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정보까지 수집 가능…'기업 정보동의, 실질적 강제'
AI 학습데이터까지 활용…노동자 정보인권 침해 우려↑
기업이 노동자의 개인정보와 업무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자유롭게 거부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직장인이 86.5%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여론조사 기관 글로벌리서치와 함께 지난달 1~14일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인사·업무 관리 목적 데이터 수집 시 노동자의 거부 어려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고 16일 밝혔다.
응답자의 86.5%는 "기업이 인사·업무 관리 목적으로 개인정보나 업무 관련 데이터를 수집·이용하는 과정에서 자유롭게 거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응답은 고용형태와 직급, 연령, 성별,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모두 80%를 넘겼다.
직장갑질119는 "정보인권침해 문제는 근로조건의 좋고 나쁨과 무관하게 '노동자라는 지위' 그 자체 때문에 발생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기업이 노동자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할 때 당사자의 동의를 받도록 한다. 하지만 직장갑질119는 "일단 동의만 받아내면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사상·신념·정치적 견해·성생활·심리상담기록과 같은 민감정보 수집도 가능해진다"며 "동의에 이처럼 큰 의미를 부여하려면 동의하지 않을 권리 역시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많은 기업들이 사전 동의를 형식적으로 받아두고, 이후 각종 인사나 업무 과정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해도 노동자는 의사 표현이 어렵다고 비판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기본적으로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를 '대등한 관계'로 전제하는 반면, 노사관계는 본질적으로 사용자에 지휘·명령을 받으며 일하는 지위이므로 인사상 불이익, 사내 평판 등을 우려해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최근 기업들이 노동자의 개인정보, 행태정보, 목소리를 수집해 인공지능(AI) 프로그램 학습데이터로 활용하는 사례 역시 우려로 제기됐다.
직장갑질119의 김하나 변호사는 "향후 근로자를 대체하는 기술개발에 학습데이터를 제공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대등한 관계를 전제한 개인정보보호법이 사업장 내 개인정보 수집 이용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어 현실과 법제의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대두되는 시대에 기업이 효율을 앞세워 노동자 정보인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제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