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23건의 보이스피싱 피해금 1228억원 세탁
월급 명목 150~200만원 지급, 거짓진술 지시하기도
경찰 "허위 법인 설립, 명의 빌려주는 경우 형사처벌"

수입이 없는 고령층을 모집해 유령법인을 세우고 보이스피싱 피해금 1228억 원을 세탁한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범죄집단죄, 전자금융거래법·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일당 31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국내 총책 A(60대)씨와 그의 아들 B(30대)씨 등 6명을 구속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9년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며 수입 없는 고령층을 모집해 114개의 유령법인을 설립하고, 485개의 대포계좌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발생한 223건의 보이스피싱 피해금 1228억원을 세탁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지난해 5월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여러 유령법인계좌를 거쳐 현금과 달러로 출금됐고, 유령법인 대표들이 대부분 고령층이고 주소지·법인소재지 등이 경남지역에 집중돼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올해 3월 중간책 3명 검거를 시작으로, 6월 국내총책 A씨와 B씨를 검거하는 등 총 6명을 검거·구속했다.
국내총책 A씨와 B씨는 부자(父子) 관계이며, 해외에서 범죄수익세탁을 지시한 필리핀 총책 60대 C씨 역시 A씨의 동생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C씨에 대해 인터폴 적색·은색 수배를 조치하는 등 국제공조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수년간 범죄수익금을 세탁하며 범행을 이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월급처럼 매달 수당을 주겠다'는 말로 수입이 없는 고령층을 꾀어 유령법인 명의자로 내세웠다. 이들이 조직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월급 명목의 150~200만원과 명절 상여금을 지급했다.
법인 명의자들도 과거 직장동료나 지인들에게 '법인을 세우면 매달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영입하기도 했다.
고액의 현금과 달러를 출금할 때는 은행 측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회사직원으로 위장한 중간책이 유령법인 대표와 함께 은행을 찾아 정상적인 법인 거래로 가장했다.
이 경우 법인 대표에게는 회당 1~20만원의 수당이 지급됐다.
법인 대표들이 얻은 수익금은 평균 4000만~5000만원 가량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총책·중간책들로부터 직접적인 지시를 받고,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직접 인출해 전달한 유령법인 대표들에게도 형법상 범죄집단 활동 혐의를 적용했다.
한편 조직은 경찰 수사에도 철저히 대비했다.
보이스피싱 관련 수사로 법인계좌가 지급정지되거나 명의자가 출석요구를 받으면, 해외총책과 국내중간책이 전화통화나 텔레그램을 통해 대응 요령 등을 지시·안내했다.
법인 계좌를 개설하면 대출해준다는 말에 속았을 뿐이라며 대출금이나 수당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식으로 거짓 진술을 지시하거나, 명의자 조사 도중 해외에서 인터넷 전화를 걸어 거짓 진술 시나리오를 설명하기도 했다.
총책과 중간책들은 유령법인 명의 전화로만 연락하고 법인 차량만을 이용해 세탁금을 주고받으며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고자 했다. 서로 가명을 사용해 신분도 숨겼다.
경찰은 검거 과정에서 현금·수표·귀금속 등 2억8000여만원을 압수하고, 범죄수익금 34억원 상당을 기소 전 추징보전한 상태다. 대포 통장에 남아있는 42억원에 대해서도 몰수를 추진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안정적인 수익을 제안받아 허위로 법인을 설립하거나 명의를 빌려주는 경우 형사처벌될 뿐만 아니라, 보이스피싱에 악용돼 선량한 다수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를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