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1일 오후 3시 26분에 경남 산청군 시천면 신천리 산 39번지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이 울산, 경북, 경남, 충북, 전북의 5개 광역지자체 11개 지역을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여 초토화한 초대형 ‘괴물 산불’을 지난 3월 30일 오후 1시를 마지막으로 진화하며 열흘 만에 간신히 주불을 모두 완전진화했고 잔불 정리에 들어갔다. 정부는 지난 3월 30일 오후 4시 경북도청에서 고기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행안부장관 직무대행) 주재로 산불 대응 관련 중대본 제9차 회의를 열고, 잔불 상황 및 피해 수습 진행 현황을 공유했다. 고기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 “지난 21일부터 경남과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형산불은 총력 대응 끝에 주불을 모두 진화했다”라고 밝히고, “진화는 마무리됐지만 피해 복구는 이제 시작”이라며 “이재민의 일상 회복을 위해 정부가 총력 지원에 나서겠다”라고 강조했다.
일단 대형산불은 다행히 가까스로 진화를 완료했지만, 인명과 재산 피해 모두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 피해는 30명이 숨지고 45명이 다치는 등 모두 7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산불로 모두 3만4816명이 대피했다가 3만1043명이 귀가했다. 아직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이재민이 3773명에 이른다. 산불 피해 영향 구역은 총 4만8239ha로 추산됐다. 지금까지 역대 가장 피해가 컸던 2000년 동해안 산불의 피해 면적(2만3794㏊)의 두 배 수준이다. 이는 축구장 크기(0.714ha) 기준 6만 3200여 개, 여의도 면적(290ha)의 156배, 서울 면적(6만520㏊)의 약 80%에 달하는 산림이 초토화됐다. 주택 3397동, 농업시설 2114건이 전소했고, 국가 지정 11건과 시·도 지정 19건 등 총 30건의 문화재도 화마로 소실되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마지막까지 속을 썩인 경남 산청의 주불 진화에는 213시간 34분이 걸렸다. 2022년 3월 울진·삼척 산불(주불 진화 213시간 43분)에 이어 9분이 모자란 역대 두 번째로 긴 산불로 기록됐다.
점점 늘어나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봄철 동시다발 대형산불이 ‘뉴 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로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 기후변화로 산불이 일상화하고 대형화된 가운데 동시다발 산불에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재난 체계는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열악한 지형과 울창한 산림 등도 진화의 발목을 잡았다. 지리산까지 침범한 산청산불은 전날 진화율이 99%를 기록했지만, 주불 진화까지는 22시간이 더 필요했다. 산청·하동 산불 피해 면적(1858㏊) 중 국립공원이 132㏊로 잠정 집계됐다. 그러나 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이번 산불에서는 사망자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자와 장애인 등 안전 취약계층인 것으로 조사됐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나 장애인은 신속한 대피가 어렵고 정보 접근성도 떨어져 피해가 컸다. 현행법은 이들을 안전 취약계층으로 규정해 별도의 지원·대응 방안을 마련토록 했지만, 영남 산불에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사각지대(死角地帶)에 있었던 셈이다. 우선 “재난은 모두에게 결단코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반복되는 재난 불평등’으로 다시 또 한 번 분명히 인식시키고 각인시켜준 셈이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피해를 주지만 회복 과정은 모두에게 같지 않다. 사회적 약자가 자연재난으로부터 더 많은 타격을 받는다. 극복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재난 불평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컬럼비아대학교 ‘존 C. 머터(John C. Mutter)’ 교수는 그의 저서 ‘재난 불평등(The Disaster Profiteers)’에서 자연재해를 사회문제로 확장되는 지점인 ‘파인만의 경계(Feynman line)’를 포착하여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경계에서 ‘재난의 상황은 늘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며, 자연보다는 인간이 더 큰 피해를 준다.’라고 역설했고,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키스 페인(Keith Payne)’ 심리학 교수도 그의 저서 ‘부러진 사다리(The Broken Ladder)’에서 불평등 문제를 심리학으로 해석하고, “모든 악은 가난이 아니라 불평등에서 나온다”라고 강조하며, “가난하고 불평등하면 사람의 마음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멀리 보지 못해 가난한 게 아니라 가난해서 멀리 못 보는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린다.
지난 3월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북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 결과 26일 기준 경북 안동·청송·영양·영덕 산불로 인한 사망자·실종자 18명 가운데 14명의 평균 연령은 78세로 조사됐다. 나머지 2명은 59세였으며, 2명은 나이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들 전체의 평균 연령은 76세로 추정된다. 피해자 중에는 소아마비 환자 1명, 청각장애인 1명, 거동 불가능 와상환자 4명, 치매 환자 1명이 포함됐다. 소아마비를 앓고 있던 71세 여성은 산불에 고립돼 질식해 사망했고, 실버타운에서 요양 치료를 받던 80대 남녀 3명은 차량으로 대피하던 중 산불이 확산하면서 차량이 폭발해 숨졌다. 노약자가 재난 상황에서 취약한 건 이번 일만이 아니다. 2022년 8월 8일 밤 유례없는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하는 희생이 발생한 것을 비롯 우리 일상에서 그동안 거동 불편이나 재난취약자의 희생은 수없이 많이 목도되었다.
