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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아닌 평시 최악 참사' 10일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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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아닌 평시 최악 참사' 10일간의 기록
  • 김도란 기자
  • 승인 2014.04.25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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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경기 안산단원고등학교에선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났다.

수학여행을 떠난 2학년 학생과 교사 339명이 탄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자식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부모들은 눈물바람으로 진도로 달려갔고, 학교는 순식간에 혼돈에 휩싸였다.

사고 발생 열흘째인 25일 현재 단원고 탑승자 339명 가운데 125명은 실종됐고 137명은 숨졌다. 학생 75명과 교사 3명이 살아남았지만, 교감 강모(52)씨는 학생들을 구하지 못한 책임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희생자들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는 안산에서는 연일 탄식과 통곡이 교차하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이번 여객선 침몰 사고를 두고 "전시가 아닌 평시에 한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참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16일 오전 8시50분께 안산 단원고 교무실로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을 인솔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강 교감이었다.

강 교감은 "갑자기 배가 기울더니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고 했다.

갑작스런 사고 소식에 학교는 분주해졌다. 교육청 등에 상황을 보고하고 2학년 학부모들에게 안내 메시지를 발송했다.

놀란 학부모들은 학교로 달려왔고, 학교는 지속적으로 배에 탄 교사들과 통화를 시도하면서 학생들을 대피시킬 것을 지시했다.

학교는 오전 11시5분께 '전원 구조 완료됐다'는 문자를 학부모들에게 발송했다.

그러나 안도도 잠시, 학교는 "파악을 잘 못했다"며 다시 "아직 구조 중"이라고 정정했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걱정스런 마음에 학부모들은 앞다퉈 진도로 향했다. 학교 강당에 남은 사람들은 TV뉴스를 주시하며 학생들이 무사하기만을 기도했다.

오후 1시30분께 모두가 우려하던 소식이 들려오고야 말았다. TV화면엔 단원고 2학년 정모(17)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자막이 나왔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학생 대다수가 배를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학부모들은 피가 마르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진도실내체육관에 모인 학부모들은 "내 새끼 살려내라"며 오열했다. 일부 학부모는 침몰지점과 가장 가까운 팽목항에 나가 구조소식만을 기다렸다.

부모들의 마음은 타들어갔지만 갈수록 사망자만 늘었다. 일부 학부모는 실종 학생들이 보낸 문자메시지와 SNS 등을 보이며 당국에 구조활동을 재촉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진도를 찾아 신속한 구조작업을 독려했지만 기상악화로 수색은 지지부진했다.

사고 당시 구조된 학생 75명은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고로 인한 충격이 컸다.

일부 학생은 치료를 거부하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등 일시적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증상을 보였다.

차상훈 고대 안산병원장은 학생들의 상태에 대해 "외상은 경미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로 불안과 수면장애, 또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이 늦거나 인지 능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멍한 상태를 호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 국민이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했지만 안타까운 비보만 들려왔다. 3명이던 사망자 수는 20명에서 50명으로, 이윽고 100명으로 갈수록 늘어갔다.



탑승객 수도 제대로 세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과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한 선장의 무책임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졌다.

시신이 인양되는 진도 팽목항과 먼저 발견된 희생자들의 장례가 치러진 안산 장례식장에선 통곡이 끊이지 않았다.

단원고 재학생들은 구조된 학생들의 병문안을 갔다가 숨진 학생과 교사의 빈소를 찾는 기막힌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러던 중 강 교감이 진도실내체육관 인근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유서에 '모든 책임을 내가 지고 간다. 가족과 학교, 학생, 교육청, 학부모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남겼다.

피해규모가 갈수록 커지자 안산시는 정부에 특별재난구역 지정을 건의했다.



하루에도 십여명의 학생들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안산지역 장례식장 영안실과 빈소는 이내 곧 포화상태가 됐다.

시신이 뒤바껴 유가족을 두번 울리는 사례도 세 차례나 벌어졌다.

친구를 구하러 다시 객실로 향했다 숨진 여학생, 수영선수가 되려던 남학생, 긴박한 침몰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해 119신고를 한 학생 등 숨진 학생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경기도합동대책본부는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단원고 희생자들의 임시 합동분향소를 마련했다. 23일 개방된 임시합동분향소엔 이틀동안 3만여명이 몰릴 정도로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분향소를 찾은 40대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어른들의 잘못으로 꽃다운 아이들이 저세상으로 갔다"며 "학생들에게 기도하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말했다.

비관적인 상황이 이어지지만 가족과 시민들은 실종된 학생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안산 중앙역 로데오거리, 상록구의 한 슈퍼마켓, 단원고 정문엔 실종된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편지와 노란리본이 줄줄이 달렸다.

안산시민 수 백명은 매일 저녁 광장에 모여 단원고 학생들이 돌아오길 기원하는 촛불기도회를 열고 있다.

학교는 조금씩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다. 도교육청은 단원고 정상화 지원단을 꾸리고 구조된 2학년 학생과 1·3학년 재학생, 교사들의 심리치료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3학년은 24일부터 등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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