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비자 정책 강화로 한국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전문직 비자인 H-1B 비자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면서 금액을 감당하기 힘든 중소기업의 경우 미국 사업에 난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최근 H-1B 비자 수수료를 기존보다 100배 높은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으로 올린 데 이어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한 전자여행허가(ESTA) 수수료도 40달러(5만6000원)으로 인상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인상된 H-1B 수수료를 매년 받겠다고 했다가 미국 내 기업들의 혼란이 커지자 신규 신청자에게만 받겠다고 정정했다.
의료단체의 반발이 나오자 의사는 수수료를 면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내비치는 등 미국내 비자 관련 혼란이 지속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오락가락’ 비자 정책이 국내 기업, 특히 중소기업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는 전날 대한상공회의소와 한미협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H-1B 비자 수수료가 1억4000만원인데 우리나라에서 1만명만 신청해도 10억불, 1조4000억원이 된다”며 “중소기업은 감당하지 못할 금액”이라고 밝혔다.
허 교수는 이어 “미국에서 대기업이 만드는 공장에도 중소기업 인력들이 출장을 가서 협력하는데 중소기업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지난해 정부가 5조원의 공급망 안정화 기금을 출범했는데 여기서 보조금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최근 논란이 된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한국 근로자 구금 사태에서 상당수 인원은 LG에너지솔루션과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협력사 직원들이었다.
허 교수는 “정부가 100% 지원은 부담이 되면 50%라도 하든 대책이 있어야 한다”며 “세액 공제 등 다른 지원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관세 세부 협상을 하면서 동시에 비자 포트폴리오의 체계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주문이다.
미국내 주재원 비자인 L1의 경우 고용 500명 이상 등 대규모 사업에 대해서는 포괄승인(블랭킷) 신속절차를 도입하고, E2 투자자는 전문가 인력 우선심사와 서류 표준화, 전문직 비자인 H-1B는 우선할당, 쿼터상향 등을 통해 한국 근로자 전용 트랙을 만들자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여기에 단기상용비자인 B1의 조건 완화 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장 단속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허 교수는 “한미 현장 컴플라이언스 업무협약을 맺어 사전통지, 시정기간을 의무화하고 대규모 단속 시 영사 핫라인을 가동해야 한다”며 “주정부-대사관-기업 공동 대응팀 구성을 통해 단속, 노무, 안전 이슈에 대해 48시간 이내 정상화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규모 대미투자의 대가로 우호적 투자수익 배분, 전문직 비자 및 고용 안정화, 대미투자 세액공제 보장, 방위비 분담률 동결 등 통상·외교·안보 현안을 포괄하는 ‘패키지 딜’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