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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자기소개서 대필업체 성행… 입학사정관전형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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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자기소개서 대필업체 성행… 입학사정관전형 '흔들'
  • 박성환 기자
  • 승인 2012.09.01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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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원이면 전직 입학사정관이 직접 작성한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를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지적(知的) 장애 여중생 집단 성폭행에 가담한 학생이 '봉사왕'으로 둔갑해 성균관대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합격했다.

해당 학생 담임교사가 성폭행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학생의 요구로 추천서를 써줬고, 대학교에서는 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내신성적과 수능점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학생의 잠재능력과 소질 등을 다각도로 평가하기 위해 지난 2007년 8월 도입된 '입학사정관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올해부터 수시모집에서 응시 횟수가 6번으로 제한되고 1차 원서접수 마감일이 당장 11일로 다가오면서 입학사정관제의 두 축인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를 대필해주는 업체들이 때 아닌 '대목'을 맞아 성행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서류를 잘 꾸며야 합격할 수 있다'는 학부모들의 불안한 심리를 파고들어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를 대신 써주는 것은 물론 봉사 시간을 늘리는 등에 실적 부풀리까지 버젓이 하며 웃돈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른 사람이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거나 불리한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은데도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자기소개서 대필과 관련한 검색어를 입력하면 관련 홈페이지와 카페 수십개가 쏟아진다. 사이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대학별 맞춤형 자기소개서 보유', '자기소개서부터 면접까지 보장' 등의 글들이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학별 맞춤형 자기소개서는 3~4일 정도면 가능한데 주문이 밀려서 먼저 받아보고 싶으면 ○○만원만 더 내야합니다."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얼마 남지 않아 대필 주문이 밀리면서 대행 업자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덩달아 웃돈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기소개서부터 원서접수까지 대행해 준다는 한 업체에 "서류 검증작업에 적발되지 않냐"고 묻자 "자기소개서를 학생마다 다르게 쓰기 때문에 대학에서 자기소개서 대필을 잡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학부모들은 대학입학과정에서 관련서류를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대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녀 자기소개서 대필을 맡겼다는 학부모 최모(47·여)씨는 "대필을 맡긴 게 불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학원 다니느라 바쁘고, 남들도 다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자녀가 좋은 대학에 입학한다는데 몇십만원이 쓰는게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했다.

직접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학생들 입장에서는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고등학교 3학년생인 전모(18)군은 "며칠을 고민해 자기소개서를 직접 썼는데 다른 친구들이 돈을 내고 대필을 맡겼다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속상하다"며 "돈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생각에 힘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과거 일부 학생 사이에서만 행해지던 자기소개서 대필이 만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에 따르면 입학사정관 한 사람이 보통 500~10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서류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심층면접에서 허위나 조작된 서류를 검증하려고 해도 학생 한 명당 시간이 불과 20~30분정도 밖에 되지 않아 이를 검증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고 한다.

이 관계자는 "입학사정관이 신이 아니기 때문에 허위·조작된 서류 등을 검증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입학사정관제 취지는 좋으나 학생이 제출한 서류를 검증할 객관적인 방법이 마땅치 않아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자칫 부정입학의 창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부 부모들의 삐뚫어진 교육열이 자칫 아이들에게 잘못된 도덕관을 심어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제출한 서류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각도로 검증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오성삼 건국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는 "미국은 1년 내내 접수를 받고, 80여명의 입학사정관이 여유를 가지고 관련 서류를 세밀하게 검토하고 심층면접을 하는데 우리의 경우 짧은 기간 수많은 지원자들을 살펴보기 때문에 심층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이어 "정부와 교육당국은 좋은 취지로 시작한 입학사정관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객관화된 검증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정책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며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 인터뷰를 모두 녹화하고 여러명의 입학사정관이 합의하에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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