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들어 일주일에 평균 1~2번은 자살한 사람들의 뒷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고 접수가 나서 달려가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독거노인들의 생활고가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서울 근교 S시의 소방공무원 L씨는 올들어 마치 일상이 된 듯 노인 자살을 목도한다.
"1년 전만 해도 이 정도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는 그는 "바로 곁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고령의 삶과 죽음'을 접하다 보면 오래 산다는 것이 너무 힘겹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한다.
◇삶의 극한으로 내몰리는 우리 이웃의 노인들
지난달 7일 경남 거제시청 화단 앞에서 이 모(78) 할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할머니가 마신 것으로 추정되는 농약병과 유서가 든 가방도 있었다. 유서에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돼 더 이상 살 수가 없다…사람이 법을 만드는데 이럴 수 있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조사 결과 이 할머니는 거제시청에서 약 30만원의 보조금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해오다 부양의무자인 사위가 취직을 하면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밝혀졌다.
경제위기가 서민들, 특히 노인들의 삶을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노인 자살율은 인구 10만명당 72명으로 전체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자살 성공률(31.8%)은 타 연령층에 비해 4배 가량 높다. 이는 자살 방법이 음독·투신 등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타 연령대보다 경제적 활동이 현저히 적은데다 거동까지 불편한 탓에 생활이 어려워지면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는 경향이 높다. 충동적인 자살 시도가 아닌 계획적인 경우가 많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2010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8.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3.3%)보다 3.4배나 높은 수치다. 미국(23.7%)이나 일본(20.5%)과도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직업 연계·공공 일자리 창출 등의 제도적 노력과 함께 실업자·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병행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생계형 범죄 눈에 띄게 급증
우리 사회 주변에는 어느 덧 생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연속 범죄'의 늪에 빠져드는 이웃들이 눈에 띄게 늘고있다.
전북 익산에 사는 김 모씨(여, 40대)는 지난 6월 동네 마트에서 미니선풍기 4대 등 44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가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김 씨가 경찰서에서 밝힌 범행 동기는 '생활고(苦)'. 그는 "훔친 선풍기를 다른 곳에 팔아서 생필품을 사려고 했다"고 자백했다.
지난 4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혐의로 구속된 주부 윤 모씨(41)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남편과 별거중인 윤 씨는 지난해말부터 서울, 경기, 충청도 일대 대형마트를 찾아다니며 총 62차례, 510만원 상당의 탁구채 95점을 훔쳤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그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그가 털어놓은 범행동기는 "중학생인 아이를 혼자 키우며 생활을 꾸려가기가 버거웠다"는 것.
경찰청에 따르면 생활비 마련을 위해 범행을 저지른 건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지난 2007년 6만1967건을 시작으로 2008년 7만4867건, 2009년 9만7334건을 기록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경제가 회생기미를 보이면서 2010년 7만8970건으로 줄었고, 지난해 6만4436건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생계형 범죄는 다시 증가 추세다.

김수경 경찰청 행정관은 "생활고를 겪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범죄가 늘어날 가능성은 높아진다"며 생계형 범죄 증가율 확대를 시사했다.
◇"경제 위기와 사회 문제는 언제나 동행한다"
전문가들은 서민들을 생계형 범죄와 자살로 내모는 가장 큰 원인으로 '경기 침체'를 꼽는다. 경기 침체로 소득과 일자리가 줄다보니 생계비와 이자 부담이 늘었고, 파산 직면에 놓여 살길이 막막해지자 범죄나 자살이란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경기 위기와 사회 문제는 동반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영세자영업·일용직 등 비정규직 고용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소득 1분위' 가구가 월 평균 127만5900원의 돈을 벌어 148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매달 19만8000원의 빚이 쌓여가는 생활을 하는 셈이다. 소득 1분위 가구는 전체 가구의 19.8%에 달한다.
빚이 불어나면서 올 상반기에만 신용회복위원회에 프리워크아웃(30일 초과 90일 미만 연체자 대상)을 신청한 사람은 8275명이나 됐다. 전년동기(5953명)보다 39.0% 많다. 개인워크아웃(연체 3개월 이상의 채무불이행자 대상) 신청자도 3만7230명이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당장 경제상황이 나아지기 힘든데다 복지예산 범위와 규모를 늘리는데도 한계가 있는 만큼 실업급여·개인 파산신청 등 기존의 제도라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금융경제팀장은 "이전소득을 늘리거나 고금리를 저금리로 전환하는 바꿔드림론 시행을 확대하는 등 저소득층의 이자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