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티플렉스 CGV가 3일부터 ‘영화가격 다양화’를 시행했다. 시간대별로 세분된 기존의 관람료에 좌석별 가격을 차등화했고, 시간대도 4단계에서 6단계로 쪼갰다.
CGV측은 이번 다양화 제도의 근거로 콘서트나 뮤지컬, 오페라, 스포츠 관람이 좌석 위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는 점을 내세웠다. 또 “앞쪽 좌석이 스크린에 가까워 관객 선호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관람료를 지불하던 제도를 개선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관객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영관 좌석의 위치에 따라 관람료를 달리하는 차등요금제 도입에 65%가 찬성했다는 2014년 7월 한국소비자원 조사결과도 덧붙였다.
이렇게 ‘이코노미존’, ‘스탠더드존’, ‘프라임존’으로 구분해 가격을 달리했다. 스탠더드존을 기준으로 이코노미존은 1000원 낮게, 프라임존은 1000원 높게 책정했다. 주중 상영 시간대는 ‘조조-주간-프라임-심야’ 4단계에서 ‘모닝(10시 이전)-브런치(10~13시)-데이라이트(13~16시)-프라임(16~22시)-문라이트(22~24시)-나이트(24시 이후)’ 등 6단계로 세분했다.
CGV의 가격 다양화에 대한 관객 반응은 “사실상 가격 인상”이다. 영화계 내부에서도 다르지 않게 보고 있다. 다만, 찬반은 존재한다. 극장 관계자는 극장운영이 힘든 상황에서 “사실상 인상”을 반기는 분위기다. 좌석별 차등보다는 다른 방법을 통한 가격 정상화 정책이 더 낫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분개하는 여론도 만만찮다. 다양한 영화를 볼 선택권은 점점 줄어들고, ‘마스킹’ 등 영화관 운영의 기초도 잘 지키지 않으면서 좌석별 가격 차등제가 웬말이냐는 것이다. 관람료 인상보다 더 중요한 사안인 셈이다.
CGV의 가격 다양화에 대해 영화관객들은 “사실상 가격 인상” “프라임존 그냥 인상이잖아” “최대 2000원 가격인상?” “다양화는 개뿔, 인상이라 말해 그냥” 등의 불만을 드러냈다.
CGV의 가격 다양화 제도를 분석한 뒤 “좋은 시간대에 좋은 자리에서 영화 관람을 하려면 최대 2000원이 인상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나는 주로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에 영화를 보곤 하는데 영락없이 2000원을 더 주고 봐야한다. 군데군데 가격인하가 된 곳도 보이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시간대일 뿐. 이번 가격다양화는 나한텐 가격 인상으로밖에 안 느껴진다”는 것이다.
CGV는 ‘평일 오전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주부라면 브런치 시간대를 선택해 7000원(2D 기준)에 영화를 볼 수 있다. 이코노미존을 선택하면 관람료는 6000원으로 낮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가격 다양화 전에도 오전 10시 이전 조조 시간대에는 6000원에 볼 수 있었다. 시행 후에는 이코노미존을 선택해야 같은 가격에 볼 수 있다. 사실상 1000원 인상이다.
한 영화인은 “영화요금 현실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나 혼잡이 예상되는 좌석별 차등보다는 할인정책을 없애고 요금 정상화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고 전했다. “이 정책이 어르신들에게는 큰 불편을 줄 듯 하다. 티켓 구입 과정에서 잼도 늘어날 듯하다. 각종 할인카드 연계 마케팅부터 끊고 할인정책 없는 영화관 요금부터 정상화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경쟁으로 인해 할인권 등이 너무 남발되는 시기에 이 정책은 조금 혼란을 줄 듯 하다.”
그러면서도 영화 관람료 인상만 비난을 받는 현상이 정상은 아니라고 봤다. “어렵다. 각종 물가는 다 오르고 있는데, 영화 관람 요금만 유독 뭇매를 맞아야 하는 여론과 시민들의 시선….”
