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때는 밤중에 회사 경비가 많았어요. 이렇게 회사 담이랑 한 너덧군데 초소를 만들어 놓고, 수용소처럼 해놓고, 철망까지 해놓고, 밤에 도망가는 사람을 잡아들이고 그랬다구. 어떤 놈은 그 철망 넘어서 영등포 역전으로 가서 도망가려고 하는 거, 영등포역에 가서 다시 붙들어오고 그랬다고요."(일제강점기 경성방직에 실습갔던 실습생 회상)
"6·25사변 이후로 공장 지붕이 파손이 되어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비오고 눈 오면 눈이 기계 위에 막 쌓이는 거예요. 날이 추우니까 겨울에는 눈을 쓸어 가면서 기계를 찾아 하나하나 골라 가지고 쓸 만한 것을 찾아서 분해를 하고, 분해한 녹슨 기계는 비 안 맞는 곳으로 운반해서 세척을 하고. 기계 조립하는 장소에서 처음부터 순서대로 조립을 하고…. 그런 작업을 하는 거죠."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공장복구에 나선 한 기술자의 회상)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가 16일 발간한 구술자료집 '영등포 공장지대의 25시'에는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영등포 방직공장지대에서 생활한 노동자와 기술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영등포는 서울의 대표적인 공장지대로 면방직업이 융성했던 곳이다. 경제성장의 토대가 되었지만 동시에 열악한 환경에서 가난한 이들의 노동력이 착취된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면방직업 노동자들은 15·16세의 어린 나이에 미숙련공이나 임시공으로 하루 15시간 노동을 했다. 가혹한 환경을 견디다 못해 탈출했다가 붙잡혀 온 어린 실습생의 구술에서는 일본의 가혹한 노동수탈의 단면을 파악할 수 있다.
구술자료집을 살펴보면 해방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16세에 임시공으로 들어가 무려 43년간 경성방직에서 근무했다는 남성은 "처음 20년간은 주말도 없이 365일 출근했다"는 거짓말 같은 사실을 전한다.
그는 "거짓말 같죠? 명절날 제사 지내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제사를 지낸다고. (그리고) 그날 아침에 8시에 출근하죠"라고 회고했다.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구술자료집은 오랜 기간 서울에 뿌리박고 살고 있는 토박이들과 일반 시민들의 다양한 체험을 채록해 서울의 다양한 모습을 구술이라는 새로운 사료 매체로 남기고자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그동안 '서울 토박이의 사대문 안 기억', '서울 나는 이렇게 바꾸고 싶었다', '서울 사람이 겪은 해방과 전쟁', '사대문 안 학교들, 강남으로 가다', '임자, 올림픽 한번 해보지!' 등 5권이 간행됐다.
이번에 발간된 '영등포 공장지대의 25시'는 6번째 구술자료집이다.
구술자료집은 서울도서관 2층 북카페(02-2133-0267), 정부간행물센터(02-734-0267)을 통해서 구입할 수 있다.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http://culture.seoul.go.kr)
를 통해 전자책으로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