 외부 관료 출신 청장이 선임되기도 했지만 결과는 방산과 관련 없는 일로 비리를 저질러 물러나거나 정권의 버림을 받아 단명했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자 예산 전문가인 이용걸 현 청장을 방사청장에 임명했다. 전임 청장들과 같은 이유였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방위력 개선사업을 군 외부의 시각으로 효율화하고 끼리끼리 해 먹는 군의 비리사슬을 끊어내라는 의도였다.

그러나 군피아(군대+마피아)와 방피아(방위산업+마피아)가 바위처럼 틀어 앉은 이상 방산비리를 척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방부 주변을 유령처럼 떠도는 이야기가 그것을 증명한다. 과거 비리를 도려내려던 모 방사청장이 군 간부로부터 "죽고 싶냐"며 권총으로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차관급 청장 혼자 밤하늘의 뭇별들처럼 수두룩한 장군들을 상대해 비리를 발본색원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권으로부터 소임을 부여받았다면 신분의 높고 낮음에 개의 치 않고 시도는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퇴진 운운하는 이야기들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개청이후 방사청장은 모두 군인 출신이 주를 이뤘다. 노무현 정부시절 초대 김정일(金炡一) 청장(2006년 1월1일~7월25일)은 국방부 국방조달본부장 출신이었다. 2대 이선희(2006년 8월1일~2008년 3월7일) 청장은 방사청 계약관리본부장 출신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3대 양치규 청장(2008년 3월10일~2009년 1월19일)도 국방부 백두사업단장과 방사청 KHP사업단 체계관리부장을 했었다. 4대 변무근 청장(2009년 1월20일~2010년 8월16일)은 해군본부 해군교육사령관 출신.

이에 반해 5대 장수만 청장(2010년 8월17일~2011년 2월16일)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과 조달청장을 거쳐 국방부 차관을 역임했다. 6대 노대래 청장(2011년 3월18일~2013년 3월15일)은 대통령실 국민경제비서관과 조달청장,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과 차관보 이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을 한 인물이다.

장수만 청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아바타로 불리며 실세 청장이라는 별호가 붙기도 했다. 일견 방산비리를 끊어낼 인물로 여겨졌지만 정작 조달청장시절의 함바비리로 불명예 퇴진한 인물이다.

군 출신 청장 이후 민간 관료 출신들이 연이어 청장에 올랐지만 방산비리는 줄지 않고 있다. 외려 더 깊숙이 숨어들고 은밀히 이뤄지는 특성까지 보이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 외부인을 앉힌 셈이라 별무소득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용기로 지킨 명예…양심선언 김영수 소령

하지만 내부 제보자의 역할은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심어주기도 한다. 문제는 양심적 제보자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 아니면 방산비리의 내용조차 파악하기 힘들다는데 있다. 그런 예로 보자면 해군의 김영수 소령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2009년 7월 초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일이 벌어졌다. 한 해군 현역 장교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군납비리를 폭로하고 군 사법시스템과 내부 정화시스템 마비 상태를 고발한 것이다. 이 일은 당시 사회는 물론 군의 기강해이가 극에 달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당시 현역 해군 장교였던 김영수 소령은 계룡대에서 일어난 10억여원대 군납 비리 의혹 문제를 고발했다. 영관급 장교가 군의 비리를 고발한 것은 우리나라 군 역사상 최초였다고 한다.

여기서 관심 있게 봐야 할 점이 있다. 사실 김 소령은 군 수사당국에 군납비리 문제를 수차례 고발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TV 프로그램에 제보한 이유도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소령은 2003~2005년 계룡대 근무지원단에서 일어난 9억4000만원대 군납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비공개 수의계약으로 9억 4000만원의 혈세가 낭비됐고, 이 과정에서 분리 발주와 위조 견적서 등 불법과 탈법이 자행됐다"고 고발했다.

김 소령은 불법적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시장조사와 경쟁 입찰 등의 방식으로 근무지원단 부임 이후 7개월 만에 무려 5억원의 예산을 절약했다. 하지만 군은 김 소령에게 근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근무평점을 징계에 해당하는 'E' 등급을 줬다. 또 '업무적응 미숙'이라는 이해 못할 이유를 대며 타 부대로 전출시켜버렸다.

결국 부당한 인사 조치에 대해 김 소령은 군 수사기관에 제보했지만 '수사 불가'나 '혐의 없음'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외려 김 소령을 내친 군을 수사해서 불법을 찾아내고 왜곡된 점을 바로잡는 게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양심선언만으로는 조직적 은폐에 맞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만 새삼 일깨웠다.

군 수사기관은 당시 수의계약을 체결했던 업체들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도 하지 않았고 외려 군납 비리 의혹을 은폐하려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런 행태는 계속되고 있다. 문민 청장이 세 명이나 연달아 부임했지만 아직도 변한 것은 없다. 방사청은 물론 군의 고위급들이 변하지 않는 이상 국가의 방위를 좀먹는 방산비리는 은밀히 제 키를 키워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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