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엔진 꺼진 한국 경제가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 –0.2%의 역(逆)성장 충격에 표류(漂流)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1.3% 깜짝 성장 이후 작년 2분기 -0.2%로 역성장을 기록한 뒤 3분기 0.1%, 4분기 0.1%에 이어 올해 들어 다시 –0.2%로 뒷걸음질 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4개 분기 연속 0.1% 이하에 그친 ‘저성장 쇼크’는 1960년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설마설마했던 역성장 재앙이 현실로 들이닥쳤다. 한국 경제의 활력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장기불황의 덫에 갇힌 채 성장엔진이 아예 꺼진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앞선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 24일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직전 분기 대비 -0.2%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발표한 0.5% 성장 전망을 한 달 만에 0.2%로 낮춘 데 이어 두 달도 안 돼 역성장 경고까지 나왔다. 전 년 동기 대비 역성장은 ‘코로나 19 팬데믹(Pandemic)’으로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됐던 2020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세부 지표를 보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극심한 내수 부진이 성장률을 갉아먹었다. 비상계엄과 탄핵 등 정국 불안의 여파와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민간소비(-0.1%↓)가 줄고, 경기 부진 속 건설투자(-3.2%↓)와 설비투자(-2.1%↓)도 쪼그라들었다. 한국 경제의 엔진인 수출(-1.1%↓)도 감소했지만, 수입(-2%↓)이 더 큰 폭으로 줄며 ‘순(純)수출(수출 – 수입)’이 내수 부진에 따른 역성장 폭을 그나마 줄였다. 한국은행은 “어두운 터널 속에 들어온 상황”이라며 1.5%인 기존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예정임을 밝혔다.
무엇보다 심각성을 더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다. 첫째, 외롭게 성장을 지탱해온 수출(-1.1%↓)이 중국의 저가 수출에 밀려 화학제품·기계 및 장비 등을 중심으로 감소했다. 둘째, 민간소비(-0.1%)도 비상계엄·탄핵·산불 여파로 줄었고, 정부소비(-0.1%↓) 마저 감소했다. 여기에 건설투자(-3.2%↓)도 줄어들었으며 설비투자(-2.1%↓) 역시 감소해 3년 반 만에 가장 낮아 투자 위축으로 이어졌다. 셋째, 관세 충격이 본격적으로 밀려올 2분기에도 역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당장 올해 2분기 성장률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미국발(發) ‘관세전쟁’과 산불 등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반영되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지난 1분기 경제활동은 소비·투자·수출 모두 역성장을 보였다는 점에서 침체 양상이 전방위적임을 방증(傍證)한다. 민간소비와 투자 위축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지만, 정부 소비와 수출 부진은 예상치 못한 결과라 더욱 당혹스럽다.
정부는 애초 올해 1분기에 예산을 신속 집행함으로써 경기 방어를 하겠다고 천명했으나 정부지출마저 감소했다는 게 참으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급기야 정부는 12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고 이것은 성장률을 0.1%포인트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펴낸 ‘2025년도 1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도 추경안의 집행 시점과 속도에 따라 올해 성장률을 0.13∼0.14%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를 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국회에 제출된 12조 2,000억 원 규모로는 경기를 방어하는 데는 어림도 없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 추가경정예산안 증액은 가부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로 실질적인 경기 대응책이 될 수 있도록 추경 규모의 증액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게 맞다.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이 정 합의가 어렵다면 대선 직후 2차 추경까지도 염두에 두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발(發) ‘관세전쟁’의 영향이 본격화하면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되면 이는 곧 ‘R(Recession │ 경기침체)의 터널’에 진입한다는 의미가 아닐 수 없다. 경기침체는 일자리 상실과 소득 감소로 국민의 고통을 가중할 뿐만 아니라 미래 성장 동력까지도 훼손한다. 무엇보다 올해 연간 성장률 1% 달성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22일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에서 1%로 대폭 낮췄고, 해외 투자은행(IB) 사이에선 연간 성장률이 0.6~0.7%에 그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내놓은 전망치 2.0%에서 반 토막 난 수치다. 다른 국가보다 한국의 성장률 하향 조정 폭이 컸던 건 ‘관세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취약성 때문이다.
이런 취약한 경제 구조 속에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인한 저성장이 이어지면 당연히 경제의 몸집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통상위기 출구를 찾고 영남 산불과 경기침체, 인공지능(AI)에 대응하기엔 한국은행과 학계가 작년 말부터 요구한 경기 회복의 마중물인 ‘슈퍼 추경’엔 턱없이 부족한 규모인데 다 이미 ‘골든 타임(Golden time)’마저 놓치고 있다. 트럼프발(發) 경제·일자리 위기에 일본·중국·독일 등이 발 빠르게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추세와도 한국은 정반대로 느긋하기 그지없다. 국회는 추경을 대폭 증액해 급한 불부터 끄고, 부족할 시 새 정부 출범 후 2차 추경도 서둘러 준비하기 바란다. 정부와 정치권은 비상한 긴장감을 조이고 기존 규제의 틀을 과감히 깨는 혁신으로 기업 투자환경 개선에 힘을 보태야만 한다.
경제 역성장에 제동을 걸고 저성장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내수를 진작시키고 장기적으론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를 개선해야만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GDP 성장률 잠정치 2.0% 중 내수 비중은 0.1%포인트에 불과해 세계 주요국 중 최하위 수준이었다. 이는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대부분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관세전쟁’ 타격을 본격적으로 입게 될 2분기 이후 우리 경제는 더 빠른 하락추세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작년 한국의 성장률 2% 가운데 95%는 수출이 견인했다. 수출의 80% 이상은 제조업이 차지한다. ‘제조업 엔진’에 탈이 나면 우리 경제의 순항은 불가능하다. 이렇듯 저성장 위기에 직면한 한국 경제를 한 방에 살릴 묘책(妙策)이나 비급(祕笈)은 없지만, 장·단기 대응을 통해 문제를 하나둘 차근차근 풀어나가야만 한다.
규제 혁파와 구조 개혁, 초격차 기술개발 등을 통한 신산업 육성이 근본 해법임을 명심하고 경제 체질을 과감히 개선하지 않고서는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각별 유념하고 우선은 ‘한·미 2+2 통상회담’을 시작으로 관세 충격을 줄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총력 경주(傾注)해야만 한다. 내수 회복의 진정한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통상 대응과 신성장 동력 육성, 취약계층 핀셋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춰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증액과 함께 조속히 통과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장기적으로는 성장 동력 마련을 위한 산업 전략 재편과 구조조정과 함께 기업 활동과 투자를 제약하는 각종 규제를 풀고 세제 혜택 등을 늘려 기업과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관세 폭탄’ 등 외풍에도 경제가 흔들리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구조 개혁 결과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면 채산성이 좋아진 기업이 투자에 나서고, 이는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세제 금융 지원으로 기업의 투자 확대를 적극적으로 유인하고, 중장기적으로 기술개발 구조 개혁 등 우리 경제의 시스템 리셋(Reset)에도 선제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