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정책기능, 기재부와 금융감독원에 분산되면 사실상 해체

정부 조직개편으로 해체 위기에 몰린 금융위원회가 ‘실력으로 존재 이유를 보이겠다’는 기조로 정책 드라이브에 속도를 내고 있다.
27일 금융위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새정부 출범 후 주말과 평일 밤늦은 시간에도 금융위의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원래도 인원은 적고 일은 많은 조직이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주말도, 저녁도 없다. 국장들은 대부분 주말 없이 출근하고 있고, 과장급 이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말에도 회의가 잡히고, 밤 12시가 넘어서 업무메일이 오가는 일도 있다는 것이 금융위 직원들의 전언이다.
금융위는 정원 400명 미만의 작은 조직이다. 지난 5월 말 기준 금융위 정원은 342명으로, 이중 금융정보분석원(FIU)을 제외하면 263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맡은 업무는 그렇지 않다. 금융위는 새정부 출범 후 가계부채 관리, 소상공인·금융취약층 빚탕감 등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들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 핵심 공약인 코스피5000 실현을 위해 안정적 증시 수요 기반을 마련하고, 가계와 부동산에 집중된 유동성을 자본시장으로 돌려 벤처·중소기업 성장을 위한 모험자본을 확충하는 것도 금융위가 받아안은 과제다. 최근 새 정부가 전면전을 선언한 ‘보이스피싱’을 비롯해 ‘전세사기 배드뱅크’ 등 금융위의 손길이 닿아야 할 과제들도 막중하다.
이 때문에 금융위는 이재명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에 신진창 금융산업국장 등 3명을, 대통령실에 8명을 파견해 긴밀하게 협의하며 대통령 공약을 실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금융위가 추진 중인 과제들은 효과도, 속도감도 눈에 띈다. 특히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6·27 대책)’은 과열됐던 수도권 집값을 진정시키는데 효과를 보였다.
금융위는 지난 4일 이 대통령의 지방 타운홀 미팅에서 개인회생 관련 정보 공유기간을 줄여달라는 소상공인 민원이 나오자 나흘 만에 성실히 빚을 갚은 채무자의 공공정보 공유 기간을 5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는 등 빠른 해결책을 내놨다.
지난달 11일 이 대통령이 한국거래소를 찾아 “주식 시장에서 장난치다가 패가망신한다”며 불공정 거래 엄단 의지를 보였을 때는 한 달이 채 안 돼 부당이득의 2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근절 방안을 내놨다.
폭염 대책도 신속했다. 금융위는 이 대통령이 지난 10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폭염 대책을 신속하게 집행하라고 지시하자 닷새만에 금융권 무더위 쉼터를 전국 9600곳에서 1만4000곳으로 확대 운영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조직이 슬림하고,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해 정책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가능했다.
새정부는 출범과 함께 금융위의 정책기능을 기획재정부에 넘기고, 남은 감독기능을 금융감독원과 합쳐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정부조직개편을 검토해왔다. 이 경우 금융위는 사실상 해체된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적절한 규제로 큰 효과를 보고 있다”며 두 차례나 특급칭찬을 하고, 권대영 부위원장을 승진시키며 해체가 유력했던 금융위를 둘러싼 기류도 변화하고 있다.
여당 일부 의원들이 최근 발의한 정부조직개편안에서 금융위를 분할하는 내용이 제외된 것도 이같은 기류 변화를 반영한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 등 10명은 지난 17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금융위를 분할하는 내용을 제외했다. 오히려 기획재정부의 국제금융 기능을 금융위로 이관하도록 하는 등 금융위에 힘을 실었다.
다만 이같은 흐름이 실제 조직 존속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여권 일각에서는 금융위 해체를 전제로 한 개편론을 다시 띄우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김남근 의원과 윤석헌 전 금감원장 등 진보 진영 학자들은 지난 23일 긴급 토론회를 열고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촉구했다.
금융위가 실적 중심의 ‘속도전’에만 매몰될 경우 정책의 지속 가능성과 내부 인력의 번아웃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최근 추진 중인 과제들은 효과와 신속성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며 “다만 이런 성과 드라이브가 계속되면 직원들의 지속적인 업무 과중과 번아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