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수익률이 높다고 해서 3년 넘게 월 20만원씩 800만원 정도를 펀드에 투자했어요. 그런데 계속 손해가 나서 해약하면 500만원도 못받을 상황이에요. 자산운용사들이 펀드 운용을 이렇게 해놓고 배당잔치를 했다니 분통이 터져요."(서울 광진구에 사는 30대 주부 A씨)
#2. "M사의 '3억 만들기펀드'에 1년 넘게 매달 50만원씩 넣고 있어요. 그런데 이 달은 단순수익률이 -11%네요. 계속 입금해야 할 지, 지금이라도 팔아야 할 지 갈피를 못잡겠네요. 이름만 그럴듯하게 지어놓고, 이건 뭐 고객들 피 빨아서 운용사 배 채우는 것 아닌가요."(경기 수원에 사는 20대 직장인 B씨)
대다수 간접 투자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들은 펀드 투자를 통해 쌈짓돈으로 목돈을 만들려고 했지만 계획은 무참히 어그러지고 말았다. 증시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돈을 까먹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자산운용사들의 행태다. 고객들은 손해를 보고 있는데 자신들은 수수료로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푸짐한 '배당 잔치'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투자, 신한BNP 등 28개 자산운용사는 올해 2048억원(중간배당 포함)의 배당을 결정했다. 자산운용사들의 배당성향은 무려 66.6%에 달한다. 당기순이익의 3분의 2를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나눠줬다는 뜻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결산 상장기업의 평균 배당 성향은 17.2%였다. 자산운용사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찔끔 배당'이다. 자산운용사는 확실하게 '대주주 돈 잔치'를 벌인 셈이다.
특히 증권회사가 대주주인 KTB, 하이 등의 배당성향이 높은 편이다. 교보악사, 하이, NH-CA, 한국투자, 신한BNP 등 8개사는 최근 3년간 매년 당기순이익의 80% 이상을 배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 증시에 상장됐다면 최고의 '배당 투자 종목' 상위권을 휩쓸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펀드의 수익률이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자산운용사는 고객을 위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대주주를 위한, 대주주에 의한, 대주주의' 회사인 셈이다.
12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순자산이 300억원 이상인 39개 자산운용사가 운용한 2346개 펀드의 올해 상반기 수익률은 -6.56%다.
이들 펀드의 지난달 1일 기준 운용 순자산은 63조5631억원. 운용사들은 반년 사이에 4조원 가량의 고객 투자금을 날린 셈이다.
지난달 1일 현재 운용사 중 최고액인 13조2230억원을 운용하고 있는 삼성자산운용은 올해 상반기 -9.25%라는 형편없는 펀드 수익률 성적표를 내놨다. 고객돈 1조2000억원 가량을 날린 것이다.
삼성자산운용은 올해 보통주 1주당 1250원, 모두 234억원의 배당을 결정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7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배당금은 삼성자산운용 주식 65.3%를 보유한 삼성증권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7.7%),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5.1%) 등이 나눠가졌다.
9조469억원을 운용하고 있는 한국투자신탁운용도 올해 상반기 -6.64의 펀드 수익률을 기록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역시 올해 주당 2500원, 모두 330억원의 배당을 결정했다. 당기순이익의 91%에 달하는 배당금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한국투자증권이 모두 챙겼다.
농협금융지주가 6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NH-CA자산운용도 마찬가지였다. NH-CA자산운용은 올해 상반기 수익률이 -11.28%로 운용업계 꼴찌를 기록했지만 올해 순이익의 97.5%를 배당금으로 주주에게 헌납했다.
자산운용사들이 고객 돈을 까먹어 놓고도 주주들에게는 배당금을 뭉터기로 나눠줄 수 있는 것은 펀드가 수익을 내든 손해를 보든 '수수료'를 받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형구 금융국장은 "자산운용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며 "펀드 수수료 수익을 재원으로 배당을 한다고 하지만 투자자가 아무리 손해를 보더라도 운용사는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 국장은 "증권사가 계열 운용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운용사는 투자자들의 수익은 도외시한채 주식 사고팔기를 반복하며 증권사에 매매수수료와 배당을 몰아준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익을 내기 무섭게 배당으로 싹 빼내가면 회사 운영 자체가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수익금으로 투자를 하고, 사고에 대비한 적립금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