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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흥순 "내 작업은 사람에서 시작… 삶을 위한 예술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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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흥순 "내 작업은 사람에서 시작… 삶을 위한 예술 지향"
  • 신진아 기자
  • 승인 2015.05.14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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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한국인 최초 은사자상

"어머니가 당연히 기뻐하셨다. 울컥하다 이내 평소처럼 돌아와 어버이날 용돈도 안줬으니 다음에는 챙기라고 하셨다.”

평생 봉제공장 ‘시다’로 일한 어머니와 역시 노동자로 살고 있는 누이에게 바치는 작품 ‘위로공단’(2015)으로 한국인 최초로 지난 9일 개막한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작가(46). 14일 도봉구 덕릉로에 있는 창동미술스튜디오에서 만난 임 작가는 수상소식을 들은 어머니의 반응을 묻자 이같이 답하며 자신의 어머니를 “매우 밝고 쾌활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어머니는 10대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이던 둘째 아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응원해줬다. 미장이로 일하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아버지는 어려운 살림 탓에 기술을 배워 빨리 돈을 벌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지금의 임흥순을 만든 건 제 주변의 여성들이다. 가족인 어머니와 누이, 형수뿐만 아니라 제 작품의 프로듀서이자 동반자인 김민경 피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하면서 만났던 주부들, ‘비념’을 하면서 인터뷰했던 할머니들 그리고 ‘위로공단’에 나온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제가 큰 위로를 받았다.”

비극적 한국사나 억압적 노동현실 앞에서 분노가 치솟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받은 위로를 자양분 삼아 세상과 소통할 작품을 만들었다.

“여성들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그들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힘이 있는 거 같다. 여성적 문화나 언어가 제게도 잘 맞다. 그들의 다양한 표현방식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우고 싶다.”

임흥순은 원래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우연히 얻게 된 비디오카메라를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의 모습을 담게 되면서 영상과 이미지의 가능성에 눈떴다. ‘내 사랑 지하’(2000), ‘추억록’(2003), ‘잘 가시오’(2006), ‘긴 이별’(2011)을 포함한 다수의 단편과 ‘비념’(2012) ‘위로공단’(2014)과 같은 장편을 만들었다.

 


다큐, 실험영화, 영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는 자신만의 미학적 스타일로 여성이나 이주 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의 시선으로 '역사 새로쓰기'를 하고 있다.

첫 장편 다큐멘터리 ‘비념’은 제주4.3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한 할머니가, ‘위로공단’은 봉제공장에서 40년간 일하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가 작품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차기작인 ‘환생’은 한국전과 베트남전, 이라크전을 모두 몸소 겪은 한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임흥순은 “제 작업의 시작은 언제나 제 주변 사람의 이야기”라며 “미리 계획을 짜놓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가 제 작업의 출발이자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비념’의 경우 2009년 3월 우연히 들른 제주도에서 김민경 피디의 외할머니 집에서 4.3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듣는 데서 출발했다.

‘위로공단’은 2010년 창작공간인 서울 독산동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한 게 계기가 됐다. 이곳은 옛날 구로공단이 있던 지역으로 어머니를 떠올렸다. 노동의 문제를 제대로 다뤄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금의 작품으로 완성했다.

임흥순에게 미술은 삶 그 자체이고 소통의 매개체이다. 그가 작업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사람과 관계 맺으면, 소재나 작품을 위한 미술이 된다. 전 그렇게 안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면서 켜켜이 쌓은 것들을 작품으로 풀어갔다.”

임흥순은 초창기 임대아파트 입주민을 상대로 공공미술을 할 당시 태양열 가로등을 세우고 노인을 위한 야광지팡이를 만들었다. 관리비를 못낸 노인들이 밤만 되면 전기가 끊긴 이곳에서 생활하다 다치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의 미술은 이처럼 항상 인간을 중심으로 삼는 휴머니즘 예술이다.


“예술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개념이나 관념적으로가 아닌 실질적으로, 결론적으로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삶을 위한 예술을 지향한다.” 그것도 더불어 사는 삶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제게 미술은 가족이나 이웃과 서로 나누고, 교환하면서 하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날실과 씨실을 직조하듯 완성 없이 계속 짜나가는 것이다. 마치 끝이 없는 여정같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세상을 좌나 우로 나누고 뭐든 경계를 짓는데, 전 그 경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나뉘어져 있으니까 편견이 생기고 오해가 생긴다. 거기서 폭력과 전쟁이 발생한다.”

그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가르치면 세상이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 주변의 경비아저씨, 청소아줌마처럼 필요 없어 보이지만 그들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삶은 보다 풍부해질 것이다.”

임흥순은 우리 사회가 과거보다 외형은 풍요로워졌으나 내면은 더 가난해졌다고 말한다. 가진 것 없어도 정신적으로 풍요로웠던 그는 인간을 향한 애정을 작품에 고스란히 재현한다. 어머니가 자기에게 그랬듯이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다.

양효실 평론가는 이런 임흥순에 대해 전문지 '아트인컬처' 5월호에서 '임흥순의 카메라는 코뮌(공동체)의 감각, 코뮌의 형식'이라고 요약하며 "가난하고 약하고 모여있고 함께 살아가는 것들을 재현, 재연하는 카메라의 느리고 산만하고 따뜻한 움직임에서 우리는 코뮌을 감각한다"며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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