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 "5년간 한가지 이상 차별 받아"
"감염 예방하는 PEP 접근성 강화해야"

"엄지손가락이 잘려 응급실을 찾았지만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해 13시간 이상 돌아다닌 사례가 있을 정도로 의료 전반에 걸쳐 차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손민수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대표는 지난 10일 'HIV 차별과 편견 종식을 위한 RED마침표 캠페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이 같은 현실을 토로했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HIV 감염인들은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 인한 우울감으로 삶의 질 저하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의료기관에서 겪는 차별적 경험이 이들의 좌절감을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HIV는 인간의 면역계를 공격해 손상시키는 바이러스다. 혈액, 정액, 질 분비물, 모유 등을 통해 전파된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은 HIV와 다른 질환이다. 에이즈는 HIV 감염 후 질병이 진행돼 나타나는 면역 결핍 증후군이다.
모든 HIV 감염인이 에이즈 환자는 아니며, 조기 진단 및 치료 시 에이즈로 이행되지 않는다. 약제 복용을 통해 혈액 검사상 HIV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을 정도로 바이러스 활동이 억제되면 타인 전염 가능성도 사라진다.
꾸준한 약물 복용과 정기적인 치료만으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만성질환으로 간주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지속되고 있다.
의료기관 내에서도 의료진들의 에이즈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이나 부정확한 인식 등이 파다한 것으로 나타났다.
KNP+와 HIV 감염인 단체 러브포원이 지난해 시행한 'HIV 감염인 의료서비스 이용 경험 설문조사'에 따르면 HIV 감염인 799명 중 47%가 병원을 우호적이지 않은 공간으로 인식했다.
지난 5년간 ▲병원에서 별도의 기기나 공간 사용 ▲병원 직원의 수군거림 ▲채혈실 직원의 부정적 태도 ▲협진 시 의료진의 부정적 태도 ▲수술 또는 시술 거부 등을 하나 이상 경험한 비율은 51.9%에 달했다.
손 대표는 "HIV 감염인 진료를 볼 때 김장 비닐을 깔고 하거나 유난스럽게 소독하고 장갑을 끼는 등 의료기관에서 차별하는 사례가 많다"며 "연합회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사례만 20여건이 넘고 60%정도 권고가 나왔다"고 전했다.
인권위는 지난 4월 HIV 감염을 이유로 수술을 거부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며 해당 의료기관에 직무교육 및 재발 대책 마련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의료 제공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진료(입원과 수술 포함)를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며 "병력(病歷)을 이유로 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질병관리청의 '2024년 HIV/AIDS 관리지침' 등에 따르면, HIV 감염인을 진료하거나 수술 시에도 일반 환자와 동일하게 표준 주의 지침을 적용하면 충분하며 별도의 장비나 시설이 요구되지 않는다.
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전염성 질환 출혈 등 처치에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하지 않으며, 의료 현장에서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점막 노출에 의한 감염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고 문제가 되는 것은 주사침 노출"이라며 "주사침 찔림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70여시간 내 HIV 예방 약제를 복용하는 PEP(노출 후 예방 요법)를 시행하면 감염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HIV를 진료하는 의료기관이 아닌 경우엔 PEP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표면적으로는 수술 거부로 이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하니 PEP 접근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