할인카드 연계 마케팅을 당장 끊기는 힘들다는 극장 관계자도 있다. “우리나라 영화 관람료가 다른 나라에 비해 낮게 책정돼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라면 가격을 올리면 문제가 되듯 영화 관람료도 뮤지컬이나 연극에 비해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카드 할인 등 할인정책은 멀티플렉스가 생길 때부터 해오던 거라 그걸 없애면 관람객의 반감을 더 살 수 있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아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극장 관계자는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넓은 공간을 유지하는 비용과 인건비 상승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영화관을 운영하면서 자금 흐름으로 인해 하루도 편히 잠들 수 없다. 직영점이 아닌 위탁 혹은 직접 운영하고 가맹점 비용만 지불하는 극장주들은 뽑아 먹을 수 있는 영화 나올 때 뽑아 먹자는 윈칙을 세우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영화관 사업도 문화 사업으로 분류돼 정부지원이 이뤄지는 프랑스와 달리 우리나라는 영화관을 만들 때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 또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 순수 개인 자본으로 운영한다.
“몇 년 전부터 사우나와 영화관은 제1금융권의 대출기피업종으로 분류돼 부동산과 다른 업종에 비해 불합리한 이율과 대출비율을 적용받고 있다. 전기는 일반상업전기요금이 적용된다”고 전했다. “24시간 거의 돌아가는 공조시설로 인해 작은 멀티플렉스라 해도 최소 관리비로 지출되는 비용이 월 3000만원 이상이다. 거기에 인건비는 영사실과 운영팀을 통폐합하며 디지털 영사환경 속에서 줄인다 해도 최소 정직원수는 주5일 근무다보니 6~8명이 된다. 여기에 시간당 아르바이트 비정규직은 사이트마다 다르지만 약 20~50명 정도로 이뤄진다.”
가장 큰 변화는 임대료 상승이다. “1998년부터 2010년 이전까지는 부동산 개발 붐으로 인해 고층 건물이 영화관을 매출액 대비 수수료로 임대유치하기도 했다. 건물주들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영화관을 적극 유치한 시기다. 하지만 서울 도심에 너무 많은 영화관들이 생겨나 더 이상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없게 됐다. 영화관 밑에 푸드코트와 오락실 등은 미분양되는 사태가 시작되고, 영화관은 제대로 임대료 산정을 하면서 소극적으로 유치하는 시점에 와있다. 그 결과 사무실보다 더 높은 임대료가 책정된다. 지금 나보고 극장하라고 한다면? 자신 없다”는 것이다.
다른 극장 관계자도 “영화 관람료 현실화가 필요한데 CGV가 총대를 매줬다. 흥미로운 실험이라 귀추가 주목된다”며 반겼다.
그러나 문제는 CJ CGV는 개인업자가 아닌 대기업이라는 점이다. CJ CGV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2015년 대비 28.4% 증가한 669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4.8% 늘어난 1조1935억원이다. 매출이 늘어났는데도 관람료를 인상한 셈이다.
조성진 CGV홍보팀장은 “CGV의 매출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지난해 연말기준 1조2000억원이다. 그런데 그건 해외매출이 늘어났기 때문이지, 국내 매출은 늘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임대료가 상승하고 인건비도 상승 추세이기 때문에 경영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이번 가격 다양화는 평균 200원 정도 인상된 효과다. 가격인상에 대한 충격파를 많이 고민했다.” 가격인상보다는 고객확대를 위한 새로운 마케팅이라고 강조했다. “관람객이 늘지 않고 정체돼 있다. 주부나 학생 등 고객층을 확대하려고 고민하다 고객층을 세분화했고 세분화된 마케팅을 하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 가격 다양화”라는 것이다.
가격인상보다 멀티플렉스의 상영 행태에 더 주목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화계 최대현안인 스크린 과점이 심화되면서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권리는 점점 축소되고 영화관의 영사 서비스는 개선되지 않고 있는데 좌석별 가격차등제는 가당치 않다는 비판이다.
어느 영화인은 CGV의 가격 다양화 정책 이후 “스크린 마스킹도 안 해주면서, 비뚤어진 스크린, 어두운 램프. 어디에 앉건 그런 스크린으로 영화 봐야 하는 관객한테 좌석가격 차등? 정말 너무하네요”라고 공격했다.
마스킹이란 영화의 본래 화면 구도를 지켜주는 장치다. 요즘 나오는 영화들의 화면비율은 대개 비스타 비율로 불리는 1.85대 1과 시네마스코프라 불리는 2.35대 1로 구분된다. 비스타 비율을 갖춘 상영관에서 2.35대 1 비율의 영화가 상영되면 상하나 좌우로 마스킹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면 크기는 작아지고 상하에 레터박스라 불리는 블랙바가 생긴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2013년부터 ‘국내 멀티플렉스의 마스킹 문제’를 지적해왔다. ‘CGV는 무엇이 그리도 귀찮았을까’라는 글에서 한 영화관에서 ‘링컨’을 본 뒤 “어두운 색조와 와이드 스크린은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마스킹을 하지 않은 CGV 화면에서는 이 의도가 처참하게 무너진다”고 적었다.
