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산(産) 화장품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특히 한방 화장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사랑받으며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는 첨병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명품이 독주하던 화장품 시장에 우리나라 제품이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산 화장품이 국내·외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과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처음 화장이 시작된 것은 종교적 의례와 건강 등을 위해서였다. 특히 후한서(後漢書)를 보면 고조선 읍루인은 돼지기름을 몸에 발라 추위와 햇볕에 타는 것을 막았다는 기록이 있다. 돼지기름이 보온은 물론 일종의 자외선 차단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화장이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한 목적으로 변한 것은 삼국시대였다. 삼국시대의 화장술은 인도와 중국 등 주변국과 교류하면서 다양하게 발달했다.
고구려 벽화 속의 여인은 입술이나 볼에 연지를 바른 모습으로 표현됐다. 고구려 여인은 연지와 분백분을 사용해 화장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여인은 얼굴 화장보다 머리를 치장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백제의 화장법은 수서(隋書) 열전편에 기록돼 있다. 부인이 분대(紛黛)를 하지 않고 머리를 변발하여 뒤로 늘어뜨린다는 내용을 통해 백제 여인 역시 얼굴 화장은 즐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대란 분을 바른 얼굴과 눈썹먹 등으로 그린 눈썹을 의미한다.
신당서(新唐書)에는 신라인이 분대하지 않고 미발(美髮)을 머리에 둘렀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에서는 화랑을 중심으로 남성들이 화장하는 문화도 발달했다. 지금의 남성 화장품 시장의 발전은 이미 신라시대부터였는지도 모른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색조화장이 유행했다. 특히 화려한 당나라 화장법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색조 화장법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12세기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의 풍속을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은 부인이 몸을 꾸밀 때는 화장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고 분을 바르지만 붉은색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눈썹을 그리는 기술은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도경에는 버들같이 그린 눈썹이 이마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의 여인은 작은 붓과 눈썹먹을 이용해 눈썹을 그렸다. 눈썹먹이 없을 때는 굴참나무와 너도밤나무 목탄 등을 기름에 섞어 사용했다.
고려인들은 향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향유를 자주 발랐으며 귀부인들은 향낭을 좋아했다. 향낭 수에 따라 귀하고 천함을 가렸다.
조선시대에는 깨끗하고 혈색 좋은 피부를 연출하기 위한 연지와 분이 발달했다.
연지는 중국 하대(夏代) 걸왕 때 만들어졌다. 석류즙과 잇꽃 등을 주재료로 했고 광물인 주사(朱砂)도 이용했다. 이 연지를 돌로 만든 연지도장으로 얼굴에 찍어 발랐다.
곡식과 돌가루, 분꽃씨 등을 이용해 하얀색 분을 만들기도 했다. 분을 손바닥이나 접시에 덜어서 물을 약간 넣고 되직하게 섞은 뒤 이마와 뺨, 코, 입술 등에 발랐다. 누에고치로 만든 분첩으로 두드려서 분을 얼굴에 밀착시켰다.
조선 말기에는 복숭앗빛, 연주황색 등 다양한 색상의 분이 만들어졌다. 일반인들은 복숭아색이나 연주황색 등을 선호했고 기녀들은 흰 분을 사용했다.
조선시대에도 팩은 존재했다.
동의보감과 산림경제 등의 책에 따르면 돼지 족발을 요리해 아교처럼 만든 뒤 바르고 잔 뒤 아침에 좁쌀죽을 가라앉힌 웃물로 얼굴을 씻어냈다. 돼지 족발에 함유된 젤라틴 성분을 이용해 피부 탄력을 높인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밤 껍데기와 표고버섯 등을 가루로 만들어 꿀과 섞어 바르면 주름살 제거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꿀이 피부를 깨끗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준 것이라 볼 수 있다.
피부가 건조하고 잘 트는 겨울에는 달걀을 이용해 피부를 관리했다. 규합총서에는 '겨울에는 얼굴이 거칠고 터지는데 달걀 세 개를 술에 담가 봉해 뒀다가 얼굴에 바르면 트지 않고 윤기가 흐르며 옥 같아진다고 적고 있다.
이런 조상들의 피부 관리와 화장에 대한 지혜는 현재 우리 화장품을 발전시키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특히 동의보감과 조선왕조실록 등에 담긴 내용은 우리 화장품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노호식 아모레퍼시픽 한방과학연구팀 책임연구원은 "모든 인체가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는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며 "동의보감 속에 기록된 피부와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피부에 근원적으로 더 유익한 처방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