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된 공수처·선거법 두고 옳고·그름 따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태를 두고 법원에서도 정쟁을 계속하는 모양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관련 갑론을박을 펼치며 서로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다.
특히 공판 과정에서 여야가 행위 자체가 아닌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어, 일각에서는 사법부 판단이 나와도 정치적 해석으로 비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25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2019년 4월 당시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의원 및 보좌관 10명과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 및 보좌관 27명의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오는 26일 예정된 더불어민주당 측 3차 공판기일에는 박범계 현 법무부 장관이 피고인으로 출석할 가능성도 있다. 사건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던 박 장관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2019년 4월25일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하려는 민주당 측과 이를 저지하려는 자한당 측의 물리적 충돌로 발생했다.
당시 바른미래당 측이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오신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을 채이배 전 의원으로 교체하려는 사보임을 단행하자, 이를 저지하려던 자한당 일부 의원은 채 전 의원을 집무실에 감금한 혐의도 받고 있다.
문제는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과 관계자들이 사건 당시 폭행 등 혐의의 사실관계나 법리 다툼이 아닌 행위 정당성에 초점을 맞춘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채 전 의원 감금 의혹과 관련해 지난 2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성보기) 심리로 열린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 자한당 측 의원 및 보좌관 8명의 6차 공판에는 여상규 전 국민의힘 의원(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공수처 자체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공수처가 출범됐지만 한번 보라”면서 “검찰을 견제하고, 정권 안위를 목적으로 하는 그런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헌법 근거 규정이 일체 없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어떻게 법사위 심의도 하지 않고 패트로 처리하려고 하는지 그런 분노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돌 사건에 대해 “불법 행위에 대한 정치적 저항권 행사로 정당행위였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측은 당시 안건으로 지정된 공수처법이 정당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자한당 측의 불법행위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9월23일 첫 공판에 출석했던 박 장관은 “민주당에게 공수처법은 DNA와 같다”고 말했다.
이어 “공수처는 검찰 개혁 DNA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판단했다”면서 “지난 20년 동안 (추진)했고, 고(故)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역사였다”고 했다.
박 장관은 이와 관련한 협의가 2018년부터 있었고, 사개특위는 여야가 합의한 기구였다면서 자한당 측 주장에 반박했다.
이처럼 공판이 법적 혐의에 대한 다툼보다 정쟁으로 진행되자 전문가들은 ‘정치의 사법화’라며 우려를 표했다.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을 검찰·법원으로 들고 갔다”면서 “법의 정당성 여부는 의회가 정한 절차와 관습에 따라 해결하면 될 일”이라고 했다.
실제로 자한당 공판 증인으로 출석한 여 전 의원이 공수처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자, 성 부장판사는 “법률 내용을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면서 “기소된 행위들에 대해 어떻게 이런 행위들이 벌어지게 된 건지 알아보는 선에서만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은 “입법자들의 권리와 권한, 정치인으로서의 고유한 직무를 검찰과 법원에 넘긴 것”이라며 “법원에 맡기고 유리하면 현명하다고 하고, 불리하면 욕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