이후에도 “1주일에 최소한 3, 4회는 극장을 찾는 관객인 나에게 영화관 광고는 CGV에서 겪는 최악의 일은 아니다. 그밖에도 나쁜 일은 얼마든지 있다. 비스타 관에서 마스킹하지 않고 비디오 방처럼 트는 와이드스크린 영화, 툭하면 히트작에 상영관을 몰아주어 선택의 기회를 제한하는 행태, 불공정한 퐁당퐁당 상영, 기만적인 차별 가격…. 영화관에 대한 제대로 된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다”라고 비판했다.
듀나가 2014년부터 운영 중인 ‘국내 영화관 스크린 마스킹 정보’ 페이지에는 아트나인이나 씨네큐브, 서울극장, 대한극장, KT&G 상상마당 등 멀티플렉스 체인이 아닌 경우 “마스킹해준다”는 글이 보인다. 반면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는 어떤 극장은 마스킹을 해주고 어떤 극장은 안 해준다는 제보가 혼재돼있다.
미국 독립극장 체인의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 팀 리크 대표는 듀나의 저서 ‘가능한 꿈의 공간들’에서 마스킹 문제에 대해 “기본적인 마스킹의 설치와 활용은 영화관 운영의 기초다. 1.66대 1이나 1.33대 1 비율의 고전영화를 틀 때 제대로 된 마스킹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1.85대 1과 2.35대 1 비율의 영화는 반드시 정확하게 마스킹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놀랍게도 국내 극장들은 마스킹을 안 하는 추세다. 기계가 고장난 채 방치된 곳도 있다. 마스킹을 안 하는 것은 액자와 그림을 서로 다른 비율로 벽에 걸고서 전시회를 여는 것과 같다. 영화를 보는 모든 관람객들은 감독이 의도하고 만든 명확한 화면을 100% 누릴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를 악덕한 관리자들이 빼앗아가는 것에 분노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1월 개봉한 ‘헤이트풀8’은 멀티플렉스의 상영 시스템과 관객의 선택권 둘 다가 침해된 경우다. 이 영화는 CJ CGV에서 독점 배급했다. 이례적으로 화면비율이 무려 2.76대 1이었다. 2.35대 1보다 좌우가 더 길었다. 국내에는 2.76대 1 비율을 취급하는 상영관이 없었다.
최선책은 CGV 여의도나 신촌, 영등포 스타리움 등 시네마스코프 비율의 중대형 상영관에서 상영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니아 영화로 분류돼 CGV는 이런 관을 내주지 않았다. 개봉 후 관람객의 항의로 영등포 스타리움 등이 열리긴 했다. 하지만 “CGV 독점상영과 함께 와이드 화면으로 홍보를 했다면 시네마스코프관에 적어도 하루 1, 2회 교차상영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영화팬의 상식적인 지적이 나왔다.
큰 관과 작은 관의 기술적 격차에 불만을 터뜨린 영화인도 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화면이 어둡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작은관에서 영화를 본 경우였다. 큰 관에서 진행된 언론시사회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영화인은 “CGV가 하는 스크린X의 경우 이코노미존은 아예 손님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정면 스크린에 영상이 상영되는 경우에는 상관없지만 양 벽면에 영상을 쏠 때를 생각해봐라. 앞에 앉으면 그 영상을 보기 위해 좌우로 고개를 돌려야 한다. 거기에 손님을 앉히는 게 말이 되는가.”
마스킹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영화관의 트렌드처럼 돼버렸다. 한 극장관계자는 “관객들이 큰 불편이 없는 한 마스킹은 꼭 필요하지 않다는 분위기”라고 인정했다. 대다수 다양성영화가 직면한 가장 절박한 문제는 상영관 및 스크린수 확보다. 상영관 확보나 유지도 힘든데 마스킹을 따지는 것은 사치일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관 VIP 고객이라는 한 관객은 “CJ E&M이 공연을 하니까 거기서 힌트를 얻었나본데, 안 팔리는 앞의 두 세 줄 좌석만 1000원 깎아준 꼴”이라며 “소비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정책같지는 않다”고 봤다. “CGV가 아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나 그 다양성 영화도 자체 배급하는 영화만 과도하게 밀어준다”며 “마스킹 문제는 영화 애호가라면 누구나 느끼는 불편”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