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게시글, 거짓신고 근절하는 것이 우선
"폭파 의사 없었어도 처벌 낮아져선 안 돼"

최근 폭발물 설치 협박이 잇따르는 가운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경각심이 낮아지고 사회 전반에 '안전불감증'이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상황이 발생하면 피해가 커질 수 있어, 반복되는 허위 신고를 근절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2일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폭발물 설치 협박이 허위로 드러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신고가 접수돼도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해 별도 대피 조치를 하지 않는 등 대응이 느슨해지고 있다.
지난 8월 5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신고가 접수돼 이용객과 직원 400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 경찰특공대 등 242명이 투입돼 건물 전체를 수색했지만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전국 각지의 백화점, 학교, 공공기관 등에서도 유사한 협박이 이어졌다.
같은 달 13일에는 경기도 용인의 대형 테마파크 에버랜드에 폭발물 협박 팩스가 전송됐고, 17일에는 수원의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도 비슷한 신고가 접수됐다. 모두 허위 신고로 확인됐다.
플레이브 콘서트장, 신세계면세점 본점, 서울시청 등 대형 건물은 물론, 고등학교·대학교 등 학생을 겨냥한 협박도 이어졌다. 지난 2일에는 연세대·고려대·한양대에 폭발물 설치 협박 메일이, 13일에는 서강대에 유사한 내용의 메일이 접수됐지만 경찰 수색 결과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 학교의 경우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돼 학생들에 대한 대피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전날 오전 7시50분께는 '서구 대인고등학교 내부 7곳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협박 글이 119 안전신고센터에 게시됐다. 대인고에는 지난 13일부터 나흘 연속 같은 방식으로 폭발물 설치 협박이 이어진 바 있다.
게시된 글에는 '이전 협박 글은 수사력 분산과 상황 파악을 위한 것'이며 '이번에는 진짜'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전날 기준 별다른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접수된 폭발물 관련 신고는 99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72건(약 73%)이 8월 5일 이후에 집중된 것으로 집계됐다.
반복되는 허위 신고로 시민들의 경각심도 낮아지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경준(28)씨는 "최근 비슷한 뉴스가 계속 나오다 보니 '또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며 "큰 위험성은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서모(30)씨도 "실제로 폭발물이 발견된 적이 없지 않냐"며 "신고가 접수될 때마다 대피하는 게 맞지만, 수백 명이 움직이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폭발물 협박 신고가 접수된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연세대에서 만난 심리학과 재학생 한모(23)씨는 "폭발물 피해가 나와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가짜로 판명되기도 전에 불안감은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불어불문학과 유모(21)씨도 "실제 폭발이 일어난 적이 없으니 '아니겠지'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한양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진혁(25)씨도 "대피한 기억은 없다"며 "학생들 사이 파급력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기계공학부에 다니는 박모(21)씨는 "개인적으로는 불안감을 느끼지 못했다"면서도 "학교의 미온적 대응을 보고 '안전불감증'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식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됨에 따라 피로감이 커지고 경각심이 낮아지는 만큼, 허위 게시글과 거짓신고를 근절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공중협박죄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하고, 폭파 의도가 없더라도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중협박죄는 올해 3월 신설됐지만, 첫 판결이 벌금형에 그쳤다. 서울남부지법은 영등포 일대 상점가를 돌아다니며 사제 폭탄을 들고 테러 협박한 20대 남성에게 지난 8월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없는데, 다수의 관심 등에 따른 '보상'은 크다보니 양치기 소년처럼 범죄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보고 "폭파할 의사가 없었다고 처벌이 낮아져선 안된다. 공중협박 자체가 명확한 범죄"라고 말했다.
공권력 낭비도 문제로 제기된다. 이 교수는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 백화점의 경우 수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냐"며 "매번 경찰과 소방의 출동 비용, 대중의 불안심리와 공포 등도 피해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찰청은 앞서 허위 게시글과 112 거짓 신고로 국민적 불안이 야기되고, 경찰력 낭비로 인한 민생치안 공백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형사처벌은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등 후속 조치를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