국회 서미화 의원실이 받은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6월까지 전체 화재사상자 1만888명 중에서 장애인, 노인, 어린이는 3958명으로 무려 36.4%로 나타났다. 또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장애인의 인구 10만명당 화재사상자 수는 9.1명으로, 비장애인 대비 2.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서미화 의원은 “재난 상황은 누구에게나 위협이 되지만, 특히 장애인과 노약자에게는 치명적이다. 국가가 이들의 안전을 체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화재와 재난 상황에 더욱 취약한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 취약계층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지난 3월 28일 대표 발의했다. 국회 서미화 의원은 “이번 법안은 단순한 통계 관리 차원을 넘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취약계층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라고 밝혔다. 현행법에서는 소방청이 일부 화재안전취약자의 피해를 관리하고 있을 뿐, 행정안전부는 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구체적인 피해 현황을 별도로 집계하거나 맞춤형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있어 구조적인 보완이 시급한 상황이다.
화재나 천재지변 시 발령되는 재난 문자가 고령층에게나 거동이 불편한 자에게 있어서는 아예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귀가 어두워 문자 메시지가 왔는지 제때 모르거나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사례도 상당수였다고 하니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번에도 문자 메시지를 열어볼 수 없는 노인들은 친구·가족·이웃이 대피하라고 알려줘서야 비로소 대피소에 왔다고 한다. 구형 3G폰을 사용하는 노인들은 소방 당국에서 보내는 재난정보를 아예 수신조차 할 수 없다니 우리 사회 이면에 드리운 ‘재난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극명(克明)하게 보여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번 대형산불이 남긴 교훈은 참으로 크다.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위험 지역에 거주하는 안전 취약계층의 사전 보호 조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고령층이나 신체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대상자를 파악해 대피 계획을 미리 세우고, 고령자·장애인 등의 전담 지원 인력을 조속히 확충하고 선제 지원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그야말로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재난으로 졸지(猝地)에 집과 생활기반시설을 송두리째 화마(火魔)에 잃고 살아갈 길이 막막한 경제적 취약자들도 많다. 재난 발생 후 그 어떤 사람도 행정 절차나 정보를 몰라 정부 지원 혜택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보다 촘촘히 살피고 보다 두텁게 챙겨야만 한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지만 피해는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 현실을 직시(直視)해야만 한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재난의 충격과 여파는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음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어떤 재난에서도 고령자·장애인·여성·어린이가 안전한 세상이 바로 우리 사회가 그토록 염원하고 갈망하던 ‘진정한 안전 가치의 실현’이다. 모든 사람이 안전할 때만 진정한 안전이기 때문이다. 그런 안전한 세상을 구축할 때까지, 안전 관련 법령의 미비점을 조속히 보완하고 안전 제도상 허점을 서둘러 메우며 재난 안전·복구·지원 체계와 인프라를 신속히 구축해야만 한다.
한편, 산림청 산불 진화 헬기의 경우 기령(機齡)이 20년을 초과한 헬기가 33대(70%), 기령이 30년이 넘은 헬기도 12대(2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추가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지속 대두되고 제기하고 있다. 특히 재정이 취약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산불 헬기의 구매가 아닌 임차의 비용마저도 부족하여, 각 지역의 대형산불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산불 진화 헬리콥터 등 산림 항공기의 구매 또는 임차 비용과 부품 교체·정비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의무적으로 지원해 대형산불 재난에 신속 대응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산불 헬기 도입 의무 지원법'을 지난 3월 28일 국회에 발의했다. 일찍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는 “우리가 어느 날 마주친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지난 시간의 보복이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율리히 백(Ulrich Beck)’은 “현대사회는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위험은 단순한 재앙이 아닌 예견된 잠재적 위험으로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 산업화 등에 주로 기인한다”라고 경고했다. 결국,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재난은 우연이 아니라 오랜 기간 안전 인프라를 게을리 한 대가이자 관리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 숙명적 보복이다. 따라서 취약계층 보호에 관심을 집중하고 안전투자를 게을리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산불 발생 시는 신속하게 신고하고, 초기 진화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산림청과 소방청, 기상청, 지자체는 유기적으로 협력해 산불 비상대비체계를 갖추는 게 필수적 선제 대응이다. 유사시 ‘산소기지(山消氣地)’의 기관별 연락관을 행정안전부에 파견 상황 전반을 실시간으로 체크 하도록 하고, 통제·관리하는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로 작동하는‘산불 워룸(War room)’을 설치하여 즉각 가동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수립하여 신속히 실행에 옮겨야만 한다. 산불은 어느 한 시점이나 어느 한 기관이 나서서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다. 국가적 차원의 범국민적 산불 예방이 첩경이다. ‘산소기지(山消氣地 │ 山림청·消방청·氣상청·地자체) 공조’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By failing to prepare, you are preparing to fail)”란 ‘벤자민 플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선각(先覺)을 떠 올리고 찬찬히 반추(反芻)하며 곡돌사신(曲突徙薪)의 심정으로 거안사위(居安思危)와 초윤장산(礎潤張傘)의 지혜 그리고 유비무환(有備無患)과 상두주무(桑土綢繆)의 혜안(慧眼)과 통찰(洞察)로 봄철 정례화를 넘어 연중화·대형화하는 동시다발 대형산불에 선제 예방하고 효율 대응하는 데 국가역량을 총 집주(集注)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