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서울 신촌 지역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다 아는 맛이 바로 ‘낙지찜’이다. 90년대 초반 음식점들이 가득한 명물거리도, 놀이터 주변도 아닌 주택가에 들어선 ‘아저씨네 낙지찜’ 덕분에 일대는 일약 신촌 또 하나의 먹자촌으로 탈바꿈했다.
당시 오너 셰프로 손맛을 자랑한 30년 경력의 한식명장 유민수 사장은 신촌을 떠나 새로운 도전 중이다. ‘사장이 미친 것처럼 좋은 식자재로 만든 맛좋은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마구 퍼주는 식당’, 그래서 ‘우리 사장이 미쳤어요’라는 뜻의 가게에서 제2의 조리인생을 열고 있다.
서울 연지동 기독교 회관 바로 옆, 그러니까 종로 5가 뒤편, 대학로와 광장시장 사이 길 안쪽에 터를 잡은 ‘우사미’(02-741-5464)에서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 136-73 1층이다.
지난 1월4일 오픈해 한 달 된 이곳은 다다미식으로 된 홀과 작고 큰 룸 등 100석이나 되는 대형식당이다. 인근에서는 벌써 ‘맛집’으로 소문났다. 덕분에 평일 점심에는 직장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저녁과 밤 시간에는 회식, 주말과 휴일에는 평일에 맛있게 먹은 음식을 부모, 배우자, 자녀에게 먹이기 위해 찾는 직장인과 그 가족들, 인터넷 검색으로 싸고 맛있는 집을 찾아 온 연인들, 기독교 관련 단체 사람들로 북적댄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손님을 끌어당긴 원동력은 역시 음식이다. 이 집에서는 ‘소고기 보신 전골’, ‘옛날 맛 불고기’, ‘낙지찜’을 맛볼 수 있다.
소고기 보신 전골은 유 사장의 아내사랑 성과물이다. 개 보신탕을 못 먹는 부인의 건강과 입맛을 챙기기 위해 유 사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살코기와 도가니 수육 등 소고기와 각종 야채로 신메뉴를 창조해냈다. 이 소고기 보신 전골 속 소고기의 식감과 풍미는 실제 개 보신탕 애호가들로부터도 개 보신탕과 차이를 못 느끼겠다는 호평을 들을 정도다. 국내산 소고기가 한 근(500g)보다 많은 600g이 들어가 성인남자 두 명이 먹어도 충분하지만 가격은 2만8000원이다. 서비스로 국내산 소고기(100g) 튀김 한 접시도 주니 일석이조다.
혼자서 식사로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테이블에서 직접 끓여먹는 전골이 아닌 주방에서 끓여서 뚝배기에 담아 내오는 소고기 보신탕(6000원)을 주문하면 된다.
얼리지 않았고 양념도 미리 해놓지 않다는 것으로 신선함이 증명되는 국내산 소고기와 파, 야채, 버섯 등과 함께 불판에 올린 뒤 즉석에서 구워 먹는 전통 서울식 불고기를 ‘옛날 맛 불고기’라는 이름으로 재현했다. 1인분에 국내산 소고기가 300g이나 들어간다. 2인분부터 주문 가능하다지만 그래봐야 3만원밖에 안 되고, 양은 순전히 소고기로만 600g이니 안 시킬 이유가 없다. 고기와 야채가 불판에서 익으면서 흘러내리는 진국이 불판 둘레에 미리 부어놓은 육수와 어우러지는데, 한 숟가락 떠먹으면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 밥과 함께 먹으면 밥도둑은 게장이라는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한 공기쯤은 뚝딱이다.
소고기 튀김 한 접시를 서비스하고, 계속 건져 먹어도 고기가 나오는 소고기 무국도 무한리필이다. 소고기 무국은 소고기 보신 전골을 주문한 손님이어도 원한다면 무료로 먹을 수 있다.
낙지찜은 20년 넘게 이어온 그 손맛 그대로다. 국내산 기절낙지, 콩나물, 고추장 등으로 ‘아귀찜’처럼 푹 쪄서 만든다. 그렇다고 아귀찜인지 콩나물찜인지 모를 지경으로 콩나물만 가득한 아귀찜을 생각하면 안 된다. 주방에서 조리된 뒤 프라이팬에 담겨 나와 테이블에서 데워먹는 이 집 낙지찜은 낙지가 반이다. 한 눈에 봐도 먹기 좋게 잘려진 낙지 다리들로 가득하다. 눈길 가는 것은 낙지 다리의 굵기다.
작은 낙지는 어린 낙지라 맛도, 영양도 없는 반면 큰 낙지는 성장한 낙지답게 맛있을 뿐더러 장어와 쌍벽을 이루는 스태미나 해산물다운 타우린, 철분, DHA, 단백질, 비타민B2, 인 등 영양도 풍부하다는 것이 유 사장의 지론이다. 큰 낙지의 굵은 다리라고 해도 씹히는 맛은 정말 부드럽고 야들야들하다. 20년 노하우가 어디가지 않았다. 맛은 매콤하긴 하지만 낙지볶음처럼 입 안이 얼얼하고 이튿날 화장실에서 고생할만큼은 아니다. 톡 쏘고 아주 맵길 원한다면 주문 시 따로 부탁하면 된다.
잘게 썬 양배추에 귤, 건포도, 특제 소스로 상큼 달콤한 맛을 낸 샐러드, 소고기 무국이 서비스된다. 다 먹은 뒤 밥을 볶아 먹으면 그 맛도 예술이다. 이 메뉴 역시 성인 남성 2명이 먹어도 충분하다. 3만원.
메인 메뉴는 아니지만 ‘육회’도 놓칠 수 없다. 국내산 소고기 200g이 잣, 마늘, 참기름 등과 잘 버무려 나온다. 1만2000원이다. 유명 브랜드 커피 전문점 라테 2컵 가격이다.
식사로 소고기 보신탕 외에 곰국시, 메밀만두, 굴국밥 등이 있다. 모두 6000원씩이다. 식사 메뉴 중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것이 곰국시다. 진한 곰탕 국물에 경기 여주의 면 장인이 만든 숙성면을 삶아서 내온다. 다른 요리를 듬뿍 먹은 뒤 면을 먹었는데도 일반 국수를 먹었을 때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전혀 없이 편안하다.
조부모, 부모, 자녀 등 3대가 가도 5만~6만원이면 입호강, 보신이 두루 가능하니 이만큼 착한 식당이 어디 있을까 싶다. 주방도 오픈돼 손님들이 오가며 조리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청결성도 안심해도 된다.
연중 무휴로 24시간 영업한다. 주차는 인근 주차장에 하면 1시간 무료다.
